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삼키고 사랑을 뱉어내는 시간들
“아픈 만큼 사랑한다.” 요즘 이 문장이 내 명치끝을 묵직하게 누른다.
고(故) 박누가 선교사가 남긴 말이다. 그는 평생을 필리핀의 습한 오지에서 병마와 뒹굴었다.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뎅기열, 간염, 당뇨…….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는 그 병명들이 그의 몸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위암 말기, 사람들이 이제 제발 그만 쉬라고, 당신 몸 좀 돌보라고 소매를 붙잡았을 때조차 그는 다시 짐을 쌌다. 무모함이었을까. 암은 다시 찾아왔고,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멀리서 보면 셈이 맞지 않는 장사다.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면서 남을 돕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런 합리적인 의심 앞에서, 그의 대답은 내 얄팍한 셈법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가 아파봤으니까, 아픈 사람 마음을 알아요. 그 통증을 아니까 더 빨리 갈 수 있어요. 내가 아픈 만큼 그들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이 앓았던 모든 병과 고통이, 결국 타인에게 가닿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고 고백했다. 멀리서 보면 바보 같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그건 사랑이었다.
그의 말이 내 안의 닫힌 문을 두드린다. 나는 자주 비관하고, 습관처럼 냉소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거대한 불행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지극히 평범하고 이기적인 사람. 하지만 그런 비겁함조차 일종의 ‘앓음’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묻게 된다. “내가 겪는 이 비루한 고통도, 누군가에게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될 수 있을까.” 그의 삶은 말보다 컸다. 생존 본능을 거스르고 타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뒷모습. 나는 오늘 그 뒷모습에 내 하루를 기대어 본다. 여전히 내 마음은 좁고 위태로워서 금세 흔들리겠지만, 그럴 때마다 그가 걸었던 낯선 오지의 흙길을 떠올리려 한다.
내가 견뎌낸 아픔들, 그 안에서 길어 올린 짠 눈물과 더딘 회복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빚었다면,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상처 곁에 가만히 앉아있을 자격 정도는 생기지 않았을까. 나의 사소한 경험이 누군가의 외로움에 포개지기를, 내 넘어짐이 누군가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