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저절로 엄마가 되었다. 그 후로 내 모든 삶의 첫째 일은 엄마라는 이름의 책임이었다. 내 엄마가 그러했듯이 나도 엄마처럼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그 일들은 세상의 모든 일의 중심이었고 버거운 일이었다. 언제나 서툴고 힘들었다. 세월이 들면서 하나둘 경험치가 쌓이면서 남들에게도 자연스레 엄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엄마라는 부름에 소스라치던 일들은 남의 일이 되어가고 누구 엄마라는 이름도 익숙해져갔다. 그래도 꿈속에서도 가장 익숙한 풍경과 느낌은 나도 엄마의 딸이었을 때의 기억이다.
점점 과거의 잔상들이 현재에 와 닿는 시간이 많아진다. 아직도 나도 모르게 엄마를 찾는다. 세상 어디에도 없고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데 내게는 항상 엄마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가끔 혼잣말로 웅얼거려본다. " 엄마, 나 지금 힘들어" 하고
엄마 생전에 우리 자매들이 모이면 습관처럼 하던 일은 몰래 엄마의 흉을 보는 일이었다.
엄마가 나이들어 가면서 자꾸 이상하게 변해가고 주책 맞아지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 언니야, 우리 엄마 왜 그래,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욕심 너무 많지"
" 언니야, 엄마 이상하게 변했지, 하여간 할미가 너무 멋을 부려!"
이런 이야기가 대부분의 주류가 되고 나머지 또 하나는 엄마의 아들 바라기를 흉보는 일이었다.
" 엄마, 짝사랑이야 " 놀리기도 했다.
매번 엄마가 싫어서가 아니고 엄마는 우리들의 관심사이기도 하고 확고하게 변하지 않는 고집이 싫어 서기도 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일곱 남매를 키워오신 엄마가 고집 없이 어찌 자식을 키워낼 수 있었을까
마음으로 이해는 하면서도 감사하다는 한 번도 말을 제대로 못했다.
그래도 엄마의 딸인 것이 제일 좋았다. 늘 든든한 엄마였다.
그래도 엄마의 단점을 들자면 우리 자식들이 힘들다 이야기를 하면 엄마가 더 힘들어하고 속상해서 그 속상함을 내게 풀어낼 때였다. 그때 듣고 싶은 말은
"괜찮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였는데 엄마가 더 속상해서 하소연이 생기니 더 이상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저런 엄마는 되지 않아야지 다짐을 하였었다.
이제 나도 30년 넘는 엄마 경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싫던 그런 모습이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자식이 힘들다 얘기하면 내가 더 아프고 힘들다. 엄마보다 더 펄쩍펄쩍 뛰는 내 모습을 본다.
"엄마, 엄마를 흉볼 땐 그 일이 그리 쉬운 줄 알았는데 참 어렵다." 아직 엄마로서 한참 멀었나 생각한다.
뜨거운 철판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끼 원숭이를 밟고 서 있는 아빠 원숭이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 생각도 하면서 힘든 내 자식들을 먼저 살펴야 하는 어미의 모습이 되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
나이가 먹어도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란 엄마다. 자식들에게 온전한 그늘이 되어 주진 못해도 잠시 쉼터 같은 엄마의 모습이 되고 싶은데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엄마가 더욱 그립다. 엄마에게 미안하다.
엄마의 딸일 때 가장 행복했었다, 다만 입에서 말하지못했을 뿐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엄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