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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우 Mar 26. 2022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


별에서 소리가 난다.


산 냄새 나는 숲 속에서 또는


마음 젖는 물가에서 까만 밤을 맞이할 때


하늘에 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자작나무의 하얀 키가 하늘 향해 자라는 밤


가슴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


겨울은 더 깊어 호수가 얼고


한숨짓는 소리,


가만히 누군가 달래는 소리,


쩌엉쩡 호수가 갈라지는 소리,


바람소리,


견디기 힘든 마음 세워 밤하늘 보면


쨍그랑 소리 내며 세월이 간다.






-김재진 ‘가슴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C장조 Op. 53 '발트슈타인(Waldstein)'은 '열정(Apassionata)' 소나타와 함께 그의 중기 피아노 소나타를 대표하는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사건 이후 음악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후 이른바 '명작의 숲'이라고 하여 엄청난 작품들을 마구 쏟아 내기 시작하던 시기인 1803년에서 1804년 초에 걸쳐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로라 소나타



출판 당시 이 곡은 베토벤의 최초의 지지자이자 오랜 후원자였던 페르디난트 폰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되었는데, 그 후 사람들은 헌정자의 이름을 따라 이 곡을 '발트슈타인' 소나타로 불렀습니다.




프랑스 등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 새벽 여명의 여신인 오로라(Aurora)의 이름을 붙여 '오로라 소나타'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피아노 작곡 역사상 종래의 작품과는 차별화되는 신기원을 이룩한 기념비적 대작이라는 점에서 (이 곡의 헌정자 이름을 딴 발트슈타인이라는 제목보다 오히려 더) 이 곡에 걸맞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베토벤이 피아노 소나타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이 거대한 작품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에는 작곡가의 원대한 악상을 실제로 악기로 표현해낼 수 있는 피아노 제작 기술의 발전이 크게 한 몫을 했다고 봅니다.




에라르 피아노




베토벤은 1803년 8월에 프랑스의 유명한 피아노 제작자인 크리스티앙 에라르로부터 베토벤의 주문에 따라 새로 제작된 피아노를 받습니다.







이 피아노는 음역이 contra-F음에서 c4음까지로 종전 포르테피아노보다 확장되면서 전체적인 음량이 더 커지고 음색 또한 (특히 저음에서) 더욱 힘 있고 매력적인 악기였습니다. 그리고  페달의 기능 또한 종래의 피아노에 비해 대폭 개선되었습니다




당시 음악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추구하던 베토벤에게 이러한 새로운 피아노는 그의 예술적 창작 요구와 음악적 야심을 더욱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베토벤은 (마치 에라르 피아노의 잠재력을 이모저모로 실험하듯이) 악기의 아주 낮은 음역에서 가장 높은 음역을 특색 있게 사용하면서 섬세한 페달의 운용, 그리고 (멜로디 라인과 동시에 진행되는 긴 트릴과 옥타브 글리산도를 포함한) 어려운 다양한  피아노 주법 등을 통해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명인기(virtuosity)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대작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새로운 C장조의 소나타입니다.




참고로 아래 동영상은 포르테피아노 이전의 건반악기인 클라비코드로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연주한 동영상인데, 소노리티는 특이하지만 이 대형 소나타 작품을 제대로 표현해내기에는 악기의 표현력에 한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크라비코드 https://youtu.be/bCJ0-xAoduk




그렇다면 에라르 피아노로 연주된 발트슈타인 소나타는 그 소리가 어떠했을까요? 아래는 현재 린츠의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이 에라르 피아노를 최근에 복원한 악기의 소리를 확인할 수 있는 동영상입니다(이 복원 프로젝트를 수행한 Beghin이 그 결과물로 발매한 음반에 대하여는 아래에서 좀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에라르 피아노  https://youtu.be/ThGejBtLQdM




이 에라르 피아노는 음향의 진폭과 깊이감, cantabile의 표현의 감미로움 등에 있어서 베토벤 자신이 이전에 사용하던 비엔나 스타일 피아노보다 장점이 많은 반면 섬세함과 탄력에서는 뒤떨어진다는 점을 아쉽게 생각한 베토벤은 결국 에라르 피아노를 개조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만, 그러한 개조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채 결국 나중에는 작곡가 개인의 추억이 담긴 소장품으로만 베토벤의 곁에 남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면  베토벤이 이 프랑스 에라르 피아노를 염두에 두고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작곡하였다고 하더라도 사실 이 곡에 담긴 작곡가의 음악적 비전은 (당시의 수준으로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에라르 피아노로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더욱 원대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후로도 피아노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현대에 이르러서는 음량과 표현 대역이 과거에 비해 크게 확장되는 등 더욱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으므로 어떤 분은 이 점에 있어서는 오히려 현대 피아노가 어쩌면 베토벤이 그리던 이상적 음형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현대 피아노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육중하고 비대해진 음향과 페달 사용시의 긴 지속음 등으로 인해 오히려 베토벤이 악보에 담은 낙차 큰 다이나믹과 섬세한 뉘앙스를 정밀하게 표현해내는 데에 있어서는 (에라르 등 포르테피아노보다도) 더 큰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현대 피아노로 이 곡을 연주함에 있어서는 (시대악기를 연주하는 경우보다) 더더욱 악보 및 그 행간에 담긴 베토벤의 의도를 정밀하게 읽어내고 이를 피아노로 정확히 표현해내려는 연구와 노력이 더 요구되지 않나 싶습니다.




