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명한 밥상

by 마당넓은 집

후다닥 옷을 갈아입었다. 퇴근해서 돌아오니 이미 남편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이불을 두르고 텔레비젼에 눈이 꽂혀있었다. "배 안고프니, 천천히 저녁하지" 서두르는 나를 보며 말하였다. 일주일에 한번씩 집에 오는 남편이다. 예전같으면 오자마자 배고프다, 투정아닌 투정을 부렸는데, 이제는 주는 데로 먹고 급히 서둘지 않는다. 그래도 혼자서 밥 챙겨먹고 있다온 남편이 맘이 쓰여 찌게라도 따습게 끓여주고 싶었다.

급히 쌀을 씻어 밥솥에 앉히고 지난 주말 사둔 톳을 찬물에 팍팍 씻어 쌀 위에 얹는다. 압력솥에서 10여분만 불을 올리면 금새 밥이 된다. 그 다음 찬을 만든다. 무는 어슷하게 다소 넉넉한 크기로 채를 썬다. 냄비에 채썬 무를 넣고 물을 조금 둘러 볶는다. 한소끔 무가 힘이 빠지면 참기름을 두르고, 소금 한꼬집 넣는다. 솥에서 하얀 김이 오르면서 더 달굼질이 시작된다. 달아오른 냄비에 볶듯이 살살 눌러붙지않게 저어준다. 바닥에 깔릴 만큼 물을 넣고 뚜껑을 덮는다. 살짝 익힐 만큼 적당히 볶는다.

다음 차례는 냉이 무침을 만든다. 주말 밭에서 캐온 냉이가 잘 씻어져 냉장고에 있다. 끓는 물에 냉이를 넣었다. 물에서 옥색물이 베어나온다. 겨울내 움추리고 품었던 냉이의 겉옷이 한겹 벗겨지는 것만 같다. 냉이의 뿌리가 익을 정도로만 데쳤다. 된장, 마늘, 참기름, 깨소금 등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이미 부엌은 참기름 냄새가 번지르르 하다.

다음은 양념장을 만들 차례다. 대파, 양파를 쫑쫑 썰고 간장,매실엑기스, 멸치액젓도 한 수푼 넣었다. 그 다음 갖은 양념 즉 고추가루,마늘, 깨소금, 참기름 조금을 넣는다. 집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다음을 마지막 국을 만들 차례다. 중간 냄비에 멸치를 적당히 넣고 국물을 우려낸다. 어묵탕은 멸치 육수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육수를 내면 더 깊은 맛이 난다.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 다음 멸치를 덜어낸다. 도마에선 어슷어슷 썰어둔 어묵이 기다린다. 어묵을 넣는다. 대게 국에 넣는 무는 규격을 맞추지 않는다. 시어머님이 가르쳐준 방식으로 무를 썬다. 무를 왼손에 잡고 칼을 바깥으로 툭툭 쳐내며 무를 돌려가면서 잘라낸다. 어느 하나 일정하지 않고 막썰기 한 듯한 무가 더 맛깔나게 보인다.

지난 가을 수확한 무를 땅에 묻어두었다 주말에 가져왔다. 올해 무 농사는 흔히 평가하는 잣대로 하면 실패다. 늦게 심어서 인지, 너무 빽빽히 심어서인지 모른다. 무의 크기가 들쑥 날쑥 하다. 그래도 도시 살이 작은 살림에 먹기에 좋다. 어른 주먹보다 조금 큰 사이즈를 손에 잡았다. 남기지 않고 적당한 크기다.

썰어둔 무를 넣고 어슷어슷 숭덩숭덩 대파를 썰어넣고 마늘 한수푼 넣는다.냄비에서 어묵탕이 끓어오른다. 이미 입안에서 풍성한 저녁을 기다린다. 마지막 멸치 액젓을 한수푼 넣어서 간을 맞춘다. 한스푼덜어 맛을 본다. 그럼 그렇치, 슴슴허니 구스하다.

밥이 다 되었다. " 식탁으로 오세요" 남편을 부른다. 남편은 주섬주섬 일어나서 냉장고 문을 열고 막걸리 병을 꺼내 식탁으로 온다. 저녁 한 잔을 술을 즐겨하는 남편에게는 이때가 행복한 순간이다.

밥솥을 여니 뭉근하게 익은 톳이 밥 솥을 덮었다. 검붉은 물이 솥안 가득 물들였다. 큰 사발에 톳밥을 퍼서 담는다. 그 곁에 무나물, 냉이 나물을 넣는다. 양념장 적당량을 넣고 숟가락으로 살살 밥을 비빈다. 톳에서 풍겨나온 바다냄새가 식탁을 가득 메운다. 밑찬은 김치 하나뿐이다. 다른 날 같으면 계란 후라이 한개 덧붙일 텐데 오늘은 시간 여유가 없다. 이 대로 만족이다. 추운 겨울날 뜨뜻한 어묵탕과 톳 비빔밥의 궁합이 환상이다.

겨울 밤을 깊어간다. 오늘도 조절하지 못한 식탐이 후회를 부를 건 뻔한 일이다. 하루를 마치고 밥상에 둘러앉안에는 먹는 저녁 밥상이 가족을 이어준다. 오늘도 한결같은 남편의 말 한마디 "맛나네" 간명한 밥상을 풍성하게 받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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