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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우 Mar 25. 2022

바흐의 평균율 전주곡에 관한 어떤 대화

봄볕 푸르거니

겨우내 엎드렸던 볏짚

풀어놓고 언 잠자던 지붕 밑

손 따숩게 들춰보아라

거기 꽃 소식 벌써 듣는데

아직 설레는 가슴 남았거든

이 바람 끝으로

옷섶 한 켠 열어두는 것

잊지 않으마.

내 살아 잃어버린 것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빛나는 너.


  - 남으로 띄우는 편지 (고두현)







A 오빠! 이번 학기에 바흐 평균율 1권 21번 B플랫장조(BWV866)가 과제곡으로 지정되었는데 한 번 봐줄래? 악보에 빠르기나 셈여림 페달 등 아무런 표시가 없고 이전에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어 어떻게 연습해야 할지 막막해ㅠ


B 그런걸 전공생이 아마추어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A 그래도 오빠는 명반도 많이 가지고 있고 이런저런 연주를 많이 들어봤을 테니까 연습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B 명반이라고 하는 거는 일반인들의 기호에 따라 이름 붙여지는건데 연주자가 거기 의존하면 안되지. 더구나 음대 교수님의 과제곡이라면. . . .암튼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바흐의 이 B플랫장조는 (분위기상 두 연인이 서로 설레는 마음으로 교감하는 듯한 느낌이 마치 베토벤 소나타 30번의 1악장의 분위기를 닮은 데다가, 화성 처리에서도 놀랄만큼 시대를 앞서간 곡인지라) 나도 아주아주 좋아하는 곡이긴 하니 서로 같이 이야기해보는 건 재미있을 거 같네. 일단 한 번 쳐 봐!



A (악보를 펼치고 피아노 연주 시작)


B 워~워. 아니 왜케 빨리쳐? 너 몰래 명반들 많이 들은 것 아냐?ㅎ 그런 음반들을 들어보면 대체로 빠르게 시작하거든.


올드 스쿨의 피셔를 필두로 리히터, 굴드 등등 소위 명반의 주인공들, 그리고 좀 극단적이지만 임현정 등 연주자들은 대체로 빠른 템포를 선호하지... 해당 연주 앞부분만 짧게 한 번 들어봐~


피셔 https://youtu.be/8sU8njqcttQ


리히터 https://youtu.be/nbfj9hmtgHA


굴드 https://youtu.be/Hq5rKlmWp1M


임현정 https://youtu.be/oo-YqJJe9IM



A 다 들어보니 임현정은 약간 이상하기는 한데, 그래도 원래 좀 빠르게 쳐야 맞는 거 아냐?


B 임현정은 평균율을 칠 때 화성을 중심으로 한덩어리식 파악해야 한데나 뭐 그런 이유로 이 곡 말고 다른 곡들도 거의 서커스 묘기 수준으로 후려치는데. . .글세...


임현정

https://youtu.be/_1xJoVzoIQg



아무튼 이 내림마장조는 다른 피아니스트들도 임현정처럼 대체로 아주 빠르게 시작하는 경향이 있기는 해.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 .그렇게 빨리 치다가도 상당수가 나중에 부점 리듬에 의한 음형 부분(아래 악보 빨간 박스 부분)은 또 폭넓은 템포로 여유있게 펼쳐서 연주한다는 거야.  왜냐?  그 부분은 아무래도 처음 빠르기로 계속 치면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본능적으로 드는 거지 ..



A 맞어, 맞어, 사실 나도 앞 부분에서는 빠르게 치다가 그 부점 리듬 부분은 뭔가 중요한 부분 같아서 조급하게 보다는 좀 넓고 화려하게 짠, 짜잔~하고 펼쳐 연주하고 싶더라. . .


B 그럴거야 아마. . . 사실 이 부점에 의한 음형은 곡의 화성적 흐름을 주도 하는 부분이라 음악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기둥 역할을 하자나 . . .


아래 마사아키 연주를 봐도 그 부점 부분을 아주 화려하고도 무게감 있게 표현하려 하지..


