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내 의무를 다하고자 싫지만, 마음을 비우고 모임에 충실히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나만 그러면 뭐 하나? 사람들이 삐걱거리며 소란을 피운다. 자신을 필터 없이 드러내느라 정신이 없다.
불편하면 불안해지는 나는 그 소음들을 막고자 중재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되려 원망 섞인 시선과 말들만이 내 마음속을 파헤친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눈치가 보이고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오른쪽 관자놀이가 욱신거리고 눈이 뻐근하고 배속이 꿈틀거린다. 예민함이 발동된다.
겨우 진정된 분위기로 식사를 시작했다.
음식이 몸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몸은 음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삐걱거린다.
눈치를 넘어 주눅이 들고 머리가 보내는 신호를 몸이 감지하지 못하고 따로 논다.
나사가 빠진 로봇 같다.
난 여기서 뭘 하고, 무엇을 먹는지 모른 채로 연극을 하는 듯 대본대로 웃고 떠들고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정신을 차릴 새 없이 시간이 흘러 모임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순간 배속이 찌릿하다.
따끔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배속을 움켜쥔 채 비틀고 있다. 나는 '억 '소리와 함께 땅에 주저앉았다.
한순간 긴장이 풀리며 예민해진 위가 애써 참고 있던 불편함을 쏟아내며 소리친다.
"나 힘들어! 스트레스 주지 마! 더는 안돼"
정신없이 집에 와서 약을 먹고 온찜질 기를 배에 올리고 한참을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새해 첫날 즐겁게는 아니더라도 아무 일 없이 무던히 지나가길 바란 내가 잘못인 걸까?
나는 운을 믿지 않는 편이다.
내 삶을 돌아보면 대부분 머피의 법칙처럼 운보다는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갔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가 그럼, 그렇지 뭐"
"바랄 걸 바라, 운은 아무나 오는 게 아니야!"
그래서 운보다는 내가 노력한 만큼, 아니 반만이라도 나에게 왔으면 했다. 그 덕분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웬만한 건 포기했다.
그래야 불변하지 않으니까. 아니 불안하지 않으니까. 몸이 통제돼야 내가 안 아프고 편안해지니까. 그래야 견딜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