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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싫어서 날 저주했다.

용서

by 깨리

한동안 나로 인해 힘들어 몸부림칠 때가 있었다. 결혼 후 경력은 단절되어 뭘 하려고 해도 다시 배우거나 투자해야 하지만 나에게 쓸 금액은 존재하지 않는다. 네 식구 사는데 빠듯했다.


애들을 키우며 할 수 있는 건 집으로 가져오는 부업밖에 없었다. 애들을 맡기고 나가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둘 다 자주 아파서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느라 직장은 꿈도 못 꿨다. 주말부부라서 혼자 하는 육아는 서서히 내 건강을 바닥냈다. 애들이 초등학생이 되며 일을 시작하려 했더니 내 몸에서 나사가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다.


일 년 내내 혓바늘이 입안에 상주했다. 불면증과 그로 인한 두통이 더욱 면역력을 다운시켰다. 결국 대상포진을 경험하게 했다. 그리곤 여기저기 혹이 생기며 1년 간격으로 두 차례 혹 제거 수술을 받고 지금도 남아있는 다른 혹들을 6개월 단위로 검진해야 한다. 귀찮지만 나를 위해 해야만 한다.


삶이 너무 힘들 때 내가 너무 싫어서 날 저주했다. 잘하는 게 없는 내가 뭘 해도 나쁜 말만 들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날 안 보고 싶어서 매일 기도가 아닌 나를 비방했다. 직접 떠날 용기가 없어서...

"제발 아프게 해 주세요! 빨리 떠날 수 있게 "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저주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리석었다. 아무 쓸모 없는 것을 그렇게 열심히 하다니, 차라리 그 정성으로 공부나 하지 그럼 뭐라도 했을 텐데 정말 바보가 따로 없다.


그때는 뭘 해도 안 되는 시기였다. 마음을 굳게 먹고 시도만 해도 주변에서 도와주지는 않고 물귀신처럼 붙잡아 날 끌어당겨 물속 깊은 돌에다 묶어놓았다.

그걸 반항 한번 못하고 수긍하는 내가 너무 싫어서 아니 미워서 방치했다. 애들에 관한 일 빼고는 나가지도 않고 화장대를 버리고 되는대로 살았다. 외형적으로 나는 길쭉 이에서 동글 이로 변해 굴러다닐 정도가 돼버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애들에 관련된 일들은 열심히 했다. 그때 애들 때문에 보게 된 그림책이 나를 구해줬다.


백 유연 작가님의 [엄마 하길 잘했어] 책을 읽으며 아이처럼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너무 울어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몇 시간을 그렇게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쳐 쓰러진 나를 딸이 이불을 덮어주고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그때 어린 딸의 눈빛을 보고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데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만 했을까?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나를 예쁘게 보는 법을 열심히 연습하자고, 하다 보면 조금씩 달라지겠지? 현재는 그때보다 건강해지고 다시 길쭉 이가 되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좋아한다고.

언젠가는 자신을 미워하는 나를 용서할 그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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