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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자 Mar 29. 2023

한글 모르는 어르신들의 이구동성 “쥐구멍이 어딨댜?”

-마을한글학교-

  쪽빛 하늘이 유난히 높아 보이는 10월의 어느 날, 문고 동아리 특강이 있어 시내버스를 탔다. 자리가 없어 손잡이를 잡고 섰다. 차창 밖으로 길고 폭이 좁은 꽃밭에 노랑 금송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구 터미널역에 이르자 여자 어르신 두 분이 버스를 탔다.

  “내가 그냥 여기 구 터미널에 앉아 있으라고 했잖여. 신 터미널에서 내가 일 보고 여기로 데리러 온다고.”  

70대 후반쯤 된 어르신의 화난 목소리가 시내버스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버스 안이 조용해서 인지 그분의 목소리가 하도 커서인지 버스 뒤쪽에 있는 내게까지 커다랗게 들렸다. 그날따라 버스는 대만원이었다. 그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서 읍내 볼일을 거뜬히 볼 줄 아는 옆집 할머니를 믿고 장을 보러 따라온 어르신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녁이랑 같이 갔다가 올라구.”

  “뭣 하러 따라와, 신 터미널에서 내 볼일 끝나고 그 자리로 데리러 간다니께.”

따라온 어르신은 고개를 숙였다. 눈을 어디에 둘 줄 몰라 버스 바닥에 두고, 귓불 아래로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다음 정거장은 우체국이다.

 “여기서 내려서 구 터미널 역에 가서 앉아 있슈.”

  하지만 따라온 어르신은 대답도 하지 않았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순간 마을학교 학습자 어르신들 말씀이 내 머리를 번개처럼 스쳤다. 나는 그분이 단번에  글자를 모르시는 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옆집 할머니를 못 만나게 되면 어떤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 할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걸려도 이 할머니와 함께 다녀야 걱정 없이 장을 보고 집에도 안전하게 갈 수 있어서다.


나는 마을학교에서 초등부 수업을 하기에 글을 몰라 겪는 어려움이 얼마나 생활에 불편을 겪는지 그 심정을 잘 알고 있다     

  “아, 오늘 성모병원에 갔다가 버스를 타야 집에 오는디 버스가 오길래 운전기사에게 이 버스 석문가유?”하고 물으니께, ‘할머니! 여기 버스 앞에 어디 가는지 써 있잖아요!’ 하고 소리를 질렀슈. 버스 앞에 써 있는 글을 읽을 줄 알면 왜 물어본 대유우? 아이구 이럴 땐 쥐구멍, 쥐구멍이 어디 있으면 쏙 들어가고 싶었슈.”

  “아이구 선생님, 어제 택배가 왔길래 애들이 부친 줄 알고 뜯어서 떡국도 끓여 먹고 한라봉도 한 개 먹었슈. 그리고 저녁에 애들한테 전화했더니 아무도 택배를 안 부쳤대유. 그런디 오늘 이웃집서 택배가 여기로 온 것 같다구 물어보더라구유. 그게 글쎄 이웃집 택배래유. 이웃집 택배를 왜 우리 집에 배달 하느냐구유. 우리 집에 놓고 갔으니 당연히 자식들이 보낸 줄 알고 택배를 뜯어서 꺼내 먹었지 뭐 여유.”

  “으아 ! 이럴 땐 쥐구멍이 어딨댜. 거기로 들어가구 싶어유.”

  “살면서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 이것슈?”

  “선생님에게만 살짝 말하는디유. 열일곱 살 때 동네 오빠가 편지를 줬는디, 누구한테 읽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간직만 하고 있다가 결혼할 때 태웠는디 그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내 나이 70이 넘은 지금도 그 내용이 참말로 궁금해유.”    

 

  시장 좌판에서 장사를 하는 어르신은 팔다 남은 물건을 시장 한켠에 맡기고 온다고 했다. 그러려면 물건을 맡기는 다라이에 이름을 써야 한다. 글을 몰라 같이 좌판 장사 하는 사람에게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해 다라이를 맡기고 왔단다. 다음날 가서 다라이를 찾으러 가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더란다.

   “왜들 그렇게 웃는 거여? 했더니 글쎄 내 이름을 개 00년이라고 썼대유.”


  글을 몰라 겪은 일은 며칠을 두고 말해도 다 못한다는 분들이시다. 우체국에서 청첩장이나 세금고지서 등이 오면 으레 마을 이장에게 물어보거나 자식들이 올 때 물어봐야 해서 납부 기한을 넘기기도 부지기수다.     

나는 이 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자격증이 필요했다. 당진에서는 교육을 하지 않아 2014년 천안시청에서 하는 문해교육사 자격증 과정을 이수했다. 교육을 받으러 매일 천안 가는 일도 번거로워서 지인과 함께 모텔을 얻어서 자격과정을 이수했다. 남편은 멀리까지 가서 교육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건강이나 챙기면서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 교육도 다 끝나고 남은 생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자격증을 받은 후 2년 넘게 자원봉사를 했다.     

 

  2016년도엔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성인문해 교원연수 과정을 이수하고 지금까지 9년여 동안 마을로 찾아가서 어르신들에게 초등부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어르신들 수업은 힘들지만 그분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살게 하는 보람 있는 일이다. 세금고지서도 스스로 해결하고,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서 소통도 하고, 버스도 글과 숫자를 읽어서 탈 수 있는 등 삶의 질이 높아지니 이보다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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