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에 보고 듣고 하던 것이 은연중에 내 몸 안에 자리를 잡고 숨어 있었다. 예전 달력에는 유난히 글씨가 많이 적혀있었다. 날짜 밑에 음력 날이 적혀있고 그 곁에는 무슨 날이라 명명한 것들이 있었는데 기억으론 하루도 빈 날이 없을 정도로 빼곡했다.
할머니는 날을 맞춰 기도드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간단히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두 손바닥을 싹싹 빌면서 기도를 드렸고, 꿈자리가 사나운 날에는 마당에 소금을 뿌리기도 하였다. 특정한 날은 정성 들인 상을 차리고 기도를 올렸다.
일 년에 열세 번이나 있던 제사 때마다 먼저 곳간에 있던 성주 단지위에 음식을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제일 정성 들여 모신 신은 성주신, 조왕신, 터주신이었다. 해년을 넘길 섣달에는 집 주변에 붉은 흙을 돌려 뿌리고 집안에 사람의 출입을 금하며 새해에 액운이 집안으로 들지 못하게 하였다.
까마득한 옛 기억인데 그때의 생각을 하면 자연스레 할머니가 떠오르고 가슴이 따뚯해져온다. 그런 할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가끔은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붙이길 좋아한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랬다. 임시 공휴일로 하루 쉬고 출근하려니 마치 월요일 출근하는 마음이 들었다. 거리에는 차들이 많았고 신호등은 구간마다 설치되어 있었다. 푸른 신호를 만나면 마치 오늘 하루가 계속 기분 좋은 일만 있을 것 같고 붉은 신호를 신호를 만날 때며 오늘 하루를 조심히 지나야지 지레 짐작하곤 하였다. 다행히 오늘은 긴 신호대에서 대부분 짧게 기다리거나 푸른 신호를 자주 만났다. 자연히 기분이 좋았다. 이런 날은 사무실로 들어서는 발걸음도 가볍다. 미리 경계를 세우지 않고 시작하니 사람들과도 꺼림 없이 다가선다.
아침마다 톡으로 오늘의 띠별 운세를 보내오는 친구가 있다. 보내주는 마음은 감사한데 사실 잘 읽지 않는다. 나의 신호등 운세보다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톡은 날아왔고 나는 열어보지 않았다. 하루의 일과가 이런 요행스러운 운에 달려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것보다 더 요행스런 나의 신호등 운세는 계속 믿고 있다.
좋은 운세를 만나기 위해 점멸등이 깜박일 때 꼬리를 물고 다리는 그런 운전 습관만 버린다면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늘도 신호등 나의 운세는 그런대로 맞아들어가는 하루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