마사아키 https://youtu.be/UrLwfNYFkYk?t=31



B 아래 연주에서 아기 표정 한 번 봐봐...그 부분에서 아빠 엄마를 보면서 뭔가 웅장한 표정을 짓자나. .ㅎㅎ


부점 리듬 음형  


https://youtu.be/G3HcMLAFgps?t=48




A 아이가 엄청 귀엽다ㅎ 정말 음악하는 즐거움이 표정에서 읽히는 것 같네. . .


B 그치? 아이 이야기하니까 말인데, 이 곡을 핸드폰 벨소리로 하거나 알람 소리로 설정하려면 아래 음원을 사용해봐. . .나도 핸드폰 벨소리로 이거 쓰고 있음.ㅎㅎ


벨소리 https://youtu.be/iu1Fs9-oWEI



A 우와 소리 너무 깜찍하고 이쁜데?


B ㅎㅎ 너도 벨소리로 해. . . 아무튼 (이야기가 갓길로 샜는데) 만약 너가 말한 그 부점 리듬 부분을 좀 큰 폭으로 풍부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거기다가 맞춰서 전체 곡의 템포 설정을 하고 그것을 처음부터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네. . .중간에 갑자기 부점 음형 부분에서만 템포를 변경하여 느리게 하는 방식보다는. . .


A 일관성의 측면에서는 그런데, 그 부점 음형과 동일한 템포를 적용하면 앞 부분의 아르페지오나 스케일에서 맛이 잘 살지 않을 것 같은데. . .앞 부분은 뭔가 빠르게 시작해야 맛이 살지 않나 싶어서. . .ㅎㅎ


B 맛이라니? 무슨 맛을 말하는 건데?ㅎ 시작 부분 악보를 봐! 이게 아주 정교하게 구성이 되어 있거든. . . 아래 악보를 보면 8분음표에 의한 저음 성부의 움직임을(적색  부분),  고음 성부가 32분음표의 미세한 시차를 두고 따라 붙으며 따라 붙고 있지(파란색 부분)?



B 이렇게 시차를 두고 엇박으로 같이 진행되는 두 가지 다른 성부의 움직임을 분명히 부각시키되 그 두 가지 성부의 음량이 밸런스를 잘 유지하면서 느껴지게 연주하는 것이 중요해. . .곡이 진행하면서 곧 (아래 교차부분 연주와 같이) 그 둘이 아래와 같이 베이스 성부는 위로 올라가고, 위의 성부는 아래로 내려오면서 합쳐지고 막 그러거든 . .


교차 부분 https://youtu.be/Yt-BW0CZ5UU?t=25


이 두 성부간의 밸런스는 사실 건반 악기의 종류나 음색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라서, 합시코드와 현대 피아노를 한 번 비교해서 들어봐!


합시코드 (루세)  https://youtu.be/5xf3O3EQXrg


피아노 (켐프)

https://youtu.be/8vSXk24DRzI




A 음. . .합시코드는 아무래도 음향 구조상 현대 피아노보다는 베이스가 좀 상대적으로 약하게 들리고, 빌헬름 켐프의 연주는 안그래도 베이스 음이 탄탄한 현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더 베이스 성부에 중점을 두고 친 것 같은데. . . 특히 켐프처럼 그렇게 치니까 곡의 분위기가 좀 많이 달라지는데?ㅎ


B 그치? 켐프의 경우는 성부간 밸런스도 좀 그렇지만 페달도 좀 과다하게 쓰는 것 같지 않냐?


A 옛날 연주자들은 어떤지 몰라도 요즘 연주자들은 바흐를 칠 때는 대체로 페달을 절제하기는 해. . .


