어느 날, 귀여운 영상을 보았다. '인생은 파인애플처럼'이라는 제목 아래,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말한다.
파인애플처럼 살아가세요.
항상 당당하게 서고,
당신만의 왕관을 쓰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내면을 달콤하게 유지하세요.
정말 이 아이가 한 말인지 어른의 손길이 닿았을지는 모르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움직인다. 파인애플이 항상 당당했던가? 내면이 달콤하긴 하지.
이 귀여운 아이가 파인애플을 보며 인생의 진리를 말하듯, 나도 가끔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어디선간 철학을 끌어와 엉뚱하게 연결 짓곤 한다. 사색하는 시간'이라 쓰고 '망상하는 시간'이라 읽는 순간들이다.
나는 매일 50km 떨어진 곳으로 출퇴근을 한다. 도로 위에서 보내는 시간만 하루 세 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느긋하게 운전하며 양보해 주는 차도 있고, 앞을 가로막듯 급하게 끼어드는 차도 있다. '초보운전' 딱지를 붙였으면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빠르게 달리는 차를 만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나도 실수를 한다. 그 순간, 나를 향한 경적이 날아온다.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마음을 담아 깜빡이를 연신 켜고, 고개를 살짝 숙인다. 그러면 그 빵빵 소리도 금세 내 마음을 비켜간다. 우리가 이 도로에서 헤어지면 다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을뿐더러 상대방이 나의 실수를 대부분 오래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회에서의 인간 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살다 보면 서로를 스치듯 지나가다가, 가끔은 부딪히고 긁히는 순간이 있다. 마음에 작은 흠집이 나기도 하고, 무심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길로 돌아가면, 그 순간들은 대부분 흐릿해진다. 복잡하고 무거운 감정을 오래 붙잡지 않고 도로 위의 경적처럼 흘려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가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때로는 먼저 비켜주는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의 길은 훨씬 더 평화로워질지도 모른다.
하루는 약속에 나가기 위해 화장을 하고 있는데, 며칠 전 교무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지나가던 선생님이 내 손에 든 화장품을 보고 말을 걸었었다. 예전에 같은 제품을 써봤는데 트러블이 심하게 올라와 바로 버렸다고, 피부에 잘 맞느냐고 물었다. 나도 피부가 예민해 화장품을 자주 바꾸는 편이었는데 그 제품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찾은, 나에게 잘 맞는 제품이었다. 아무리 좋다고 소문난 제품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불편했던 것이 나에게는 오래 찾던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맞닿는 면도, 어긋나는 면도 함께 존재한다. 모두가 '이런 사람'이라 여기는 사람도 내게는 전혀 다른 결로 다가올 수 있다. 그 결이 나와 맞을 때도, 비껴갈 때도 있다. 한 사람 안에서도 여러 층이 겹쳐 있어, 어떤 면은 편안하고 어떤 면은 낯설다. 그 다층적인 존재 속에서 서로의 결을 느껴가는 일은 지치고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맞닿아가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길을 찾아 나서는 것 아닐까.
이토록 나는 철학에 진심이었던 사람이었나 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결을 관찰하고 작은 상처와 시행착오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화장품 한 통에서부터 도로 위의 스치듯 지나가는 순간까지, 삶 속의 사소한 조각들을 곱씹으며 마음속 작은 질문을 던졌다. 어떤 날은 지치고, 어떤 날은 혼란스러웠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하나의 진리나 거창한 명제, 고정된 답을 좇기보다 일상의 속도 속에서 스스로 묻고 느끼고, 작게라도 마음을 기울이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소한 순간에 잠시 멈춰 서서 마음 한쪽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질문들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며 진심으로 맞닿고 싶은 삶, 나 자신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