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보다 먼저 던져야 할 질문

by 강재훈

늦은 밤, 대학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는 같은 반도체 회사에서 일했지만, 나는 공급망 관리 부서에서, 선배는 생산 시스템 개발 부서에서 각자의 일을 맡고 있었다. 함께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퇴근 후 저녁을 같이 하기도 했지만, 내가 회사를 옮긴 뒤로는 가끔 술기운을 빌어 안부 전화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AI 활용으로 대화 주제가 흘러갔다. 선배는 복잡한 생산 시스템의 운영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어, AI의 성능과 발전 속도를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의외의 이야기가 나왔다.

도구는 계속해서 첨단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경영 의사결정에 필요한 분석은 예전 수준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측과 실제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진행하는 차이 분석을 예로 들었다. 10여 년 전, 내가 비교적 열악한 데이터를 가지고도 공급망 차이 분석을 통해 당시 임원들에게 인정받았던 일을 떠올려 주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회사 경영진으로부터 흔히 이런 질문이 나온다.

“이 기술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어디에 적용할 수 있죠? 그리고 기대 효과는 무엇인가요?”

그러면 여러 부서가 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과제를 만들고 추진한다. 하지만 일하는 방식과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시스템만 하나 더 얹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과정에서 레거시 시스템과의 충돌이나 연결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업무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도입된 기술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또 하나의 도구로 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질문이 바뀌면 접근 방식도 달라진다.

“우리의 병목 문제는 무엇인가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 앞에서는 여러 방법이 함께 검토된다. 업무를 다시 정의할 수도 있고, 조직과 프로세스를 바꿀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신기술 도입이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기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기술이 검토된다.

이렇게 선택된 기술은 다른 분야로 확장할 아이디어로 쉽게 연결되고, 조직이 필요로 하는 기술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높다. 생산성은 높아지고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가 함께 올라감은 물론이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중요한 것은 성능 좋은 도구의 선택이 아니라 올바른 문제 정의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언제나 좋은 질문이 있다. 유행이 지나면 방치되는 기술이 아니라, 조직의 병목 문제를 해결하는 자산이 될 기술을 도입해야하지 않을까.

데이터가 부족해도 좋은 질문에서 출발하면 의미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질문은 사라진 채 기술이 만들어내는 방대한 데이터만 쌓인다면, 그것은 용량만 차지하는 숫자와 문자의 나열과 다를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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