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갑자기 더워졌습니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듯 봄이 지나면 여름이 당연히 옵니다. 그 사이 여름 장마가 한차례 땅을 넉넉히 적셔주고 바로 더위를 안겨왔습니다. 올해는 그러한 장마도 없이 바로 여름이 오고 더위가 닥쳤습니다. 사람들은 마른 장마가 있었다 말합니다. 왜 굳이 장마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괜히 그 소리에 짜증이 납니다.
퇴근을 하고 나니 몸이 무력해지며 졸음이 밀려옵니다. 나도 모르게 소파에 누웠는데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일어나니 주위가 어둑해져왔습니다.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이 못마땅하여 에어컨을 틀고 나서야 정신이 차려집니다. 몸이 편리함만 좇다 보니 작은 불편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에어컨 바람 아래 일하다 퇴근길 주차장까지 가까운 거리 조차 더위에 숨이 막힙니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 마른 땅에 흙먼지가 바스락거리는 신작로를 십여 분 걸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 일입니다. 친구들 모두는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했습니다. 누가 더 검다 희다 생각 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름 바다에서 햇볕에 타서 껍질이라도 벗겨지면 심하게 바다에서 놀았구나 여길 정도였습니다.
길을 가다 나무 그늘이라도 만나면 고마웠고, 여름이면 당연히 더운걸로 알았습니다. 지금은 별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고 다만 삼계탕 먹는 날로만 기억되는 초복, 중복, 말복 이런 날들을 꼭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초복이 지나 중복이 되면 제일 더워지고 말복이 오면 차츰 더위가 물러가는 시절 흐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말복 끝머리에 가족들은 모두 바다로 피서를 갔습니다. 그때는 피서라는 단어보다 해수욕이라 말했습니다. 막걸리로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에 강낭콩을 넣고 빵을 한 솥 가득 찝니다. 지금의 옥수수빵처럼 네모 큼직하게 빵을 썰어 담고 닭도 한 마리 잡아 보따리 보따리를 식구들이 바다로 들고 가서
하루 내내 물놀이도 하고 솥을 걸어 가져간 닭과 바다에서 잡은 홍합이나 따개비 같은 것을 한데 넣어 닭죽을 끓여서 점심을 먹습니다. 삶은 옥수수를 한 냄비 가져가서 물에서 헤엄치다 배가 촐촐해지면 제각기 한 송이씩 베어 물고 다시 물에 들어가서 놀다 나오곤 했습니다. 그 하루가 한여름을 이겨내는 일 년 내내 기다리던 피서가 되었습니다. 해수욕은 우리 집만 아니라 마을 사람 누구나 여름에 한번 해야 하는 년 중 행사였습니다.
먼 옛날의 이야기만 같은 데 초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다에 해산물이 넉넉했고 바다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바다에도 정해진 구역 외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곳곳에 양식장이 있고 아차 하다가는 송사가 일어나기 십상입니다.
날이 더워지니 자꾸만 시원한 공간만 찾아가게 되고 찬 음료만 찾게 되니 옛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우물에 담갔다가 꺼내 먹던 수박도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했는지 . 그 어떤 것도 시원함에 만족하지 못하고 냉장고에서 꺼낸 수박도 시큰둥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어린 날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도 시원한 소낙비라도 한소끔 솟아지길 기다려봅니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보이지 않지만 요즘은 갑작스러운 이변처럼 밤사이 손님처럼 빗님이 다녀가길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