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잠은 늘 하루의 끝에 맞춰진 의례 같은 것이었다.
세상은 낮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밤은 다음 낮을 준비하는, 잠시 거쳐 가는 시간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러닝 워치를 차게 됐고, 이를 계기로 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술을 마시고 피곤한 상태로 잠든 날이면 잠을 잘 잔 줄 알았다. 피곤해서 금세 잠들었고, 아침엔 알람을 듣고서야 일어났으니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러닝 워치가 알려준 수면 점수는 좋지 않았다. 내가 술을 마셨는지 시계가 알리 없는데, 음주후 수면 점수는 한결같이 엉망이었다.
수면 기록을 들여다보니 수면 중 각성이 자주 일어났다. 잠은 잤지만 뇌와 몸은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뜻이다. 결국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 셈이고, 그런 날은 어김없이 오후에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러닝 워치는 그날 그날의 생체 컨디션을 바탕으로 달리기 훈련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잠을 잘 잔 날엔 도전적인 훈련을 권하고, 수면이 엉망인 날엔 회복 위주의 훈련을 제안한다. 나름의 로직으로 바디 에너지 수준을 계산하는데, 수면 시간과 질이 가장 중요하단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됐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수면 점수를 확인하는 게 루틴이 됐다. 점수가 높으면 몸이 개운한 것 같고, 낮으면 알게 모르게 잠을 설친 기분이 든다. 기분 탓임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잘 맞는 느낌이다. 잘 때만 차는 러닝 워치가 내 하루를 다 알 리는 없는데, 결국 내 몸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수면은 몸이 스스로를 돌보는 가장 솔직한 활동이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 동안 나를 위해 묵묵히 일해준 몸과 마음에게 조금 더 깊고, 편안한 휴식을 선물하고픈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