안단테 파보리와 미뉴엣




이 곡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사실은  베토벤이 이 소나타의 2악장으로 원래 제법 긴 안단테(Andante grazioso con moto)를 작곡하였다가 출판 과정에서 이를 교체한 점입니다.




베토벤이 원래 작곡한 2악장은 ‘안단테 파보리(andante favori)’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곡인데, 이 안단테는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의 유력한 후보인 요제피네 브룬스빅에게 ‘너의 안단테’라고 하면서 몰래 선물하여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안단테 파보리 https://youtu.be/_h47-7--U_8




베토벤은 어떤 연유로 이 소나타의 2악장으로 구상했던 위 안단테 파보리를 제외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확실하지 않지만, 안단테 악장을 들어본 베토벤의 지인이 이 안단테가 전체 소나타 곡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들 합니다. 베토벤은 결국 이 곡을 소나타의 2악장으로 사용하려는 원래의 계획을 접고 그 대신 짧은 아다지오 악장을 다시 써넣었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작곡된 2악장은 (그 다음에 작곡된 ‘열정’ 소나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attaca로 쉼없이 바로 3악장에 연결되는데, 이는 음악적으로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1악장과 3악장을 부드럽게 연결시키는 간주곡이자 3악장의 도입부(Introduzione)의 역할을 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이 발트슈타인 소나타는 출판 과정에서 원래의 구상과는 달리 2악장 구성으로 재탄생된 셈이 됩니다.




그렇다면 베토벤은 원래의 구상은 출판본의 내용과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요?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소나타 작곡 당시의 정황과 메뉴스크립트를 연구한 쿠퍼(Barry Cooper)와 같은 학자는 베토벤이 원래 이 곡을 위의 안단테 파보리 이외에도 아래 C장조의 미뉴엣 악장(나중에 바가텔로 출판된 WoO 56)과 함께 전체 4악장 소나타로 구상한 것으로 추측하고, 알레그로 - 미뉴엣 - 안단테 - 알레그레토 모데라토 등 4악장으로 이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재구성하였습니다.




미뉴엣 https://youtu.be/MmB3mil-OSA




나아가 위에서 말씀 드린 에라르 피아노 복원 프로젝트를 이끈 베힌(Tom Beghin)은 위의 쿠퍼 버전에서 내부 악장인 안단테와 미뉴엣의 순서를 바꾸고 베토벤이 나중에 피날레 악장의 도입부로 작곡한 아다지오의 핵심 부분을 아예 피날레 악장에 편입시켜 (하머클라비어 소나타의 순서와 같이) 전체 4악장 소나타를 아래와 같이 재구성하여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1악장 https://youtu.be/BVqzATB-ChI


2악장 https://youtu.be/kz7m0pZL1Qg


3악장 https://youtu.be/rDewpYDpNzc


4악장 https://youtu.be/xdgHfnGXPFM




이와 같이 발트슈타인 소나타는 초기 구상이 출판 과정에서 달라지면서 그 악곡 구성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있는 작품입니다만, 아무튼 베토벤이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구상함에 있어서 (불멸의 연인의 강력한 후보인 요제피네에게 몰래 헌정한) 달콤한 연애편지와도 같은 안단테 파보리와 귀여운 미뉴엣을 이 곡의 내부 악장으로 구상하였다는 사실은 이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통해 작곡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정서의 해석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겠습니다.