B 꼭 그럴까?^^ 오히려 요즈음 피아니스트들은 페달을 안 쓰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것 같던데? 아래 슈타트펠트도 한 번 들어봐 페달 마구 쓰고 있는거...근데 이 친구는 아까 이야기 나눈 그 부점 리듬 부분도 아주 피아니시모로 조심스럽게 쳐버리네 . . .ㅎ


슈타트벨트 https://youtu.be/4odeOCo5vrM



B 아무튼 페달을 이렇게 과하게 쓰면 (아까 이야기한) 아래 베이스 성부 움직임에 시차를 두고 따라붙는 윗 성부의 선율의 느낌이 뚜렷이 부각되기 어려우니 이런 것 시험 때 피해야 할거야. . . 화성 흐름에 따라 적절히 페달을 사용할 경우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특히 일반 애호가들은 약간 굴드나 튜렉 류의 터치를 선호하기는 해. . .


Barton https://youtu.be/U0v4CckNE68


A 오키. 근데 결국 템포는 (오빠가 말한 곡 중간에 등장하는 부점 리듬 음형 부분의 템포와의 일관성, 그리고 저성부와 고성부 사이의 엇박의 시차를 둔 움직임이 분명하게 표현되기 위해서는) 느리게 가져가는 것이 더 낫다는 거야?


B 글세...무조건 느리게 가면 또 아르페지오와 스케일로 화려하게 꾸민 이 곡의 느낌이 손상될 수 있어서... 일단 아래와 같이 느린 연주들을 한 번 들어봐...


코브라

https://youtu.be/nVFX7aO7ONg



A 느리게 치니까 확실히 내부 구조를 더 선명히 파악할 공간은 생기네. . .근데 이 코브라라고 하시는 분 연주는 자기 이름처럼 너무 느려터져 좀 거시기하게 들리는데 ..?


B ㅍㅎㅎㅎ 이 분은 베토벤 교향곡도 다른 연주자들보다 2배 느리게 연주함...젊을 때 이 분 우리가 익숙한 템포가 사실은 작곡 당시 보다 두 배나 빠르게 치는 거라고 주장했었는데 요즈음은 입장을 살짝 바꾸신 것도 같고...


아무튼 현대 피아노로도 조금 느리게 접근하는 시도도 있어...이것도 한 번 들어봐!


Seidel

https://youtu.be/v6CTHbMC8DU



A Seidel 연주는 상당히 재미있긴 한데, 이렇게 치다가는 교수님께 점수 많이 받지는 못하겠다는 느낌이 드는데?


B 나도 일정 부분 동감!ㅎ 하지만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시차를 둔 성부간 움직임을 분명히 부각시키고 또 부점 음형의 템포와 너무 차이가 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템포는 너무 느리기보다는 어느 정도 타협은 해야 할 거야. . .


B 유튜브에 보면 자신들이 연구 결과 적정한 템포를 찾아 냈다고 하며 올린 연주도 있는데. . .템포는 그렇다치더라도 다른 부분들이 좀 음악적으로다가 거시기해서. . .


https://youtu.be/r-QVgCeDVIo


https://youtu.be/937Ao7jtSkY



A 그러네. . .뭔가 얻을 아이디어는 있기는 한데. . .위에거는 페달 과잉에다가. . .과제곡의 연주 기준으로 삼기는 좀. . .


B 그렇지? 그럼 니콜라예바나 쉬프 정도는 어떨까?


니콜라예바

https://youtu.be/Jb7j06_bdbQ



쉬프

https://youtu.be/thJg4GVKTlI



A 역시 거장들의 관록이 뭔가 다르긴 다르네. . .쉬프는 (시작부터 조급함이 없이) 템포의 일관성의 측면에서 우위에 있고, 니콜라예바는 조금 더 경쾌하기는 한데 템포를 상당히 많이 변화시키는 듯하네. . .특히 니콜라예바는 페달을 배제한 아티큘레이션이 상당히 특이해. . .튜렉 스타일과도 비슷한 듯하고. . .


B 사실 아티큘레이션은 특별히 악보에 표기가 없어서 연주자가 좀 더 자유롭겠지만, 베이스 라인 8분 음표가 두개씩 묶어져 있으니 너무 스타카토로 치는 것은 좀 곤란할 듯. . .



