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니 책상 위에 종이 한장이 놓여있다. 사망 통보서이다. 이름을 확인해 본다. 아!
며칠 전부터 상태가 좋지 않아 지난 목요일 보호자를 불러 지켜보도록 한 환자였다. 금요일은 다른 날보다 컨디션이 좋았다. 호흡곤란도 다소 회복된 듯 보였었다.
10년 정도 혈액투석을 받아오던 환자였다. 혈액 투석을 받는 환자들은 각종 합병증이 많이 발생한다. 이 환자 또한 관상동맥 시술을 여러 번 받았었다. 얼마 전부터 가슴 통증이 재발되어 심장내과에 의뢰하였더니 관상동맥 협착이 다시 왔다고 했다. 시술이 필요하다는 진단과 시술 시 위험 리스크가 높다는 설명도 덧붙였었다.
선택을 요구받을 때 누구나 딜레마에 빠진다. 삶의 정답은 없으니까. 지나한 병마의 80년을 지낸 가족들은 순리대로 삶의 결말을 받아들이길 원하였다. 언제 폭풍우가 덮쳐올지 모르는 고요한 해안의 불안을 가슴에 품었다. 부인과 딸은 아빠의 모습을 보며 몰래 눈물을 훔쳤다.
병실은 순회하는데 샤워실 앞에 딸이 서있다.
"여기 왜 서 계셔요."
"아버지 목욕하고 계세요."
목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오늘 컨디션이 좋아졌나 보다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이번 주말을 못 넘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머리를 스쳐갔다.
오랜 환자를 간호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직감, 촉이라는 것이 발동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명현 현상처럼 갑자기 컨디션이 호전이 잠시 보인다. 그때면 사람들은 깨끗이 몸을 씻는 경우가 많다. 그 뒤 마치 준비된 듯이 임종을 맞이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어떤 환자가 있었다. 단순한 허리 통증으로 입원하였는데 첫 날부터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 초로의 나이였다. 말없이 글 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름 낭만적이기 조차 하였다. 왠지 모를 쓸쓸함도 묻어있었다. 괜히 쓸데없는 생각이다. 마음을 고쳤다. 아직 많지 않은 나이였다. 자주 관심을 가지고 멋있다 칭찬했었다. 회고록이 거의 마무리할 즈음이었다. 새벽 4시경, 화장실을 다녀오고 침대 위에 눕듯이 쓰러져 영원히 잠들었다. 갑자기 온 심장마비 였다. 회고록 한 권는 유서처럼 남았다. 마치 여명을 알고 있었다는 듯.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지는 않지만 더러는 느낌으로 평소에 하지 않던, 알듯 말듯 한 말과 행동을 흘리기도 했다. 삶의 마지막은 이렇듯 다양하게 비쳤다.
가족이 와서 따뜻한 물로 깨끗하게 씻겨주었다. 얼마나 행복했을까. 기억 속에 행복한 줌 더 보탰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사후의 세계가 있다면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다. 노인 냄새보다는 비누 향기를 풍기고 갔으니 가시는 길 더 반겨주었으면 좋겠다.
목욕과 죽음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병원이기에 환자의 사소한 행동에 긴장을 하고 주의를 기울인다.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곳이 병원이니 생명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노인 환자가 늘어가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의료적인 지식과 삶에 대한 태도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픈 사람들은 모두 같은 환자지만, 특히 고령의 환자에게 더 마음이 간다. 몇 시간의 연명보다는 살아온 삶에 존중을 담고 가시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