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계기

실망시키면 안 됐을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나서야,

by 조성영

실망시키면 안 됐을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나서야, 나는 책임질 수 없는 책임이 있음을 깨달았다.



#20.5세

‘인싸’라는 정체성에 집착하던 1학년 가을, 나는 외국인 교환학생 동아리에 들어갔다. 정확히는 국제협력기구 산하 자치단체로서 교환학생들의 적응과 생활을 도와주는 집단이었다. 외국인에게 버스 길을 알려주는 상황에 대처해보라는 면접 질문에,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쩌어기- 쩌기-” 바디랭귀지를 하면서, 나대가면서 선발되었다.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수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겠다는 들뜬 기대와 달리, 막상 그곳은 내게, 그냥 봉사하는 데였다. 외국인들과 자주 학식을 같이 먹는 것이 의무였고, 주마다 놀거나 관광지에 가는 것도 정해져 있었다.

문제는, 마음 편히 놀고 오면 되는 게 아니라, 한국인 팀원들이 나머지 외국인들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금을 안 가져왔으니 돈을 빌려달라, 여기가 경복궁(Palace)이라고 했으면서 궁전은 어디 있냐, 따위의 요청들에 둘러싸인 나는, 내가 그들의 수평적인 친구가 아니라 스태프나 가이드라 느껴졌다. 외국인 학생들은 인원 많고 각자 참여도 오락가락한 데다가, 나의 외국어가 부족하니 깊은 대화도 나누지 못하여 유대감이 쌓이지 않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게다가, 나에게 그 시기는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던 때였다. 여기저기 술자리든 모임이든 많이 나갔고 아는 사람도 엄청 많은데, 막상 당장 불러낼 친구가 없었다. 내가 살짝 우울할 때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해줄, 뒷담화 하고 싶을 때 내 편에서 들어줄, 그리고 그냥 혼자 있기 심심할 때 불러낼, 그런 친구는 없었다. 인간관계 형성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은 지난 반 년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또, 남중남고의 내가 마침내 갖게 된 ‘여자사람친구’란 존재, 그에 대한 부질 없음도 느꼈다. 한 친구한테, “야, 우리 오랜만에 걔랑 걔랑 해서 술먹자”에 돌아오는 대답은, “아, 나 이제 남자친구 있어서.”였다. 내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로 들려서, 꽤 충격을 받았다. 수업 전후로 밥을 같이 먹던 애들은 여친남친이랑 먹는다면서 나를 남겨두었고, 나는 어린애마냥 놀아달라며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남정네들이랑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연애 안 할 거 같은, 아니, 연애하더라도 나를 우선순위에서 미루지 않을 것 같은 애들한테 의지했다. 급기야 셋으로 인원이 맞춰진 우리는 매일같이 부대찌개를 먹고 게임을 했다.


인맥의 폭을 마치 고구려 광개토대왕처럼 늘려나가던 나는, 영토확장을 시작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진짜’를 찾기 위해 그 너비를 오히려 압축해나갔다.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나를 떠나가지 않고 오래될 친구, 나는 그걸 원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차피 금방 떠날 외국인들에게 정을 붙이지 않았고, 한 학기면 끝일 한국인 팀원들한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막내인 나를 종종 챙겨주던 팀장 누나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가진 정도가 다였다.




#No Show

동아리에 대한 정은 생기다 말았고 책임감은 얕아졌으며, 모임 참석과 행사 출석 빈도도 점점 줄어갔다. 그러던 중 동아리에서는 체육대회(Olympic)를 개최했다. 한국인 팀원들은 역시나 스태프로 가서 이것저것 도와야 했기에, 나도 참여한다고 했다.


체육대회 전날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나는 내 ‘진짜 친구들’과 밥 먹고 게임하고 자취방에서 같이 잤다. 그리 늦게 잠든 것도 아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싫었다. 어차피 외국인 시다바리나 할 걸 상상하니 짜증이 올라왔다. 결국 나는 기상해서 준비해야 할 시간이 지나도록 누워서 뒤척였다.

곧 팀원들한테 전화가 왔는데, 미성숙했던 나는 미성숙한 대처를 택했다. 전화를 거절해버렸고, 이후 카톡도 보이스톡도 무시했다. 엎드려 누워 턱을 베개에 얹은 채, 이번엔 누구한테 연락이 오나 한두 번 확인하다가 기어이 방해금지모드를 켜고 폰을 옆으로 툭 던져버렸다.


정오에나 일어난 나는 친구와 점심을 먹고, 게임을 했는지 아니면 바로 기숙사로 돌아갔는지 알 게 없다.