아래에서는 늘 겸손한 자세로 베토벤의 악보를 깊이 탐구하는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를 중심으로 이 곡을 각 악장별로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이후 표기된 시간은 역시 쉬프의 아래 동영상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참조의 편의를 위해 유튜브의 동영상의 댓글에다가 Pablim 아이디로 이 글에 표기된 시간들을 모두 모아서 그 시간 표시를 클릭만 하면 바로 해당 부분을 참고하실 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Schiff https://youtu.be/k0m18rzfYAk





1악장


Allegro con brio




1악장은 세부적으로는 종래의 전형적인 소나타 양식과는 다른 변형들이 많이 있고 특히 코다가 단순한 악상의 마무리 역할 이상으로 그 내용이 매우 풍부하고 확대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지만, 크게 보면 제시부 - 발전부 - 재현부 - 코다의 구성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제시부(0:12)



제1주제



1악장은 4개의 16분음표의 연속음(동기 1)으로 시작합니다. 이전의 음악에서는 그 전례를 찾기 힘든 이 독특한 울림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이것이 마치 다가올 그 무엇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심장의 두근거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 기대가 당시 베토벤이 교제하고 있던 (안단테 파보리의 주인공) 요제피네와 관련이 있는지는 오직 추측만 가능하겠지요.








이러한 동기1의 울림을 배경으로 곧 동기 2(위 악보 셋째 마디)와 동기 3(위 악보 넷째 마디)이 서로 대화하듯 제시되는데, 이 짧은 악구를 토대로 베토벤은 어마무시한 건축물을 구축해냅니다.




이 제1주제에서는 (마치 음역이 확장된 새로운 피아노의 성능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작정한 것처럼) 동기 1의 낮은 음역과 동기 3의 높은 음역의 진폭이 매우 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만, 보다 자세히 들어보면 위로는 동기 2에서 동기 3으로 음역이 올라가며 점점 고조되어 가는 것과 대조적으로 아래, 즉 동기 1의 베이스음은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점점 더 내려간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C -> B).




이러한 동기 1, 2, 3의 구성에 의한 제1주제는 곧 다시 한 번 더 반복되는데, 반복될 때는 동기 2, 동기 3이 한 단계 더 고조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베이스 음은 다시 더 아래로 내려가고(B플랫 -> A)  그 다음에 동기 3이 최고 높은 음역으로 올라갈 때는 다시 베이스 음은 더 내려가(A플랫 -> G), 전체적으로는 베이스 음이 (C, B, B플랫, A, A플랫, G 순으로 반음계씩 내려가는) 큰 하향 스케일을 구성하게 됩니다(아래 Oort의 연주 도입부에서 이 베이스의 하향 스케일에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Oort https://youtu.be/Ou7ATkpzpRU



이러한 도입부의 베이스의 햐향 스케일은 발트슈타인 소나타 전체를 통괄하는 하나의 컨셉으로도 작용하는데, 1악장의 코랄 풍의 2주제나 카덴차 등은 물론,  2악장 도입부와 3악장의 핵심 주제, 피날레의 움직임 등에서도 집요하게 하향하는 장조의 스케일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심장의 두근거림처럼 느껴지는) 제1주제의 동기 1은 처음에는 8분음표로 그 다음에 반복되면서는 16분음표로 거의 트레몰로와 같은 느낌으로 흥분되며 떨리기도 하는데(0:33), 육중한 현대 피아노로 이렇게 매우 낮은 음역에서 피아니시모(pp)로 속도감을 가지고 계속 울리는 음들을 제대로 섬세하게 표현해내려면 더욱 세심한 주의와 엄청난 노력이 요구됩니다.




이하에서는 이 도입부의 트레몰로의 울림을 현대 피아노 연주로 한 번 들어보시면서 그 울림을 앞서 본 포르테피아노의 울림과 서로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선율 https://youtu.be/-wFvSqLLcrQ?t=37



Fouchenneret https://youtu.be/2QYj8vQ0y98




제2주제




이렇게 제1주제가 제시된 이후 다소 긴 전조의 과정을 거쳐 (역동적이고 집요한 호기심이 느껴지는) 제1주제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조를 이루는 (매우 우아하고 부드러운 코랄풍의) 제2주제가 제시됩니다(1:06). 이 제2주제는 앞서 말씀 드린 하행 선율로 시작하지만 다시 상행하며 그 안에서 또 다른 대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제2주제의 리듬은 그의 7번 교향곡 2악장에서도 채택된 닥틸-스폰데익 리듬인데, 일반적으로 으뜸화음으로 펼쳐지는 제1주제와 대비하여 제2주제는 5도 위의 딸림화음으로 제시되는 것과 달리 으뜸화음인 C장조와 딸림화음인 G장조의 가온(mediant)화음인 E장조로 제2주제가 제시되는 것이 특이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베토벤이 후일 하머클라비어 소나타에서도 다시 시도하지요.




아무튼 이러한 코랄풍의 제2주제는 우아한 셋잇단음 리듬과 결합되어 변주처럼 흐릅니다(1:22). 그 후 8분음의 셋잇단음 리듬이 넷잇단음 느낌의 16분음으로 바뀌면서(1:48) 리듬이 긴박해집니다.




