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에 끌리듯 찾은 곳은 성지곡 유원지이다. 초입부터 서늘한 기운이 날아든다.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의식이 숲에 다다르는 순간, 낮선 소요가 한꺼번에 달려온다.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다.
백양산 계곡과 성지호수에서 내려오는 물이 서로 만났다. 계곡물은 부풀어진 제 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떠밀리듯 내달린다. 그때 갑자기 물길이 낭떠러지를 만난다. 망설일 사이도 없이, 두려움을 토할 사이도 없이 물길에 밀려 떨어진다. 폭포는 물의 함성이었다. ' 쏴쏴 ' 폭포의 소리가 숲의 소리를 모두 빨아들이고 있었다.
빽빽한 편백나무 숲, 당길 듯 턱을 들고 하늘을 본다. 아련히 우듬지가 보인다. 그 사이 틈새를 비집고 햇살이 찾아든다. 어제까지 일주일, 오락가락하던 비가 멈췄다. 하늘이 개이니 물러간 줄 여겼던 더위가 다시 찾아왔다. 그늘을 골라 걷는다.
숲을 오르는 데크 길은 경사진 계곡에 기둥을 세워 만든 길이다. 나무를 벗하며 걷는다. 갈 지자 之 모양으로 길은 휘어지며 이어진다. 그 사이엔 하늘 높이 솟은 편백이 바싹 붙어 있다. 먼저 터를 잡은 나무를 따라 길이 이어졌다.
삼삼오오 산책로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휠체어를 타고 나온 노부부도 보인다. 아이의 유모차를 밀고 초로의 남자가 지나간다. 곳곳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젊은이들은 땀을 흘리며 총총히 지나간다. 경사로 위에 오르니 호수가 펼쳐진다. 호수 곁 벤치에는 중년의 부부가 앉았는데 잠이 들어 지나가는 인기척도 모른다.
눈앞에 성지호가 펼쳐진다.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호수는 도시에서 훌쩍 벗어난 깊은 숲의 모습이다. 호수에서 나무들은 제 얼굴을 비쳐가며 매무새를 고치는 듯, 가지들이 호수를 향해 뻣어 갔다. 가장자리에 커다란 잉어들이 둥근 입을 벙긋거리며 먹이를 재촉한다. 그때마다 작은 물방울이 물 밖으로 뛰어오른다. 때마침 공원 관리자인 듯한 여성 둘이 작은 전동차를 타고 ' 잉어밥 주는 곳' 이라 적힌 곳에 먹이를 넣고 있다.
호수를 둘러싼 그늘 아래 작은 정자들이 몇 있다. 어울려서 담소도 나누는 사람들과 더러는 누워서 더위를 식히는 모습도 보인다. 평화롭다. 멀리 물오리 두어 마리가 헤엄치며 다가온다. 하루의 피로가 물속에서 녹아버린다. 몸도 마음도 이미 초록이 되었다. 호수 주변은 잎사귀가 넓은 참나무과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졸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이렇게 나무이름을 적어둔것도 있다. 참나무는 모두 떡갈나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름이 읽고보니 나무 잎사귀의 크기가 달랐다. 도토리 종류도 다양하니 나무들의 이름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편백나무들은 멀지감치 산책로 뒤로 한 발 물러서 있다.
호수가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망중하니 호수 위에 반짝이는 잎새를 훔쳐보며 음악을 듣는다. 여름 햇살은 이렇게 그늘 아래 숨어서 보는 게 제일이다. 이제 해가 산 고개를 넘어가면 그 성질도 누그러지겠지. 한낮의 머리 위에 내리쬐던 끓는 듯한 햇빛처럼 치열했던 하루를 살았다. 숲과 호수에서 오니 뾰족했던 하루의 일들은 모두 무뎌지고 둥글어진다.
살다보면 유난히 뜨겁고, 따갑고, 쓰린 날이 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날도 있다. 이런 말이면 애쓰지 말고 말하지 말고, 뚜뻑뚜뻑 걸어서 오라. 상처는 숲의 초입부터 한겹한겹 아물어 간다. 가슴 벌려 반겨주는 말 없는 숲의 위로를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