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승을 따라 걷게 된 시간

by 강재훈

군 제대 후 복학한 첫 학기, 공학수학을 가르치던 한 교수님이 계셨다. 출석도 숙제도 성적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수업이었지만, 이상하게 한 번도 빠지고 싶지 않았다. 꼭 1등을 해서 그 분이 알아보는 학생이 되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교수님의 어떤 면이 좋았냐고 묻는다면, 한 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학문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닮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열심히 했지만 1등은 하지 못했고, 2등이라는 좋은 결과에도 마음 한편으론 아쉬움이 컸다. 방학 때 용기를 내 교수님을 찾아갔을 때, 놀랍게도 교수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내가 1등한 학생이 누군지는 모르는데, 넌 알고 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냐?”라는 말씀과 함께 건네신 저녁 식사 제안. 이 순간으로 사제지간 인연의 문이 열렸다.

우리의 만남은 내가 주재원이 되어 미국으로 떠나고, 교수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주기적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은 교수님의 따님들이 함께 했고, 어느 날은 고향에 계시던 어머니를 모셔와 다 함께 식사를 나누기도 했다. 결혼식 주례도 맡아주셨고, 아들이 태어난 뒤에도 우리는 자연스레 만남을 이어갔다.

우리는 연구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사모님이 “재훈씨는 왜 교수님 밑에서 연구할 생각은 안 했어요?”라고 물으셨지만,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늘 삶과 가족에 관한 것이었다. 무엇을 소중히 여길지, 일과 배움을 어떤 태도로 이어갈지 같은 이야기들. 교수님 부부는 자녀에게 재산을 남기기보다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교수님 가족이 오래 지켜온 ‘운동하는 습관’은 결국 나와 우리 가족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돌아보면, 대학에서 교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교수님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비슷하셨을 것 같다. 회사 생활이 잠시 멈춘 듯한 요즘, 문득 그 멋진 멘토가 떠오른다. 누군가의 삶에 조용히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잔잔한 울림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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