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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자 Aug 11. 2023

90을 바라보는 여인들, 내 아이처럼 가르칩니다

“쉬엄쉬엄하세요. 이제 건강 생각해서 일 좀 줄이세요.” 우리 아이들에게 듣는 말이다.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내게는 즐거운 일인데 자식들은 걱정이 되나 보다. 나는 연년생 세 아이를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과외 선생님처럼 학습지도를 했다.    

  

초등학교 때 기초가 잘 잡혀서인지 아이들은 중학교부터 스스로 잘해서 그때그때 살펴 주기만 했다. 첫째와 막내 두 아이를 공주사대부고에 보냈다. 둘째는 H 고등학교 장학생으로(17명) 선발되어 3년 내 학교에서 선생님과 기숙했다. 밥만 집에 와서 먹었다. 두 아이는 학교가 공주시에 있어 6년 동안 일요일마다 압력솥에 밥 안치고, 불고기 재고 바리바리 다른 먹거리를 싸갔다. 금강변의 등나무 아래 쉼터에 자리를 폈다. 밥하고 고기 구워 집밥이 그리웠을 아들에게 해주었다.     


아이를 보러 갈 때는 논술 준비를 위해 신문 사설 스크랩한 것을 가져다주었다. 막내 고3 땐 아예 공주에 집을 얻어 뒷바라지했다. 새벽 1시에 하교한 막내가 그날 녹화한 EBS 수능 방송분을 새벽 4시까지 공부할 때, 나도 책을 보다 아들이 잠잘 때 같이 잤다. 세 아이 대학 보낼 때까지 오롯이 교육을 위해 모든 날을 보냈다. 학교 선택에서 학과 분석, 학과에 합격 가능 점수 계산까지 해서 진로 선택을 하게 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입시요강을 우편물로 받고, 각 대학 입시설명회, 대성학원, 종로학원의 입시설명회에 다녀와서 아이에게 설명하고 진로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줬다.     


아이들이 대학원 다닐 때 나는 대학 공부를 했다. 배워서 아는 것을 나누고 싶었다. 같은 과 동기 중에 성인 문해 교원을 하는 학생이 있었다. 글 몰라서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어르신들에게 초등부 과정을 가르치는 일이다.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보람 있는 일이었다. 

     

성인 문해 초등부 과정 교원을 하려면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문해 교원 연수를 받아야 했다. 첫해에는 선발되지 못했다. 다음 해 ‘문해 교원 이수증’을 획득했다. 이 연수를 받아야 성인 문해 학생들에게 ‘초등학교 졸업장’을 줄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이수증을 획득하고 곧바로 어르신 문해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 뒷바라지가 끝나 마음 편하게 수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내가 수업하는 곳은 ‘찾아가는 마을 한글학교’로 75세~90세인 여자 어르신들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또는 가난해서 학교에 다녀보지 못한 분들이다. 농촌이라 모두 평생 농사일과 집안일만 하시는 분들이고 농사지으며 장사하는 분도 있다. 현재도 농사를 지으신다. 새벽 4시에 일어나할 일 미리 해놓고 공부하러 오신다. 첫새벽이라 잘 보이지 않아 더듬더듬 더듬어서 밭을 매고 온다고. 어느 어르신은 밭에서 일하다 공부 시간이 되어 점심도 못 먹고 달려왔다며 흙 묻은 바지 입은 채 교실로 들어오신다. 

    

“왜 인제 왔슈. 선생님! 진작 와서 글 좀 가르쳐 줬으면 월마나 좋았겄슈. 글 몰라 겪은 수모 덜 당하게유.”  

   

나는 이분들을 위해 시내버스로 왕복 2시간을 이동해서 2시간 수업을 몇 해 동안 하기도 했다. 주 6일 3개 마을로 찾아가 문해 수업을 하기도 했다. 글자를 모르고 칠팔십 평생을 살아내기가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는지 제때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한다. 본인 이름도 쓸 수 없어 은행 일을 볼 수 없고, 시장 가려해도 글 모르니 혼자선 버스 이용도 못 한다. 그뿐인가. 우편물, 세금 고지서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답답함, 설움, 상처로 얼룩진 이분들의 삶 앞에서 이 일의 가치를 어떤 단어나 숫자로 계산하여 표현하기 어렵다. 이분들에게 내 아이들에게 쏟은 정성만큼 열정을 쏟아 가르쳤고,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다.     


90을 바라보는 여인들, 그 연세에 초등부 과정을 열심히 공부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모진 가난 헤치며 살아낸 가슴 아리고 슬픈 이야기, 글 몰라 상처받은 한 맺힌 이야기, 글 배워 새로운 세상 살고 있는 멋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일곱 살부터 집안일 도왔다

팔십 평생 새벽부터 밤까지

집안일 농사일로 허리 굽었다 

    

맛나고 좋은 건 새끼와 남편 몫

어미처럼 살지 말라고

손발 닳도록 뒷바라지했다   

  

배우지 못한 죄

목구멍에서 세상 밖 못 나오고 쟁여진 말들

기 한번 펴보지 못한 인생     


낼모레 90 나이, 평생의 한 풀러 글 배운다

글 몰라 겪은 수모

한글 알고 죽으리라     


나도 사람이어라

글 알아야 눈 감을 수 있느니

글 모르고 죽을 순 없느니     

                              

                    황혼에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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