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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 위해 내가 아닌 척하다.

도전 재취업

by 깨리

더 이상 놀 수도 없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봐도 늦게 시작해서 나이 제한에 걸리고 만다.

"아, 나이가 뭐라고!"

알바몬에 시간은 4시간 주중에만 하는 알바가 떴다. 걸으면 30분 정도 되는 거리다. 무조건 돼야 한다. 나이 제한이 없기 때문에 꼭 돼야만 한다.


면접 보러 가는데 내 콘셉트는 활동적이며 싹싹하고 일머리 있는 꼼꼼한 젊은 아줌마다.

면접 보는 내내 미소를 띠고 모든 말에 적절히 응대하며 굉장히 친화력 높은 척을 했다.

"내일 바로 나올 수 있나요?"

"물론이죠, 내일 몇 시까지 올까요?"

얼떨결에 그렇게 취업이 됐다.


처음엔 조금 힘들었지만, 적응한 후로는 속도가 붙으며 4명이 하던 일을 둘이 하게 됐다. 그러다 7개월 만에 쇼핑몰이 사정이 안 좋아서 그만뒀다.


나이 제한 없는 알바들을 찾다 보니 나는 장기를 찾지만 단기가 대부분이고 시간 타임이 너무 길어서 체력이 도와주지 않았다. 8시간 서서 일하는 알바를 2주 했다가 발톱이 시커멓게 변하고 퉁퉁 부어서 병원에 갔더니 발톱과 살 사이에 피가 차서 피를 뺐다. 며칠 지나 발톱이 빠져서 또 일을 그만뒀다. 너무 아파서 신발을 신을 수가 없었다. 발톱이 다 자라는 데 2개월이 걸렸다.


몸이 회복되자 다시 단기 알바를 시작했다.

파티용품 포장 알바를 하던 중 예전부터 해보고 싶던 의류 쇼핑몰 알바가 알바몬에 떴다.

여러 번 이력서를 내봤지만, 연락이 오지 않아서 포기했다가 이번이 마지막이다.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포기하자 마음먹고 장기 아르바이트했던 이력들을 꼼꼼히 적어서 다시 이력서를 냈다.

3일 후 문자가 왔다. 내일 면접 보러 오라고

"와, 이게 꿈인가?"


일하던 곳에는 하루 쉰다고 양해드리고 면접을 봤다. 오늘의 콘셉트는 옷을 무척 좋아하고 뭐든지 시켜만 주면 열심히 일 잘하는 열정 있는 책임감 강한 아줌마다.

솔직히 그런 척하느라 내가 무슨 말을 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후 3시에 면접을 봤는데, 오늘 밤까지 연락이 온다고 했다. 여기가 되면 전에 일하던 곳에 말해야 하는데 마음이 초조했다.

정확히 면접 본 지 4시간 만에 내일 바로 10시에 출근하라는 문자가 왔다. 나는 뛸 듯이 기뻐서 밥을 푸다 말고 주걱을 던져버렸다.


출근 후 일이 많아서 생각보다 힘들었다. 송장 보고 옷 찾는 거랑 포장하는 게 예사롭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의류라서 괜찮다. 초반에 실수가 조금 있어서 다들 수군거렸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러다 잘리는 거 아닌가? 느낌이 좋지 않아서 내 살길을 찾아야 했다. 내가 여기를 어떻게 들어왔는데 이렇게 나갈 수는 없지!

2주 고민 끝에 없는 용기를 긁어모아 도전했다. 나염부착을 배우고 싶다고 윗분께 말했다. 말하고 나서 사지가 벌벌 떨렸다. 집에 가서도 마음이 안정이 안 됐다.

"안된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냥 가만히 있을 걸 그랬나? 별별 생각에 한숨도 못 자고 출근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그날부터 일을 새로 배우고 열심히 질문하며 열정을 불태웠다. 역시나 또 실수가 나온다. 나는 이런 내가 너무 싫다. 어디 가서 일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듣고 살았는데 유독 여기서는 왜 그럴까? 남편 말에 의하면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라했다.

"평소대로 해! 그냥 너 하던 대로 그럼 돼!"

차분히 생각해 보니 남편말이 맞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고 눈치를 보다가 역효과로 실수가 나온 거다.

"나에게 집중하자! 남 신경 쓰지 말고 내 거만 하자! 그럼 된다."


그때부터 달라졌다. 조금씩 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단기 3개월을 반복하다 장기알바가 되며 일 년이 지나고 얼마 전에 정직원이 되었다.

정말 인정받는 거 같아 기쁘면서 슬펐다.

일 때문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효용가치가 생겨서 뿌듯하다. 더불어 살도 빠졌다.

제페토에서 아바타로 대신 입었던 옷들을 비슷하게 입을 수 있게 됐다. 다시 옛날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그 덕분에 요즘 혼자만의 일탈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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