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슴한 맛

by 마당넓은 집

엮인 굴비를 본다. 그 이름이 본디 굴비가 아니었다.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바닷속을 뛰놀던 조기였다. 어부의 손에서 뭍으로 나오면서 생명의 역동이 다했다. 생명이 물기를 거두면서 은빛 옷을 벗겼다. 강제로 입에는 소금을 물고, 소금 옷이 입혀지고 이름마저 굴비가 되었다. 햇볕에 꾸득꾸득 몸은 말라갔다. 수북이 모여있던 것들이 한 마리씩 떨어지며 끈으로 엮어졌다. 스무 마리씩 나눠 묶여 며칠 더 바람을 맞았다.


황금빛 보자기에 싸인 상자를 선물받았다. 펼쳐보니 노란 끈으로 가지런히 묶여있는 굴비였다. 모양도 엄격하게 놓여있었다. 한 마리씩 조심스레 끈을 돌려 풀었다. 끈에서 풀려나온 굴비가 웅크렸던 어깨를 펴는 것만 같았다. 다시 손으로 조근조근 눌러가며 모양을 바로잡았다.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불 기운을 더하니 마치 사라졌던 조기가 금빛 비닐을 달고 조기로 돌아온 듯 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연해에 조기떼가 많았다고 한다. 이제는 민담처럼 들려와 진실을 가려야만 될 것 같은 소리가 되었지만 연평도 연안에는 밤이면 조기 우리 소리로 바다가 시끄러웠다고 한다. 굴비는 이제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고 귀한 손님이 올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굴비를 보면서 빛났던 유년 시절을 생각한다. 햇볕에 거을려 까무잡잡했던 그 시절, 물속에서 은빛 구슬을 번떡이며 펄떡였을 조기의 모습과 같지 않았을까. 내가 뭍으로 나왔을때는 언제 였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라는 곳에 첫 발을 디뎌서 월급이란것을 받기 시작하면서 세상을 알아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면서 나의 삶은 굴비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것을 내어주고 그래도 아깝지 않았다. 첫아이를 출가 시키고 보니 기름이 덧 발라져 잘 구워진 굴비가 슬픈 것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결코 조기로는 돌아갈수 없다. 하지만 오래 세월 소금에 절여지고 볕에 마르고 바람을 품은 그 하얀 속살의 맛은 씹을 수록 고소하고 슴슴한 깊은 맛이 난다. 인생의 깊고 은은한 맛은 결코 바꾸고 싶지 않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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