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굿둑 다리에 오른다. 차창을 내리자 바람은 묻지도 않고 곁에 앉는다. 강과 바다의 경계를 짓는 하굿둑, 우측 낙동강 문화관을 지나 철새공원 주차장으로 향한다. 경계가 허물어진 섬이다. 먼 길을 찾아온 노고를 기억하여 먼저 강이라 부른다. 장벽 같은 아파트 단지가 내려보아도 강물은 곁눈질도 없이 혼자 놀며 흐른다. 낮에는 햇살을 담고, 밤에는 별빛을 담는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한 손에 목발을 짚었는데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가볍기만 하다. 천천히 걸으니, 풍경도 보이고 못난 마음도 읽힌다. 불편이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목발을 짚고 어디를 가느냐?’ 물어올까, 대답도 미리 준비한다. 꼭 가야만 한다고, 힘들면 놀며 쉬며 갈 거라고 말하련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목구멍에 가시와 먼지들이 고여 옴짝달싹 못 하던 지난 2년이었다. 토해내고 털어내고 나면 금세 다시 고여오는 먼지였다. 가시였다. 그때 나의 숨구멍이 되어주었던 곳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먼지를 힘겹게 털어내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봐 주고 들어 주었다. 그때의 이야기를 오늘 마지막으로 하면서 지난 먼지들을 바다로 흘려보낸다.
1월의 햇살은 따사롭게 정수리에 꽂히고, 간간히 달려오는 바람은 칼날처럼 매섭다. 이야기하려는데 갑자기 칼날 위에 서 있는 것 같던 그때가 떠오른다. 흘려들을 수도 있는 이 얘기가 내게는 한 개의 생명줄이고 역사이다. 이제는 남 얘기하듯 웃으며 시작한다.
어느 날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몸에 열이 나, 머리가 띵한 것이 몸살이 온 것 같아?”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지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렸다. ‘하여간 외 아들티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병원에 가보라 하였다. 잠시 뒤 “병원에 가서 약 지어왔어. 감기 몸살 이래.” 또 일일이 보고한다. ‘알아서 좀 하지’
감기 몸살이었고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변했다. 열이 지속되고 의식이 흐려졌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종합병원을 거쳐 대학병원에 갔다. 바이러스 뇌염이란 진단을 받았다. 약만 잘 먹고 치료만 잘 받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한 병이란다. 남들에게만 생기는 일이라 여겼는데 그 일이 내 가족에게 왔다.
당시 나는 직장에서 큰 업무를 몇 년째 도맡아 하고 있었고 하던 일은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새로운 일이여서 재미도 났고 성장도 약속받았다. 업무는 성공리에 마쳤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공로는 다른 사람에게 갔고 내게는 허물이 씌어졌다.
‘신은 인간에게 선물을 줄 때 시련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준다. 선물이 클수록 큰 포장지에 싸여 있다.’라는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말이 생각났다. 어떤 큰 선물을 주려는 신의 뜻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시련이라는 큰 포장지에 싸인 선물이 내게 온 것만은 사실인 셈이었다.
회복이 보장되지 않는 남편과 직장에서 흔들리는 입지, 양손에 들린 시련으로 휘청거렸다. 제자리에 서 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먼저 남편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기억을 삼켜버린 뇌염이란 병은 질병이라기보다 공포였고 두려움이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가장의 자리에 섰다. 몸을 낮춰 일하고 밤에는 남편의 병상을 지켰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 제 집조차 기억에서 지워버린 남자가 되어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다. 몸에서 이탈된 10킬로그램의 육체는 보호가 필요했다. 신이 기억을 빼앗아 갈 테면 그만큼의 고집도 가져가야지 고집만은 고스란히 남겨서 돌아왔다. 신의 심술이었다.
기억은 잃고 고집만 앙다물듯 품은 남자는 가족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는 돌아서서 제 가슴에 또 생채기를 냈다. 가슴에서 피가 흐르고 숨구멍에 먼지가 차여갔다. 그럴 때면 을숙도 철새 공원 갈대숲을 찾았다. 산책로를 걸으면 햇빛이 상처를 치유하고 바람이 덮어주었다. 갈대에 푸념하고 자맥질하는 철새에게 내 말 들어 달라 고함쳤다. 먼지를 다 쏟아내고 돌아가서 가족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갈대는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푸념을 들어 주었다. 새들은 비밀을 지켜주었다. 매듭으로 엉킨 실타래는 그냥 을숙도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은 숨을 쉬어지고 힘을 내서 가족을 지켜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또 실타래가 엉키고 생채기가 쌓일 때면 을숙도 주차장에는 내 차가 서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딱지가 굳은살이 되기를 기다렸다.
동화책을 읽히고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밥을 먹으면서 반찬 이름과 오이, 딸기, 바나나를 먹고 또 물었다. 가까운 한 의원을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종이에 적어주었다. 현관 비밀번호도 텔레비전 리모컨의 이름도 모두 수첩에 적어 다녔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씩 다시 기억 속으로 불러들이는 일이 남은 셈이었다. 가족도 힘들었지만, 남편이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혼자서 남모를 노력을 하고 있었다. 뒷산에서 길을 잃어 한나절 마을을 헤맨 것을 한참 뒤에나 알았다. 조금씩 다리에 힘이 생기면서 회복이 되어갔다. 시골집 동백나무도 아이들의 이름도 하나씩 머릿속에 그려졌다. 희망의 빛이 보였다. 남편의 수첩 속에 빽빽이 적힌 기록은 가족들이 모르는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남자만의 노력이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제곡처럼 남편이 제자리를 찾았다. 딱지는 이제 굳은살이 되었다. 가장의 자리는 당당히 주인에게로 갔다. 남편은 직장으로 복귀하였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내 긴장의 끈이 늘어졌다. 다리를 삐끗했는데 발가락 골절이 되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다시 신호가 온 것이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는데 차는 벌써 을숙도 하굿둑 다리에 올랐다. 목구멍에서 까닥까닥 신호가 왔다. 마치 빗길 하수관 구멍 위에 있는 나뭇잎처럼 팔딱였다. 누군가 낙엽 조각 하나만 걷어주면, 그 순간 '쭈욱' 소리를 내면서 물은 순식간에 하수관으로 사라질 것이다. 머들머들 자꾸 헛기침만 났다.
엄격하게 가지치기를 한 동백나무 울타리가 바람의 길을 안내한다. 성질 급한 아기 동백이 붉은 꽃잎을 내민다. 울안의 꽃이 봄을 반기고, 울 밖은 갈대가 겨울의 끝을 잡고 있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겨울이 들어왔는데 코끝에는 봄 향이 난다. 그 기분 좋은 느낌을 느끼는 순간, 먼지 하나 또 목구멍을 ‘툭’ 치며 사라진다. 가슴에서 희미한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