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서로를 '사람'이라 부르는 기적

폐허 속에서 길어 올린 투명한 이름

by 김여호
모두가 고개 저은, 그 폐허 한가운데서 끝내 서로를 '사람'으로 호명해 내는 기적 같은 오아시스




세상은 대개 깨끗하고 규격화된 것들 위주로 공전한다. 그 궤도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종두와 공주의 삶은,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음습하고 눅눅한 폐허에 가깝다. 누군가에게는 고개를 돌리고 싶은 비린내 나는 뒷골목이자, 가급적 섞이고 싶지 않은 '부적격'의 세계다.


그곳에는 화려한 조명 대신 벽지에 얼룩진 곰팡이와 가느다란 햇살 밑으로 부유하는 먼지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혀를 차거나, 연민이라는 값싼 외피를 두른 채 서둘러 자리를 뜬다. 그들에게 허락된 이름은 '전과자' 혹은 '장애인' 같은, 한 사람의 생을 납작하게 압축해버리는 무심한 명사들뿐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지독한 폐허의 한복판에서 기묘하고도 눈부신 '오아시스'를 발견해낸다. 사회가 그어놓은 금 밖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가장 원초적이고도 투명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무엇인가.


모두가 고개를 젓고 외면한 그 삭막한 황무지에서, 종두는 공주의 뒤틀린 몸을 '욕망'하고, 공주는 종두의 서툰 진심을 '신뢰'한다. 비정상이라 손가락질받는 그들의 연애는 사실 가장 치열한 인간 선언에 가깝다. 남들에게는 낡은 벽걸이 카펫 속의 가짜 풍경일지 몰라도, 그 안에서 코끼리가 걷고 아이가 춤을 출 때 두 사람은 비로소 껍데기를 벗고 '사람'으로 마주 선다.


결국 기적이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혐오의 악취가 진동하는 폐허 속에서 서로를 기어코 '사람'으로 호명해내는 일이었다. 세상의 시계가 멈춰버린 듯한 그 좁은 방 안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체온을 나누던 순간. 그 찰나의 진심이 바로 우리 생의 가장 절박한 오아시스였음을 영화는 조용히 증명한다.


봄날이 가고 다시 겨울이 와도, 그 폐허 한구석에서 길어 올린 이름의 온기는 쉽게 식지 않을 터.

서로를 호명하는 목소리가 살아있는 한, 그곳은 더 이상 불모지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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