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년을 더 살았는데도 알다가도 모를 것이 남자다. 이만큼 살았으면 알 것만도 같은데 무슨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감정이 어찌 그리 섬세한지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3박 4일 일정으로 여름휴가를 왔다. 누구보다도 가고 싶어 했고 앞장서서 나섰다.
남편은 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잠시라도 앉아 있는 시간을 조갑증을 낸다. 빨리 다음 일정으로 움직이길 재촉한다. "왜 방에 가만있노. 어디 간다고 안 했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이럴 때면 나는 남편 눈치도 보이고 가족들 눈치도 보인다.
아침밥을 먹었으면 잠시 숨을 돌리는 게 보편적인 정서가 아닌가. 다들 식사 후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커피를 나누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혼자 집 밖 정자에 앉아서 핸드폰을 뒤적인다. 혼자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보고, 시골 동네를 한 바퀴 돌았으면 지칠 만도 한데 짜증이 난다.
친정까지 와서 싸움을 하기도 그렇고 속으로만 삭힌다.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고르고 고른 남자라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적당히 못 들은 척하기도 하고 들어주기도 하면서 살아왔다. 올 적엔 분명 3박 4일 일정을 계획했다. 이틀 밤이 지나니 갑자기 하루 일정을 당겨 떠나자고 한다. 폭우가 솟아진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가는 길이 걱정된다고 하고 다음 날 출근할 일도 걱정이라 했다. 이미 사전에 모두 알던 일이었는데 무슨 심술인지 모르겠다. 모든 결정은 자기중심적으로 하고 한번 하겠다 생각하면 고집을 부린다.
싫다고 하면 분명 또 다툼을 겪어야 한다. 갈등이 싫어서 형제들을 모두 남겨두고 하루 일찍 출발했다. 아침에 부모님 산소에 다녀왔고 내려오던 길 이모님 집도 다녀왔으니 할 일은 다한 셈이다. 이해하자. 참자. 속으로 깊은숨을 여러 번 쉬었다.
포항쯤 내려오는 데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의 고향 어른의 부고 소식이었다. 늘 부지런하고 성실하여 존경하는 어른이라 말하던 분이셨다. 칠순을 조금 넘긴 나이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얼굴 한번 뵌 적이 없는 분이고 남편도 어쩌다 얼굴을 한번 보는 정도의 사이이다. 작은 시골 마을이니 상을 당하면 서로 상조계 같은 모임을 가지고 도움을 주고받는다.
아침부터 날은 잔뜩 흐렸고 비도 한두 방울 내렸다. 다른 때 같으면 4시간 정도면 집에 도착할 거리인데 오늘은 포항까지 오는데 벌써 4시간이 소요되었다. 휴가 성수기라서 도로가 번잡하였다. 웬만해서는 자동차 핸들을 나에게 맞기지 않는 남편이 휴게소에 들러 잠시 운전자를 바꾸자 하였다. 그런 남편이 갑자기 집에 가서 곧바로 상갓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집에서 시골 상가로 가려면 2시간이 더 걸린다.
아침 부모님 산소에 다녀오는데 오빠가 말했다. "아침부터 웬 까마귀가 시끄럽게 우네. 전에도 이러더니 사고 난 적이 있었잖아. 그래서 오늘 예초기 적당히 베고 끝내려고." 하였었다. 가까운 친인척도 아니고 마을 사람의 상례에 지친 모습으로 다시 운전을 해 간다는 남편은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같이 보였다.
볼멘소리로 "여보, 부조만 하고 내일 내려가 오늘 집에까지도 6시간 운전인데. 시골까지 2시간 운전 더 하는 것은 너무 무리야,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은 갑자기 돌변하여 말했다. "이웃끼리 길흉사에 참여한다는데 별것 다 참견하고 잔소리하네." 성이 나서 눈이 노랗게 변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편의 화를 돋우다 일이라도 날까 싶어 꾹꾹 눌러 참았다. 고개를 창가로 돌리고 입을 닫았다. 한숨이 나왔다. 함께 맞붙으면 큰 손해가 난다는 것을 오랜 부부 싸움 경험에서 한발 물러난다. 속으로 '아휴 저걸, 참고 살아 말아.'
남편은 한참을 혼자 씩씩 거리더니 이웃에 살고 있는 외사촌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사망하셨고 내일 상이 나간다는 것과 장례식 장에 이웃사람들이 모두 다녀갔다고 하였다. 갑자기 목소리가 낮아지면 "아 그래요." 한다.
집에 도착하니 7시가 되어갔다. 6시간이 소요되었다. 주차장에 여행용 짐을 다 내려놓고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남편이 팔을 잡는다.
"아까는 화내서 미안해. 당신 말이 다 맞는데 나도 모르게 화를 냈네. 앞으로 안 그럴게."
아이고! 또 속고 속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얼마나 또 저 철들지 않는 인생과 함께 웃고 웃어야 할지. 참아야 할지, 깊은 고민을 하는데 결론은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