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을 배우는 시간

by 진다락

나는 늘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작은 일에 과하게 기뻐하고, 사소한 일에 유난히 마음을 썼다. 그럴 때마다 요동치는 마음을 달래려고 애를 썼다. 나의 감정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헤매거나 필사적으로 책을 읽거나 그냥 시간이 지나기를 버티곤 했다. 그러다 지쳐서 혼자 자책하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였다. 그렇게 매일의 일들에 일희일비하며 매달리다 보니, 정작 내가 바라봐야 할 세상을 넓게 보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속에 계속 되뇌었다.


일희일비하지 말자.





차분할 때 나는 비로소 '나'가 된 기분이 든다. 감정의 파도 위가 아니라 조금 높은 언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 그곳에서는 바람이 불어도 발이 땅에 단단히 붙어 있는 듯하다. 그때야 다른 사람도, 나 자신도 조금 더 깊이 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평온을 가장 의식하는 순간은 기분이 너무 좋을 때다. 마음이 들뜰수록 발이 땅에서 살짝 뜨는 것 같아 불안하다. 말이 앞서거나,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까 봐 속으로 얼거린다.


"진정하자, 침착하자."


그러면 내 안에서 가볍게 날뛰던 감정들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다.


물론 차분함을 추구하다 보면 정말 평온이 찾아올 때도 있다. 감정이 요동치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하루를 보낼 때면, 마치 세상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세상이 보다 더 부드럽고 관용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 덕분에 작은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더 가볍게 혹은 더 깊이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반대로 감정에 휩쓸리는 순간이 오면, 나는 스스로를 실패한 사람처럼 느낀다. 감정이 마음 안에서 고요히 흘러가는 게 아니라 고운 모래알처럼 손바닥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 때문이다.


사실 일희일비하는 내 성향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는 감정이 예민하고, 작은 변화에도 쉽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주위 환경과 기대 속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던 탓도 있겠지. 때로는 나 자신에게 너무 높은 기대를 걸어, 사소한 일에도 들뜨거나 상처받곤 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내 감정뿐 아니라 주변 상황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애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감정과 상황을 관찰하고 자각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상하게도 '아, 내가 지금 이런 기분이구나', '내가 이런 상황을 불편해하는구나'하고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또한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한다. 그럴 때 속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중얼거린다. 한때는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말이 되었다. 그 말 안에는 나와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그리고 완벽히 평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와 대화를 나누거나, 잠시 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기도 한다. "우리 언니라면 지금 어떻게 생각했을까?",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렇게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의 태도를 떠올리며 조금씩 내 안에 새긴다.



평온함은 단단한 의지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드러운 포용과 유연함 속에서 서서히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제 조금씩 느낀다. 차분함은 한 번 완성되는 태도나 상태가 아니라, 매 순간 끊임없이 회복하며 붙잡아야 하는 감정의 습관이라는 것을. 그 습관이 쌓일 때 편안함이 찾아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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