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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자 Apr 09. 2023

밥값은 하는구먼!

마을한글학교

  나는 두 마을에서 수업한다. 대개 “마을 학교”는 교사가 ‘리’ 단위 마을로 찾아가서 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같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한다. 그런데 이곳은 여러 면 소재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공부하는 학교다. ‘리’ 단위 마을에 “마을 학교”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마을 학교”가 있어도 동네 사람들에게 글 모른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 먼 곳으로 공부하러 오는 분들이 모인 학교다.


  오늘의 수업은 “자기소개”를 배우는 단원이다. 수업하고 나서

“여러분도 자기소개를 해 볼까요”

약 3분 정도 정적이 흘렀다.

“ 내 소개를 워떻게 말해야 할지 물러유. 선생님.”

“그러면 칠팔십 연세에 공부하게 된 이유도 좋고요, 본인이 하고 싶은 아무 말이라도 해 보기로 할까요?”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자기표현을 해 보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살면서 학교를 못 다닌 탓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표현을 못 하고 꾹꾹 참아왔던 분들이 아니던가.


  잠시 후 한 학생이 용기를 내어 말씀하셨다.

  “내가 장사를 했는디 돈을 많이 벌었슈. 이제 장사 그만두었소. 평생 글 물러 답답한 거 배우고 싶은 참에 우리 동네에 마을 학교가 생겼지 뭐유. 너무 좋았슈. 그런디 동네 사람들은 내가 고등학교 졸업한 줄 알거든유. 아무리 생각해두 우리 동네로 공부하러 뭇가겄더라구유. 뭇가쥬. 챙피허잖유. 그래서 알음알음 알아보니 이곳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한 대유. 얼씨구나 하구 버스 두 번 갈아 타구 여기루 오는 거여유. 동네 사람이 워딜 그렇게 가냐고 물으면 취미생활 하러 간다고 둘러대유.”

  부리부리한 눈이 매력적인 김 학생이다. 버스 시간도 한 시간에 한 번씩밖에 없다 했다. 그것도 곧장 갈아탈 수 있는 게 아니라 30분 기다려야 다음 버스를 탈 수 있어 학교에 오는 날은 하루시간을 다 사용한다고 했다. 이분 말을 듣더니 모두 말문이 터졌다.


  얼굴이 희고 옷맵시가 좋은 멋쟁이 권 학생이 말을 이어 나갔다. 20분 정도 걸어서 오는 학생이다.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무슨 일을 할지 고민했단다. 


  남들이 항상 반찬 맛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식당을 차렸다. 식당이 아주 잘돼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외상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외상값을 갚으러 와서는 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셈수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돈을 덜 주고 갔다. 권 학생의 계산과 손님의 계산이 맞지 않을 때가 종종 생겼다. 적어 놓으면 확실하지만 기억으로 계산하니까 주는 대로 받았다. 글 모르는 까닭에 따지지도 못했다. 권 학생은 글도 숫자도 모르지만 계산 하나는 정말 수준급이다. 기록하지 못한 아쉬움이 말 한마디마다 배어 있다. 

  “떼인 외상값 다 받었으면 가마니로 한 가마니는 됐을뀨. 내가 글 알었어 봐유. 속였것슈? 지금이래두 글 알구 죽을라구 공부하러 왔구먼유.”

 주름진 두 손으로 하얀 얼굴을 감싸며 권 학생은 수줍은 새색시처럼 부끄러워했다.


  이어서 선크림 안 바르고 맨얼굴로 농사지어 얼굴빛이 가무잡잡해 건강미 넘치는 최 학생이 말했다. 걸어서 10분, 버스로 25분 소요되는 학생이다. 어머니는 딸을 공부시키고자 교과서를 구입해 학교에 입학시켰다. 학교 다닌 지 사흘째 되는 날 할머니가 책보자기를(보자기에 책을 싸서 다님) 확 빼앗아 아궁이에 집어넣고 불태웠다. 멀뚱하게 서서 불타는 책을 바라보며 최 학생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엉엉 울었다. 부지깽이로 책을 뒤집어가며 태우는 할머니가 야속하고 미웠다. 슬프기도 하고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며칠 후 어머니는 할머니 몰래 또 책을 구입해 왔다. 그리고 할머니 눈을 피해  최 학생을 학교에 보냈다. 며칠이 안 되어 할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역정을 내며 책을 빼앗아 또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질러 버렸다. 어떻게 손녀딸이 공부하는 책을 불태우는 것인지 최 학생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더 미워졌다. 게다가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지지배는 집에서 일이나 가르쳐서 시집이나 보내라. 시집보내면 남의 식구 되는 것을, 뭐 헐라구 돈 들여 가르쳐! 아들이라면 또 모르겄다!”

  “나는 공부해서 학교 선생님 되구 싶었슈.”

  최 학생의 눈이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이슬처럼 눈물이 맺혔다.


 다른 학생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용기가 난 것인지 최 학생의 말이 끝나자마자 평소 말없이 조용하던 김 학생이 벌떡 일어났다. 대부분 학생의 머리 스타일은 꼬불꼬불 곱슬머리인데 항상 굽실굽실 굵게 파마한 김 학생이다. 부모님이 여자라고 집에서 살림이나 가르쳐 시집보내려고 학교를 안 보내 줬다고 했다. 글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언제나 주눅 들어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올라도 못했단다.


