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그리운 고향

by 마당넓은 집

내일 고향으로 휴가를 떠난다. 잠이 오지 않는다. 모로 누웠다, 다시 돌아눕는다. 잠은 들지 않고 기억 속에 그림들은 고향으로 향한다. 친구들과 뛰놀던 놀이터, 겨울이면 눈썰매를 타던 언덕, 함께 놀던 친구네 집, 학교 가는 길들이 되살아난다. 안개 속에 갇혀있던 그림들이 마음의 불을 지피니 어제 일처럼 살아서 움직인다.


고향 마을은 흔하디흔한 그런 작은 시골이었다.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큰 길이 있고, 실개천이 길 따라 흘렀다. 마을버스가 하루에 세 번 동네를 드나들었다. 큰길을 마주 보고 40여 가구가 살았다. 동서로 마주 보며 양지골, 응당골로 불리며, 행정구역으로만 1, 2반, 구분될 뿐 하나의 동리였다.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소소하게 살았다. 오랫동안 이곳에 터를 잡고 마을의 전통을 지키며, 나름 토반이란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바람이 불었다. 아무도 모르게 거침없이, 아니 그것은 바람이 아니고 소용돌이를 업고 온 태풍이었다. 마을은 개발이라는 태풍의 눈에 들었다. 국가핵심전략사업지역 지정, 저항할 수 없는 국가 권력의 힘이었다. 주민들은 보상비라는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쥐었다. 감자를 쥔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마을을 떠났다. 몇몇 사람들의 감자는 도회로 떠난 자식들의 집이 되고 전셋집이 되었다. 남은 사람들은 국가에서 정해준 택지에 감자를 심으며 정착하였다. 새로운 마을에는 담을 둘러쳤고, 대문이 달렸다.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건설장비들이 마을 길을 누볐다. 마치 점령군처럼 빈집을 헐고, 아름드리 고목들이 뿌리째 뽑혔다. 마을의 전설은 이렇게 이름 모를 곳으로 팔려나갔다. 뒤집힌 땅, 붉은 흙무덤, 마을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수백 년 전설 같은 마을의 역사는 커다란 쇳덩이의 며칠 삽질에 허리가 잘리고 맥이 끊어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 그림이 되었다,.


반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남았다. 그 뒤 알게 되었다. 단지 국가를 위한 일이라 의심없이 수용했던 일은 실제와 달랐다. 위험시설이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남은 사람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은 생업을 미루고 반대를 하였다. 몇 년간의 극심한 저항이 있었다. 마을의 사업계획은 취소되었다. 땅은 이미 모습을 잃었고,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삽질은 멈췄다. 마을은 헝클어진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마냥 팽개쳤다. 시간이 가면서 마을의 이야기는 기억 속에 묻혀갔고 먼 사람들에게는 단지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고향을 찾았다.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황량했다. 공사를 하다 멈춰버린 마을은 작은 언덕들이 들쑥날쑥하였고, 그 위에 잡풀과 잡목들이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흔적이라고는 마을을 가로지르던 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 되어있었고, 실개천을 건너 마을로 가던 낡은 시멘트 다리뿐이었다. 미꾸라지를 잡고 놀던 개천은 자취도 없이 말라 이름 모를 풀들로 덮여있었다. 기억을 비집고 들어서도 온통 낯선 풍경뿐이었다.


고향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인근에 숙소를 정한다. 여전히 마음은 이웃집 툇마루에 잠시 걸터앉았다가 떠나야 하는 손님이다. 고향집이 있던 곳을 바라보며, 문득 수구지심(首丘之心)이 떠 오른다. 여우도 죽을 때 고개를 고향 쪽을 향한다는 데 하물며 사람은 오죽할까. 눈대중으로 집터의 자취를 짚어본다. 이 다리를 건너갔으니, 아마 저쯤 어디일 텐데, 동생들과 서로 손짓으로 방향만 가리킨다. 뒷동산에 나지막했던 소나무는 장성처럼 자라 있다. 멀리서 보아도 이름을 알 것 같은 붉은 금강송의 모습이다. 남은 흔적을 애써 찾아보니 하늘의 구름이라 우겨 본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고향의 냄새는 아직도 코끝에서 간들거린다. 이른 출근을 하여 어김없이 병실을 둘러본다. 간호사들이 미처 돌아보지 못한 부분을 천천히 점검하듯 돌아본다. "아이고 몸은 아픈데 자꾸 전화는 오고···," 허리가 아파서 입원한 환자가 전화기를 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무슨 전화가 그리 많이 옵니까?" 지나가듯 물었다. 환자는 가덕도에 살고 있다고 한다. 가덕도는 현재 신공항이 들어서기로 한 곳이다. 공사가 진행되어야 해서 마을 전체가 이주해야 한다고 했다. 마을에서는 행정조치를 위해 자꾸만 연락이 오는데 아파서 병원에 있으니, 이도 저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걱정스레 말한다. 새로운 삶으로 과거의 자리를 대신하기엔 남겨진 삶이 넉넉지 않은 융노인 隆老人이다.


실향을 겪었다. 환자의 모습이 실향을 겪은 내 모습과 겹친다. 칠순이 되도록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 하는 마음이 헤아린다. 어디를 간들 고향을 대신해 줄 그곳이 있을까, 살아온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고향마을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등허리를 토닥였다. " 잘될 겁니다." 괜한 말인 줄 알면서 위로라고 하는 내가 밉지만, 달리 할 말이 없다. 고향을 기억 속에 잘 담아 자리를 옮겨갔으면 좋겠다. 외로움이 찾아들 때, 행복한 기억을 형형색색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도록.


뜻하지 않게 실향을 겪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본디 민족이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모여 사는 집단을 디아스포라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실향을 겪은 사람들도 또한 '디아스포라'가 아닌가 생각한다. 성격은 다르지만 고향이 그리워 찾아가도 사라진 고향은 찾을 수 없다. 세계를 떠돌며 정체성을 고민하는 디아스포라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 외로움의 깊이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 그린 수채화에 물을 엎질러버린 마음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은 거역할 수 없다. 다시 붓을 잡고 새로운 그림을 그려본다. 기억 속에 담긴 행복한 그림부터 그린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고 행복해야 하므로, 붓에 물을 듬뿍 바르고 꾹꾹 눌러가며 다시는 지워지지 않는 그림을그린다. 꿋꿋이 살아내는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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