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나는 가끔 아이보다 내가 더 서운하다
내 남편 카우씨는 장남이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종갓집 3대 독자!!!'
는 아니지만, 나름 귀한 아드님으로 자랐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시아버님은 유독 장남을 아끼셨다고 한다.
자식이 둘인데 명절에 큰집엔 장남만 데려갈 정도였다니...
도련님의 섭섭함은 말 안 해도 알 만하다.
그래서였을까.
카우씨는 첫아이로 아들을 간절히 바랐고,
그 소원대로 우리에게 피그가 찾아왔다.
그 당시 내게 아이의 성별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임신 소식만으로도 실감이 나지 않던
어린 엄마에게
"그래도 하나 낳을 거면 아들 낳아야지.
그래야 시댁 눈치 안 봐"
친정엄마의 말은 마치 낡은 관습처럼 들렸다.
'정말 그런 게 있나?
그냥 어른들 세계 이야기 아니야?'
나는 괜히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었었는데
아마도 그 안엔 차별받던 둘째 딸의
서러움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삼 남매 중 둘째다.
어릴 적엔 가장 불행하다고 여겼고,
지금은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딸-딸-아들 조합의 '차녀'.
술을 즐기던 아빠는 가끔 우리를 불러
'가족회의'라는 명목 아래 고문(?)을 하곤 했는데
(실제로 어린 시절,
우린 그 시간을 고문이라 불렀다)
그때마다 나는 늘 고문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막내를 안 챙긴다"라고
언니와 함께 혼나고
다른 날은 "언니 말 안 듣는다"라고
동생과 함께 혼났다.
뭐 이런 억울한 상황이 다 있을까
지금 생각해도 서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은 공평했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보니
나만 언니도 있고, 동생도 있더라.
언니는 언니가 없고 동생은 동생이 없으니
결국, 위너는 나였던듯 하다.
카우씨는 피그를
"우리 장남~ 우리 장남~"이라고 불렀다.
장남이라 함은
여러 자녀 중 첫째 아들을 뜻하는 말인데,
그땐 아들이 하나뿐이었기에
나는 괜히 신경이 쓰였다.
"아니, 아들이 하나인데 무슨 장남이야?"
못마땅한 표정으로 면박을 주기도 했지만,
카우씨의 '장남 사랑'은 끈질기고도 변함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카우씨만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추억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계셨다면 손자를 얼마나 예뻐하셨을까.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 마음이 저릿한데,
유독 카우씨에게 애틋했던 아버지에게
피그를 보여드리지 못하는 그 마음.
어쩌면 카우씨만의 조용한 애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3년 후, 진짜 둘째가 태어났다.
그것도,
딸이.
흔히들 딸을 끔찍이 예뻐하는 아빠들을 보고
'딸바보'라고 한다.
단언컨대 카우씨는 딸바보가 아니다.
카우씨는
딸..
등신이다...
딸 밖에 모르는... 등신....
"우리 장남~ 우리 장남~"했던 카우씨가
"아들은 다쳐도 괜찮아. 딸은 안돼."라거나
"나중에 우리 랑이도 크면 방문을 걸어 잠그겠지?
랑이 방문은 뜯어버려야겠어. 커튼만 달아주자" 라거나,
어린이집 행사로
같은 반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치르고 온 날
남자친구랑 결혼하면 안 된다고
4살 아이를 앉혀놓은 채 설교를 늘어놓는다.
(진심은 아니었겠지...?)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게,
카우씨의 딸 사랑은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랑이가 아빠의 예쁨을 듬뿍 받으며
사랑받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랐다.
그 사랑이 랑이의 자존감이 되고,
온기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피그와 랑이,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래서일까.
사랑이란 이름으로 조금씩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카우씨의 말과 행동이
가끔은 마음 한 켠을 불편하게 했다.
한 아이를 향한 애정이 또 다른 아이의 마음에
작은 금을 만들지는 않을까.
나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울어진 사랑에 상처받던 아이였다.
지금은 "오히려 좋아!"라고 외치지만
그때의 상처는 내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사랑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두 아이가 서로 비교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카우씨가 피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깊고, 진심으로 사랑한다.
퇴근 후엔 늘 피그와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 하고,
점점 더 활동량이 많아지는 피그와
잘 놀아주기 위해
요즘엔 땀 흘려 운동까지 시작했다.
글을 쓰며 다시 돌아보게 된다.
혹시 이건, 내가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주 오래된 자격지심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 쏠리는 사랑이
내 아이를 다치게 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그 마음,
사실은 내 안의 아이가 아팠던 건 아닐까.
부모가 된다는 건
아이를 키우는 일인 동시에,
내 안의 어린 나를 보듬고,
매일같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인 것 같다.
완벽할 순 없어도
매일 고민하고, 질문하고,
조금씩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 보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부모 됨'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