  김 학생은 성인 문해 학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수소문 끝에 장소를 알아냈다. 장소를 알아낸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다. 배우고 싶은 마음은 늘 품고 있었지만, 늦은 나이에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지 그것도 고민이다. 몇 달을 고민하다가 큰 결심 끝에 학교에 입학했다. 서너 달 열심히 다녔다. 자음과 모음부터 배우고 이제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다. 이름도 쓰고 주소도 쓰고 신기했다. 새벽에 일어나 나름대로 농사일을 했다. 남편 점심 먹거리도 만들어 놓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집에서 농사일이나 혀. 인저서 글 배워 뭣 할 거여?”

화통 삶아 먹은 듯 소리치면서 책을 갖다 쓰레기장에 버렸다. 나이 열일곱에 시집와서 칠십 다섯 될 때까지 농사일만 죽어라 했다. 김 학생은 화가 치밀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며칠 고민을 하다가 영감에게 담판을 지으러 마주 앉았다.

  “공부 뭇허게 헐 거면 나랑 이혼해유! 아주 오늘 담판을 져유! 나랑 이혼을 허던지 학교를 댕기게 허던지!”

  “내가 이겼슈. 남편에게 맨날 죽어 사는디 워디서 그런 오기가 생겼는지 말해 놓구 나도  놀랬다니께유.”

  김 학생의 얼굴에 활짝 핀 꽃 무더기를 볼 때 자연스레 지어지는 미소가 아롱 댔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곳의 학생들은 버스로 오는 분이 3분의 2, 걸어오는 분이 3분의 1이다. 이분들이 거의 농사를 짓기 때문에 농사철이 되면 결석도 한다. 그렇지만 학구열이 높아 수업 시간의 집중도는 고3 수험생 못지않다. 

  그런데 학교라는 공동생활을 처음 해보기 때문에 더러 의견이 달라 다툴 때도 있다. 하지만 서로 나누고 베풀고 정이 많으시다. 모두 친형제지간처럼 아끼고 배려한다. 일반 학생들보다 우정이 끈끈하다. 아마도 같은 아픔(배우지 못한)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쉬는 시간이 지나고 두 번째 시간이다.

  “이번 시간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짧게 써보기로 할 거예요.”  모두

  “뭇 써 유우.” 하신다.

   “글짓기를 직접 하기는 어려우신가요? 그럼, 우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말로 해 보기로 할게요. 좀 전 첫 번째 시간에 말씀을 잘하셨잖아요. 하실 수 있으시죠?”


  “그럼 내가 먼저 말해 볼게 유.” 십리 길 버스로 오는 오 학생이 먼저 입을 떼셨다.

  “ 어제 영감님이 방아를 찧었슈. 요새는 맛있게 먹으려구 그때그때 집에서 먹을 것은 가정용 기계로 방아를 찧어유. 그런디 이번에도 방아를 찧어서 아들딸에게 부칠 거래유. 영감이 방아를 찧어서 자루에 담아 묶어 놓길래 내가 배운 걸 생각해서 글을 써 보기로 했슈. 꺼멓고 굵은 펜을 가져다 자루마다 이렇게 썼슈. ‘1 아들 찹쌀, 2 아들 찹쌀, 1 아들 멥쌀, 2 아들 멥쌀, 1 딸 찹쌀, 2 딸 찹쌀, 1 딸 멥쌀, 2 딸 멥쌀, 현미 쌀’ 이렇게 유.”

  “아, 그랬더니 영감이 날 보구 뭐라고 했는지 아슈?”

  “글쎄 날 보구 ‘밥값은 하는구먼! 공부하러 댕기더니 밥값 제대루 허네!’ 이러지 뭐 여유.” 

  “우하하하 우하하하.”

  온 교실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한참 동안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큰아들 하는 ‘큰’ 자를 못 쓰겠어서 1 아들, 둘째 아들의 ‘둘째’란 철자를 쓸 수가 없어 ‘2’ 자를 붙여 쓰신 센스.


한바탕 웃음이 끝난 후 나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 여러분! 이렇게 배워서 영감님 말씀대로 밥값 잘하는 오 학생에게 잘하셨다고 박수 쳐야겠죠? 박수.”

  “오늘부터 여러분도 밥값 잘하는 학생 되십시다.” 교실은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오 학생은 지금 한 말을 그대로 쓰면 그게 글이 되는 거예요. 맞춤법은 틀려도 괜찮습니다. 내 표현을 누구라도 읽어서 이해할 수 있으면 됩니다. 차차 맞춤법은 배워 나가면 되니까 맞춤법 걱정하지 말고 써 보세요. 다른 학생들은 생각이 잘 안 나세요? 그럼, 아까 첫 시간에 여러분들이 이야기한 것, 그걸 쓰셔도 됩니다. 글쓰기 하실 수 있을 것 같죠? 자 그럼 지금부터 짧은 글쓰기 시작해 보십니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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