그리고 (조용히 두근거리는 심장박동과 같은) 제1주제의 동기 1의 리듬이 이제는 좀 더 굵직한 타악기적 리듬으로 변모하여(아래 악보) 더욱 거칠게 박동하며 곡은 더욱 추진력을 더해갑니다(1:53).







이러한 추진력은 그 후 아래 악보와 같이 연속 스포르찬도에 의한 (기교적으로 매우 까다로와 특히 오른손의 반복 연습이 요구되는) 스타카토에 의한 8분음 옥타브 동형진행(2:02)으로 연결됩니다.






그 후 다이나믹이 급격하게 확 줄어들며(fp) 스타카토의 음형이 저음부(왼손 피아노)로 옮겨가고 트릴에 의한 크레션도(아래 악보 첫째 단락)로 더 텐션이 조성된 후, 바로 다시 두번 더 연속되는 fp에 의해 분위기가 정리되면서(강한 타건 이후 바로 급속히 여리게 바뀌는 이러한 fp는 악상의 전개에서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그 와중에 제2주제에 기반을 둔 닥틸 리듬의 축약형이 등장하고(아래 악보 둘째 단락) 그 주도 하에 제시부가 마무리됩니다.








이와 같은 제시부는 전형적인 소나타 양식에 따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2:37) 그대로 한 번 더 반복된 후 전개부로 넘어갑니다만, 연주에 따라서는 이러한 반복을 생략하고 바로 전개부(발전부)로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전개부(5:13)



전개부는 기대보다는 내용이 그다지 풍부하지는 않은데, 역동적인 제1주제의 동기들을 소재로 발전되기 시작한 후 곧 (제시부에서 제2주제와 결합되어 변주를 진행했던) 셋잇단음의 리듬과 당김음으로 악상이 상당히 격정적으로 변해가다가(5:47) 포르테(f)와 피아노(p)의 급격한 다이나믹 대조를 거쳐 왼손 피아노의 리드에 의해 심연으로 깊이 가라앉습니다(아래 악보).







그런데 여기서 참으로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 포착됩니다(6:37). 저는 곡을 듣다가 이 부분에 이르면 저도 모르게 속에서 심장 박동이 더 빨라집니다.



처음에는 매우 여리게(pp) 연속되는 하행 베이스음이 울리자 마치 그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오른손 피아노가 같이 낮은 음역에서 (그러나 베이스와 대조적으로) 상행 음형을 연주하며 반응합니다(아래 악보).






그 후 집요하게 계속되는 그런 왼손의 베이스음을 바탕으로 오른손이 마치 감정의 밑바닥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느낌을 생성해내는 듯 상행 음형을  생성시킵니다. 그렇게 생성된 음형들은 짧게 끊어지듯 점점 더 표면 위로 떠오르다가(아래 악보) 급기야 역동적인 넷잇단음으로 폭발하며(ff) 분출한 후 바로 재현부로 연결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베이스 파트의 섬세한 움직임입니다. 위로 점점 치고 올라가는 오른손 피아노의 기저에서 부글부글 끓는 듯 집요하게 반복되는 이 하행음형들을 매우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해내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리고, 이 집요한 베이스 하행음형은 별 변화없이 그대로 반복되다가 클라이맥스의 ff로 폭발하기 직전 f 부분에서 살짝 변화하는데(위 악보의 마지막 마디), 이것이 정점으로 향하는 추진력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미묘한 변화를 놓치는 피아니스트가 적지 않은데,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이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아래 연주 참조).




김선욱 https://youtu.be/rAW0Wnp02qQ?t=369





Ashkenazy  https://youtu.be/63Em11vjoHg?t=407





Zhao https://youtu.be/7l0UUOQk1GU?t=382





Bertolazzi https://youtu.be/PCCfJReUkeM?t=247





재현부(7:00)




발전부의 끝 부분의 거센 폭발은 갑자기 피아니시모(pp)에 의한 제1주제의 동기 1이 등장하며서 재현부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제시부가 그대로 반복될 것같은 예상을 깨고 제1주제를 마무리하는 짧게 끊어진 하행 음형의 끝 페르마타 부분(아래 악보의 세번째 마디)에서 제시부와 달리 변형되면서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합니다.




그 후 세 마디의 짧은 경과를 거치며 새로운 분위기를 이어갈듯 하다가(아래 악보의 두번째 단락), 갑자기 다시 포르테 이후 피아니시모로(f pp) 급격히 약해지면서(7:33) 트레몰로로 흥분하는 동기 1로 돌아옵니다(아래 악보의 마지막 단락).









마치 딴 길로 새려는 마음을 확 잡아채며 원래 가던 길로 이끄는 듯한 느낌이 나는 f pp 부분은 베힌이 정신이 확 들도록 매우 드라마틱하게 연출해내고 있네요(아래 동영상).




