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외출

by 마당넓은 집


우리 집을 딸 부잣집이다. 그렇다고 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아들도 둘이 더 있다. 아들 셋을 채우려고 계속 낳은 것이 딸이 다섯 되 이유이다. 흔히 딸이 많은 집들은 모두 각 얼굴이라 했는데 우리 집도 그렇다. 위로 큰 언니가 있고 그 사이 오빠가 둘이고 밑으로 네 딸이 쪼르르 인 셈이다.



위로는 나이 차가 있으니 별 개의치 않았다. 밑으로 넷은 전부 2,3년 터울이니 어릴 적부터 싸우면서 컸다. 특히 그중 셋째 딸인 내가 제일 고집이 세고 욕심이 많았다. 나보다 세 살 위의 언니는 살갑고 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형제가 모두 무뚝뚝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인데 비해 둘째 언니인 내 손위 언니는 친구도 많고, 애교 많고 정도 많은 성격이었다. 우리 식구들과는 결이 너무 다른 성격이었다.




어릴 적부터 자라면서도 나와는 제일 많이 싸웠다. 나는 결코 참지 않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언니가 울 때까지 놓지 않았다. 언니가 울면서 놓으라 애걸하며 조르면 슬쩍 놓아주었다. 그 일로 언니는 지금까지도 나를 원망하고 지금도 나의 눈치를 은근히 살핀다.


십여 년 전 둘째 오빠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남은 형제는 여섯이 되었다. 이제 막내도 오십을 휠 넘은 나이가 되었다. 다들 한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간다. 우리 형제들은 일 년에 서너 번씩 만나서 여행도 다니고 김장도 함께 하고 사이좋게 지낸다. 다만 둘째 언니 그러니까 나와 가장 아웅다웅하던 둘째 언니만 그 자리에 없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형제들을 사이좋게 지냈다. 아웅다웅해도 엄마를 중심으로 모여살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해 전부터 작은 언니가 이상하게 변했다. 모든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모든 형제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말했고 자라오면서 자기가 지나치게 희생했다고도 말했다.


그 일은 발단은 언니의 이혼에서 시작되었다. 언니의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해외로 잦은 출장을 다니면서 외도가 시작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혼 후 5년 뒤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 재혼의 결과가 좋지 못했다. 재혼한 남자와의 이별을 다시 하게 되면서 심한 우울증이 생겼다.


온몸이 아프다고 했고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손바닥에서 유리가 나온다고 했다. 손바닥에서 유리 가루가 나온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인 문제인데 아무리 설득해도 요지부동이었다. 하루 종일 손바닥의 유리를 뽑기 위해 피부의 껍질을 벗겨냈다. 가족들은 치료를 하라고 권했고 함께 병원을 가자고 설득했으나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리어 다들 정신병자 취급한다고 가족들을 외면하였다. 그 사건으로 잦은 가족과의 갈등이 생겼다.


어릴 적부터 놀기를 좋아하던 언니는 다른 형제들보다 학교를 짧게 다녔다. 그러다 보니 자격지심도 있었다. 가족들의 충고는 모두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라 생각하였다. 오빠, 언니에게도 함부로 말을 했고 비난과 질타를 일삼았다. 모든 가족이 총탄에 맞아서 너덜너덜 해졌다.


자구책으로 오빠가 지시를 내렸다. "우리 당분간 서로 연락하지 말고 거리를 두고 지내자."

그런 시간이 5~6년이 지난 갔다. 아들 결혼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연락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즐거운 혼사를 망치게 하지는 않을까, 혹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다음에 무슨 소리를 할까.

그러다 연락을 했고 언니가 오게 되었다.


혈연이란 핏줄이란 이런 것이었다. 긴 세월도 몇 마디의 말과 몇 잔의 소주가 오간 뒤 "언니 참 별것 아닌데 힘들게 했네." 작은 언니의 말이었다.

가족들이 함께 맥주와 소주를 마시면서 지나간 허물을 서로 벗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나간 일들은 잊기로 하면서.

그때 갑자기 언니가 손을 내밀면서 말하였다. 엄지와 검지가 붉은색으로 껍질이 벗긴 상태였다.

"난 아직 유리가 나와." 순간 섬찟하며 막냇동생과 눈짓을 마주쳤다. 앞으로도 조심을 하면서 그래도 그사이 긴 막은 이제 그만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언니의 외출이 계속되어야 하기에 작은 긴장은 남겨두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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