펠츠만 https://youtu.be/nqLOQrTipX0



B 내 생각에는 저성부는 위의 펠츠만처럼 그냥 하나하나 스타카토로 치기 보다는, 논레가토로 하되 둘씩 서로 대조가 되도록 묶어 표현하는 것이 어떨지?


A 논 레가토로 두 음씩 서로 대조되도록이라. . .말은 그대로 연주에서는 생각보다 표현이 쉽지 않겠는데?


B 단, 고성부 라인(32분음표)는 음가상 스타카토 느낌이 나는 것은 불가피해보이기는 한데, 아닌가?


A 그럼 32분음표들 가운데 성부 선율선을 이끄는 가운데 32분음표를 다른 32분음표들보다 부각시키는 훈련이 좀 필요할 것 같네. . .어렵다ㅠ


B 그리고 아티큘레이션도 그렇지만 부점 리듬 음형이 등장한 이후 처음에는 하행 스케일, 그리고 두번째 부점 음형 이후에는 상행 스케일이 따르자나. . .그 때도 (중력의 법칙에 따라) 하행 스케일은 끝에서 약간의 가속을, 상행 스케일의 경우 오히려 끝에서 약간 느려지는 등의 처리도 음악적 느낌을 살리는 데에 중요한 것 같아보여 . . .


A 음을 아래로 허무는 것은 쉽지만 위로 쌓아 올리는 것은 어렵다. . .뭐 이런 느낌인가?ㅎ


B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사실 시험 과제곡이라고 해도 이런 스케일은 화려한 현악기처럼 좀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연주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길다란 채찍을 잡고 공중에 휘리릭 하고 채찍을 뿌리는 느낌을 상상하곤 하는데. . .ㅎㅎ 아무튼 (아래 연주처럼) 부점 음형을 토대로 한 음악적 흐름이 단절되지 않을 정도로 중간 중간에 여백을 주어 긴장을 조성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 . .


Kimiko Ishizaka

https://youtu.be/BkmLG_O0xeI




B 그리고 또 하나 내가 감상할 때 신경 쓰는 부분을 말해보자면. . .거의 끝 부분에 있는 아래 악보의 박스 부분의 처리인데, 박스 처리 부분 맨앞의 32분음들이 단순한 스케일이라기 보다는 (바로 뒤에 이어지는 8분음표에 의한 음형을 축약한듯한) 멜로디이거든. . .그래서 파란색으로 표시한 느낌이 충분히 살도록 약간은 템포를 떨어뜨리면서 강조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 . .이부분은 나콜라예바 연주가 참 잘 처리한 거 같아...



니콜라예바 https://youtu.be/Jb7j06_bdbQ?t=60



A 그렇게 하는 게 음악적으로 흐름이 훨씬 자연스러울 것 같기는 하네. . .아 참! 그 박스 부분의 아르페지오 처리는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B 바로 그렇게 아르페지오가 있으니 전후로 템포 루바토가 어느 정도 가능한 거 아닐까? 굴드 연주 등 일부 연주자들은 이런 아르페지오를 다른 부분에서도 자주 사용하던데. . .시험이니까 너무 폼 잡지 말고 악보에 있는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좋을 듯. . . .


A 오키도키. 뭐 다른 거 신경 써야 할 부분 없을까?ㅎ


B 아 참! 마지막에 20마디에 토닉으로 복귀하여 저음의 8분음의 움직임과 고음의 32분 음의 움직임이 동반 상승하여 정점에 도달하면서 마무리 되기에 앞서 19마디 처음에 꾸밈음이 있자나...




이 꾸밈음을 코롤리오프처럼 아주 강렬한 떨림으로 처리할 때 매력적이던데. . .시험과제 곡이라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 번 과감하게 시도해봐~ㅎ


 Koroliov https://youtu.be/-IHCB_B1hWU?t=78


A 우와 코롤리오프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도 그러더니 여기서도 이런 꾸밈음을 아주 탄력있게 처리해서 매력을 발산시키네. . .굿굿!  이제 푸가 한 번 볼까?


B 허걱! 푸가는 다음에 하자. . .나 일하러 가야해. . ..


A 아라써, 그럼 다음에 꼭!^^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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