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는 큰 땅을 일구시던 농부셨다. 논과 밭, 내가 좋아하는 배 과수원까지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맑은 날엔 들에서 땅을 일구시고, 비 오는 날엔 창고에서 새끼를 꼬며 쉼 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셨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면, 길가 주점에서 친구분들이 종종 할아버지를 불러 세우셨다.
“야, 니는 이미 부잔데 와 그래 일만 하노. 여기 와서 좀 놀다가 가라.”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별 대답 없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종일 일만 하시던 할아버지에게도 휴식의 루틴은 있었다. 바로 하루에 탁주 두 통 드시기. 약간 취기가 도시면
“우리 재후이~“ 하며 나를 부르신다. 내 뒤통수와 등을 쓰담 쓰담 하시며,
”할아버지는 내 잘 살라고 일하는 게 아이다. 우리 재후이 대학 공부하고, 장가갈 돈까지 벌어 놓을라고 안 그라나. 나는 재후이 니만 보면 하나도 안 힘들데이.” 하며 흡족해 하셨다. 할아버지의 거친 손엔 언제나 흙 냄새와 따뜻한 온기가 함께 배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할아버지의 그 때 그 말씀은 모두 진심이셨다. 내 신혼집 전세금의 원천은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세상이 달라졌지만, 햇볕 아래에서 묵묵히 흘린 땀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땅만이 아니다. 햇볕 아래에서 정직하게 일하며, 가족의 내일을 준비하시던 그 마음과 그 정신. 그것이 내가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진짜 유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