Beghin https://youtu.be/BVqzATB-ChI?t=450




그 후 제2주제로 연결되지만(8:08) (통상 재현부에서는 제2주제가 딸림조가 아닌 원조로 해소되어 재현되는 것과 달리) 제2주제가 여전히 원조인 C장조로 복귀하지 않고 이번에는 A장조로 나타납니다.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이 제2주제는 긴 코다의 마지막 피날레에 이르러서야 원조인 C장조로 해소됩니다.




아무튼 이 후 재현부는 제시부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재현된 후 코다로 넘어갑니다.





코다(9:47)




서두에 설명 드린 것처럼, 1악장은 (전개부가 기대보다 내용이 풍부하지 않았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매우 내용이 풍부한 코다가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코다는 (마치 제2의 발전부라도 새롭게 전개할 태세로) 제1주제의 동기 1을 나폴리탄 코드로 울리면서 시작합니다.




그 후  1주제의 동기 2와 동기 3이 매우 격렬하게(ff) 대화를 주고받더니 갑자기 fp에 의해 동기 1이 높은 대역에서 밝게 제시됩니다(아래 악보의 두번째 마디 부분 - 10:03).












그리고는 두근거리는 동기 1이 그 기대를 더욱 크게 하려는 듯 잠깐 살짝 부풀어 올랐다가(cresc.) 다시 피아니시모(pp)로 잦아들면서 당김음에 의한 하향 음형이 옥타브에 걸쳐 나타나면서 그 대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데, fp에서 cresc.를 잠시 거쳐 pp로 이어지는 이 부분(위 악보의 세번째 및 네번째 마디 부분)은 참으로 탄성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어린 나이임에도 피아니스트 선율이 기가 막히게 잘 연주했지만(그 부분에서 왼손을 살짝 드는 제스쳐도 참 멋지네요), 시작 부분의 fp의 다이나믹 변화를 좀 더 분명히 표현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네요(아래 동영상).




선율 https://youtu.be/-wFvSqLLcrQ?t=451





그 후 다시 fp에 의해 다이나믹이 갑자기 줄어들면서(10:33) 음들이 점점 극한의 높은 음역대로 비상을 한 후 다시 스포르찬도(sf)에 이은 하향 스케일에 의한 화려한 카덴차가 펼쳐집니다(아래 악보).









그 후 매우 우아한 제2주제가 등장하는데(10:46) 이 2주제는 그제서야 남성적인 제1주제와 마음을 같이 하듯 C장조, 즉 으뜸화음(tonic)으로 변모하며 갈등이 완전히 해소됩니다.




그리고는 남성적인 제1주제가 그제야 안심을 하듯 짧게 등장하여(11:19) 오른손 하행 스케일과 왼손 상행 스케일이 동시에 만나면서 마지막 세번 아주 크게(ff) 환호성을 외치며 1악장은 끝이 납니다(아래 악보).

















이처럼 발트슈타인 소나타는 1악장부터 진폭 큰 다이나믹, 다채로운 화성 전개, 화려한 피아니즘을 거대한 스케일로 표현하여 마치 한 편의 교향곡을 듣는 듯한 느낌을 주는 명작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소나타의 1악장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아래 동영상을 마지막으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케스트라 편곡 https://youtu.be/B4PXX531Tro




이어지는 글에서는 이 소나타의 서주에 해당하는 2악장과 이어지는 피날레 악장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Zitterbart https://youtu.be/ccf3nHKCu64?t=359



Meyer https://youtu.be/J-Haa1noy_8



Kodama https://youtu.be/bpZaTvqT3lc



Badura-Skoda https://youtu.be/xlQGnSRVoBs



Lubimov https://youtu.be/ssVM3lkuJoc



Huve https://youtu.be/e21m0jQBB0Y







Mähler's portrait of Beethoven, 1804–5






2악장(서주)

Adagio molto




앞에서 설명 드린 것처럼 베토벤은 원래 이 소나타의 2악장으로 F장조의 안단테 파보리를 작곡하였다가 주위 지인들의 권유로 안단테 파보리 대신 같은 F장조의 짧은 아다지오 몰토 악장을 작곡하여 교체하였습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안단테 파보리가 긴 길이도 길이지만 이어지는 3악장과 같은 론도 형식이어서 형식적으로 중복이 있다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오히려 3악장의 서곡으로 기능하는 아다지오 몰토 악장이 전체적으로는 더 어울리는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서주는 A - B - A' 구성인데, 그 분위기는 1악장 피날레의 낙관적인 환호성과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매우 사색적이며 신중한 느낌입니다.



