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장면 하나 없이도 충분히 아픈 이유
And…that…would’ve been fine, but… I got smaller.
<결혼 이야기> 영화는 니콜과 찰리라는 두 이름이 겹치고 포개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영리한 태도다.
오프닝 시퀀스라는 찬란한 입구를 지나고 나면, 두 사람의 과거를 추억하는 회상 장면은 단 한 조각도 허락되지 않는다. 누구의 잘못이 더 무거웠는지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기에, 관객은 어느 한쪽의 편에 서서 다른 한쪽을 손가락질하는 섣부른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
덕분에 싸움의 끝에 남는 건 계산적인 앙금이 아니다. 그저 긴 이별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몸으로 앓고 난 뒤 느낄 수 있는 어떤 눅눅한 정서뿐이다.
니콜이 적어 내려간 찰리의 장점 리스트는 오프닝에서 가장 화사하게 등장했다가, 영화의 끝자락에서 다시 한번 고개를 내민다. 문장은 같지만, 그것을 감싸고 있는 공기의 온도는 전혀 다르다.
처음엔 산뜻한 연애 소설 같던 그 말들이, 이혼이라는 긴 허물을 벗어던진 찰리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올 때 문장의 질감은 완전히 변한다. 더듬거리며 읽는 찰리의 눈물과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니콜의 시선이 겹치는 찰나, 관객은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목격한다.
잔인하고 불투명한 언어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비로소 도착한 투명한 진심. 노아 바움백 감독은 여기서 인물들의 침묵을 조용히 지켜준다. 니콜은 울고 있는 찰리를 보며 눈물 짓지만, 성급히 다가가 위로하거나 관계의 복원을 꾀하지 않는다. 슬픔은 각자의 프레임 안에서 자기만의 자리를 지킨다. 억지스러운 화해나 과거의 미화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같은 계절을 통과해온 이들만이 사후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의 잉여. 영화는 그 먹먹한 순간을 관객이 온몸으로 받아낼 수 있도록 기꺼이 빈 공간을 내어준다.
오늘날 이혼은 흠이 아닌 시대가 되었지만, 노아 바움백은 그것이 입맛에 맞지 않아 뱉어버리는 음식처럼 가벼운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혼한 부부는 자녀라는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공통분모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농도의 또 다른 가족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