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 가까이 있는 선암사가 있다. 산자락이 시작하는 첫머리에 산을 등지고 있다. 큰 도량과 견줄만한 크기는 아니어도 부처님의 자비도량의 기운만은 창명하고 도도하게 흐른다. 일주문을 지나고 가파른 계단 위 나무 문을 밀고 들어서면 사찰 경내에 바로 들어간다.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대웅전을 살짝 비켜선 자리에 서있다. 언제나 묵언수행하는 고승 같은 모습으로 말없이 대웅전을 지켜보며 서있다. 마치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 같다. 신라 시대 창건했다는 사찰의 역사를 이 나무보다 많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해 질 녘이다. 겨울날 저녁 해는 달아나듯 바삐 숨어든다. 사찰 경내에 햇살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사각사각 사찰 흙마당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곁을 따른다. 대웅전 앞에 서서 두 손을 합장하고 삼배를 올린다. 그러고 나서 곁에 서있는 은행나무를 쳐다본다. 잎은 이미 떨군지 오래되었다. 앙상한 가지만 벌리고 있겠지, 쓸쓸한 마음으로 하늘이 자리를 메웠을 잎의 자리를 찾아본다.
가지는 혼자가 아니었다. 작은 꽃잎도 아닌 것이, 나무도 아닌 것이 마른 가지에 붙어있었다. 갈잎을 닮은 작은 둥근 것이 마치 장신구를 매단 것처럼 가지에 덧붙여있었다. 매달렸다고 표현하기엔 너무가 한 몸처럼 가까이. 자세히 보니 은행이 떨어지지 않고 등신불처럼 육신은 모두 거두고 씨앗만 품은 채 붙어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고 가지에 총총히 있었다. 은행나무는 흔히 보는 나무였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 보았다.
걸음을 멈추고 서서 한동안 나무를 쳐다보았다. 얼마 전까지 나무 곁에는 작은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은행이 떨어져 밟힐까 봐 사찰에서 은행을 바구니에 담으라고 준비한 것이었다. 고운 잎사귀가 어떻게 그런 역한 냄새를 품는 열매를 만들었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것 또한 은행나무의 생존이었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했었다.
살아가는 방법은 사람이나 식물이나 제각기 다를 것이다. 나무의 품을 파고드는 열매의 마음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떨어지기 싫어하는 씨앗의 생각일까, 보내기 싫어하는 나무의 뜻일까? 바라보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몰려든다. 아니다, 아니다. 이것은 자연이 만들어낸 어쩌다 생긴 실수이다. 사물은 순리대로 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