A 부분(11:39)




이 악장은 앞선 1악장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에라르 피아노의 저역 한계를 실험하듯 아주 깊은 베이스 음에서 시작합니다. 그 후 부점 리듬과 테누토에 의한 8분음으로 된 음형이 울리는데, 이는 이어지는 3악장의 핵심 주제 선율의 부점리듬을 태동시키는 원형이 됩니다.   








이 A 부분의 움직임을 크게 보면 베이스는 F음으로 시작하여 6마디에 걸쳐 반음계 하향 스케일로 C까지 내려가는 가운데 그 위로 부점 리듬과 테누토의 결합에 의한 긴장 가득한 음형에 의한 노래는 대조적으로 지속적으로 위를 향해 나아갑니다(위 악보). 이러한 상하 동기 사이의 움직임의 대조, 대비는 기본적으로 1악장의 시작부분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점 리듬에 의한 도약이 있는 동기에 대하여 포르타토에  의해 묶인 8분음과 4분음으로 구성된 동기가 대화하듯 평탄하게 반응합니다(위 악보 두번째 마디).




B 부분(12:54)




그 후 부점 리듬에서 좀 더 위로 향하며 자유로운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이러한 노래는 짧게 잠시 더 반복됩니다.








A' 부분(13:50)



곡은 다시 부점 리듬에 의한 동기로 돌아오는데 집요한 부점 리듬에 의한 동기에 대하여 흔들리는 알베르티 베이스 음형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며 그 뒤로 줄곧 부점 리듬에 따라붙으며 반응을 보입니다.






그 후 마치 곡은 이내 조용히(pp) 잦아 들면서 끝에는 쓸쓸한 느낌마저 들면서 c장조로 전조가 되고 마지막 G음이 스포르찬도(sf)로 예리하게 울린 다음 곧 쉬지 않고(attaca) 피날레 3악장으로 절묘하게 넘어갑니다.








손민수 https://youtu.be/h79HtCu1Cpo





3악장

Allegretto moderato - Prestissimo





많은 작곡가들이 원대한 꿈으로 1악장을 시작하지만 피날레 악장에서 용두사미로 끝납니다만, 베토벤의 경우는 늘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 발트슈타인 소나타도 예외는 아니지요. 전체 543마디에 이르는 이 장대한 피날레 악장은 베토벤의 여러 소나타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극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Schiff (3악장) https://youtu.be/k0m18rzfYAk?t=930





이 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구성되었는데, A - B - A' - B' - A'' - B'' - Coda와 같이 전형적인 론도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 부분(15:30)





서주의 끝 부분에 이어 곡은 원조인 C장조로 시작하는데, 적지 않은 연주자들이 명인기를 뽐내려는 의욕이 충만해서인지 이 론도 악장을 시작부터 스피디하게 진행시키려고 합니다.




템포



하지만 베토벤이 기재한 템포 기재는 알레그레보다 느린 알레그레토에다가 그 보다 더 느린 모데라토가 결합된 Allegretto moderato입니다. 여기서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시작할 경우 아래 주제의 노래가 가지는 꿈꾸는 듯한 분위기가 더 잘 표현될 뿐만 아니라 코타의 프레스티시모와의 대조도 분명히 살릴 수 있는 이득이 있습니다.











이 피날레 악장은 피아니스트의 왼손과 오른손이 교차되면서 왼손에 의해 동경이 가득 어린 핵심 주제(위 악보의 4마디)가 매우 여리게 노래되면서 시작됩니다.  피아노 왼손에 의해 노래되는 위 주제는 전체 피날레 악장의 핵심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렇게 단순한 재로로 베토벤이 쌓아 올린 장대한 건축물은 실로 경이롭습니다.






여기서 먼저 주목할 것은 이 피날레 악장의 악보에서 베토벤은 각 부분에 페달을 적용하여야 하는 부분과 페달을 떼야 하는 부분을 매우 꼼꼼하게 지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페달




이 주제 선율은 다시 네 마디에 걸쳐 한 번 더 반복되며 전체 8마디(4+4)의 노래를 구성하는데, 베토벤은 이 노래를 페달을 계속 밟고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아래 악보의 파란색 부분). 이를 통해 첫 베이스 음인 C이 지속되면서 이 피날레 악장의 조성인 C장조 화성이 강조됩니다.









이 주제 선율은 살짝 분위기를 바꾸어 딸림음인 G를 기반으로 다시 울립니다(위 악보 빨간색).




그 후 이 선율은 또 반복이 되는데, 그 때 슬픔을 약간 머금은 단조로 바뀌고 그 이후로는 선율의 후반부가 변형되며 연장이 됩니다. 베토벤은 장조와 단조가 뒤섞인 이 긴 프레이즈를 계속 페달을 밟을 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위 악보의 노란색).




현대 피아노로 연주하는 많은 피아니스트들은 (이 부분에서 화음이 엉키는 것을 싫어해서인지 몰라도) 베토벤 당시의 포르테피아노와 현대의 피아노가 다르다고 하면서 중간에 페달을 끊어 깔끔하게 울리도록 연주합니다. 그러나 쉬프는 베토벤의 페달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데, 이렇게 할 경우 그저 깔끔하게만 울리는 다른 연주와 달리 서로 미묘하게 다른 감정을 머금은 음들이 뒤섞이면서 몽환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 후 그렇게 긴 페달 지시가 풀림과 동시에 분산화음이 아주 높은 음역에서 반짝이면서 주제 선율을 더 높은 음역으로 이끄는데, 이제는 주제 선율이 오른손에 의해 높은 음역에서 처음처럼 다시 반복됩니다(16:11). 이 때 아래로는 16분음표의 분산화음이 위로 치고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요동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주 여리게(pp) 연주됩니다.




Fouchenneret https://youtu.be/-OfwDKtCiJI




이 반복 부분에서 특이한 점은 주제 선율이 4마디씩 8마디에 걸쳐 페달을 지속적으로 밟고 노래된 이후 그 다음부터는 페달 지시가 이전과 다르게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16:22).




즉, 앞서 피날레 악장의 주제 선율은  [첫 베이스음인 8분음표(C) + 스타카토에 의한 4분음표 + 부점 리듬(점4분음표 + 8분음표)]로 구성된 전반부 동기(아래 악보 마디 1, 2)와 하행 후 상행하는 4분음표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후반부 동기(아래 악보 마디 3, 4)로 분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처음 주제 선율을 높은 영역에서 반복함에 있어서 처음에는 8마디에 걸쳐 페달 지시를 하지만, 곧 바로 주제 선율의 전반부에는 페달을 적용하고 후반부에는 페달을 배제하여 이 핵심 주제의 전후를 서로 극명히 대조시킵니다(아래 악보).








이렇게 주제 선율의 전반 부분에 페달을 적용하고 후반 부분에는 페달을 배제하는 대조는 이 피날레 악장 전반에 걸쳐 집요하게 등장하는데, (페달이 적용된 소리가 내는 몽환적인 느낌을 고려할 때) 저는 전반부가 꿈의 영역이라면 페달이 배제된 후반부는 현실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튼 (페달이 배제된 채) 주제 선율의 후반부동기에 바탕을 둔 음형이 거듭 반복되면서 트릴이 등장합니다.




이제는 이러한 트릴을 바탕에 깔고 다시 주제가 노래되는데, 그 아래로 피아노의 왼손은 32분음표의 상승과 하강 음계로 매우 격렬하게 요동칩니다(16:44).




이 때 또한 페달에 의한 주제의 전반부와 페달이 배제된 주제의 후반부가 극명히 대조를 이루는 것이 주목할 만한데(아래 파란색 페달 영역과 후반부 빨간색 참조), 그 후 곡은 B부분으로 넘







B 부분(16:52)



A부분에서 짧은 경과구를 거치면서 등장하는 이 B부분(아래 악보)은 상당히 씩씩하고 거침없는 진행인데, 매우 남성적인 춤곡의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부점이 없는 이러한 역동적인 움직임과 리듬은 페달이 적용되지 않은 주제 선율의 후반부 동기에서 태동하여 변형된 것도 같은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꿈결같은 A부분과는 크게 대조됩니다.











A' 부분(17:37)




위와 같이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 이후 다시 주제 가락이 이번에는 a단조로 세게 울리고 그 후 전조를 거쳐 다시 C장조로 돌아오면서 다시 A부분이 그대로 재현됩니다.




B' 부분(19:24)




그 후 다시 곡은 B'로 바뀌는데, 기본적으로는 B부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규모가 증가되어 대위법적인 진행마저 보입니다.




A'' 부분(20:20)




이처럼 B'가 펼쳐진 후 다시 주제 선율이 아주 세게 울리면서 A부분이 마치 소나타의 전개부처럼 (페달이 적용된 주제 선율의 전반부 동기를 중심으로) 매우 다채롭게 발전되어 나갑니다.




그 후 A부분이 다소 축약된 형태로 다시 재현되는데(22:25), 이 때는 스포르찬도와 함께 ff와 pp의 극한적인 다이나믹 대비가 이루어집니다.




B'' 부분(23:03)




제법 긴 A''부분이 끝나면 B''로 넘어가는데, 이 역시 앞부분은 앞의 B와 거의 동일한 진행을 하지만 곧 강약의 대비와 함께 더욱 웅장하고 화려하게 변모해갑니다.




그 후 다시 (페달이 적용된) 주제 선율의 전반부 동기에 뿌리를 둔 경과구가 등장하여(23:43) ff - p - pp - ppp로 점점 잦아들며 코다로의 진입을 준비합니다(ppp는 베토벤이 자신의 모든 소나타 작품에서도 매우 이례적으로 사용하는 셈여림 표시입니다).




코다(24:22)




코다는 2/4박자에서 2/2박자로 바뀌면서 템포도 prestissimo(프레스티시모)로 아주 빠르게 변모하며 스트레타로 끝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우선 우아한 주제 선율이 빠르게 제시되고 곧바로 음표들이 쪼개지면서 변주되기 시작합니다.




그 후 왼손이 웅장하게 주제 선율의 전반부 동기에 뿌리를 둔 리듬을 연주하는 위로 3잇단음의 4분음표의 아르페지오가 펼쳐집니다(24:54).




이 아르페지오가 다시 피아니시시모(ppp)로 점차 상행하더니(25:11) 극고음에서 옥타브 음계가 글리산도처럼 하강과 상승을 거듭합니다.




그 유명한 소위 옥타브 글리산도 부분인데, 연주자에 따라서는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활용하여 글리산도로 미끌어지듯 연주하기도 하고, 또는 (악보에 글리산도로 표시되지 않았으므로) 레가토에 주의하며 최대한 빠르게 타건하여 처리하기도 합니다(아래 다양한 연주들 참조). 그 밖에 기량이 딸리는 피아니스트를 위해 이 부분에 대하여 일부 음표를 생략한 축약 버전(ocia)도 존재합니다만, 어떤 경우이든 악보에 구분하여 기재된 8분음표와 4분음표의 각 음가가 뭉게지지 않고 정확하게 구분되어 표현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옥타브 글리산도 https://youtu.be/FB0ApWLibHc


치메르만의 조언 https://youtu.be/VgLQwHR5BFo


다양한 연주들 https://youtu.be/AMmX-B756b0




그 후 지속되는 트릴을 배경으로 주제선율의 확장이 이루어지는데 이 피날레 악장에 등장하는 이런 트릴과 선율의 동시 진행은 기교적으로 극히 어려워 어지간한 실력이 있는 피아니스트도 매우 힘겨워하는 부분입니다.




트릴 부분이 끝나면 다시 주제 선율이 경쾌한 리듬으로 등장하여 핵심을 요약하듯 분위기를 정리하기 시작하는데(25:58), 그 과정에서 주제는 페달 사용 여부 및 pp와 ff의 사용을 통해 극단적 대비를 이루며 진행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정점을 향해 상승하는 C장조의 화음이 전개되고 4분음표 3개가 pp로 한 번 ff로 한 번 각각 울린 다음 이어 바로 4분음표 2개가 f로 울리면서 곡은 마무리됩니다.




이 마지막 대목의 시작 부분에는 페달 표시가 기재되어 있는데, 이상하게도 곡의 끝에 도달할 때까지 어디에도 페달을 떼라는 지시가 없습니다(아래 악보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피아니스트들은 중간에 decres. 부분 직전에 그 페달을 떼기도 하고, 쉬프처럼 페달을 계속 쓰는 경우에도 마지막 f에서는 바로 페달을 떼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청중들 또한 마지막 f가 울리자마자 소위 '안다' 박수를 치며 음악을 중단시키는데 일조를 합니다.




그러나 저는 마치 이 페달 표시가 (마지막 쉼표에 붙은 페르마타가 요구하는 여운의 공간과 함께) 동경과 꿈의 세계에서 깨지 않고 영원히 머무르기를 바라는 작곡가의 심정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어, 피아니스트들이 오히려 마지막 f에서도 페달을 떼지 않고 음이 자연스럽게 공간에서 사라질 때까지 페달을 잡고 있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Pashchenko https://youtu.be/V_I4Tb83zdw?t=599








이 위대한 작품은 무수히 많은 피아노의 거장들이 명연을 남겼고 지금 현재도 이 작품에 대한 자기만의 새로운 해석과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이러한 연주와 시도들을 유튜브를 통해 손쉽게 접할 수 있으니 여러분들도 (위에서 소개 드린 다양한 연주들 외에도) 유튜브에서 다양한 연주들을 직접 들어보고 비교해보실 것을 추천 드립니다.




Brautigam https://youtu.be/elJUO93uYzE



Zivian https://youtu.be/tziUiZbAR6s



Pletnev https://youtu.be/lbblMw6k1cU



김수연 https://youtu.be/UgyL68g_PWc




김선욱 https://youtu.be/AMmX-B756b0




Andsnes https://youtu.be/NsAaTaUFucs




Barenboim Masterclass https://youtu.be/8Lj26lEUtIA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 -  이성부






에라르 피아노 Replica (Chris Ma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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