오후가 되면서 체육대회 톡방에는 여러 사진들이 올라왔다. 외국인들이 좌우로 일렬로 서서 ‘GROUP7’이 적힌 판때기를 들고 어깨동무한 사진, 금방 줄다리기를 했는지 목장갑을 끼고 있는 사람들의 웃고있는 사진 등이었다. 후에는 수고하셨어요, 재밌었어요, 같은 메시지들이 이모지와 함께 뜨곤 했고, 나는 처음에는 몇 개 읽다가 반복되자 곧 집어치웠다.



#잘 모르겠어

같은 날 밤, 나는 기숙사에 돌아가 있었다. 10시쯤 되니 또 심심해졌고, 거의 맨날 만나는 두 놈한테 게임하자는 연락을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공원으로 향하는 경사길을 터덜터덜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그게 동아리 팀장 누나임을 나는 직감했다.

그래, 말도 안 하고 쨌는데 혼은 나야겠지, 올 게 왔구나, 생각했다.


“여보세요. 아, 누나.”

-어디야?

“기숙사 앞에서 산책하고 있었어.”

-그렇구나.


-오늘 아침에 무슨 일 있었어?

“아, 어.. 컨디션이 너무 안 좋고 해서.. 좀 쉬었어.”

-그렇구나.


대충 둘러댄 다음 욕이나 들어먹고 사과를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상대방도, 혹시 내가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던 것인지를 판별한 듯한 짧은 침묵이 있었다.

어디냐고 물어본 상투적인 발화, 불참할 만한 사유가 없었다는 확인질문까지 마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혼날 차례였다. 하지만 대화는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잘 모르겠어.”


누나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느려졌고 가늘게 떨렸다. 허나 그건 절대, 생각이나 감정이 작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정반대로, 말을 길고 크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입으로 내뱉어 문장을 만들어낼수록 그 단호함이 약해진다고 느껴질 정도로 심각한 무언가일 때, 사람들은 오히려 짧고 작음을 선택한다.


“있잖아, 나는 잘 모르겠어..

이럴 거면, 너가 왜, 하겠다고 한 건지..”


누나가 모르겠다고 한 것은 무얼 두고 한 말이었을까. 당일에 안 올 거면서 왜 온다고 투표했냐는 걸까, 아니면 이따위로 성의 없게 할 거였으면 애초에 동아리에 왜 들어와서 자신의 팀원이 되었냐는 거였을까.

나에게는, 하루 한 번의 잘못을 꾸짖는 정도의 가벼움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안일하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으로 인해 남한테 피해를 주고 있었음을 나는 그제서야 ‘발견’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지금까지의 잘못들과 달랐다. 여태 나는 실수나 잘못에 대해, 사과하거나 취소 수수료를 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 또한 분노와 체벌과 복수 등을 선택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드디어, 진심으로 내게 상처받고 실망한 타인을 마주했다. 그것도 ‘좋은 사람’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의 실망이었다. 그 실망은 사과나 보상 따위로 간단히 해결될 수 없는 무거운 것이었다.


나는 통화 내내, 이런저런 덧붙는 말에 ‘그랬구나’를 반복할 따름이었다. 나(같은 사람들)의 노쇼로 인해 팀원들이 엄청 고생했고, 팀장으로서 답답했고 서운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확정된, 하루 내내 다듬어진 날카로운 감정이었다.


규칙을 어기면 맞거나, 실수하면 욕을 먹거나, 잘못하면 배상하는 게 내가 배운 전부였었다.

실망시키면 안 됐을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나서야, 나는 책임질 수 없는 책임이 있음을 깨달았다.



#후회

이제부터 열심히 해봤자 늦었다고 생각한 건지, 남들이 이미 친해질 대로 친해져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판단한 건지, 내 저조한 출석률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결국 나는 활동 점수가 부족해 봉사활동 인정조차 받지 못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파티에 갔다. 다들 나를 기억 못 하겠지, 소심해져 있었는데, 낯익은 어떤 외국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It‘s been a while.” (오랜만이야.)


나는 더 기가 죽었다. 다른 한국인 팀원들은 이제쯤 되면 자연스럽게 대화할 정도일 텐데, 나만 원체 출석 안 했으니 영어 실력이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아니 이 사람, 내가 오랜만인 걸 기억하는 게 맞나? 아니면 혹시, ‘잇스 빈 어 와일’은 그냥 아무렇게나 쓰는 인사말인가?’

우물쭈물대는 나에게 그가 했던 말은, 하지만 예상 밖이었다.


“나 입국할 때 공항에 데리러 와줘서 고마웠어. 너 첼시 팬이랬지? 영국 놀러오게 되면 꼭 연락해. 축구 티켓 구해줄게.”


후회되었다. 너무나 크게, 진심으로 후회되었다. 팀장 누나를 포함해서 나를 챙겨준 동아리원들과,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곤 하던 외국인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과 보낸 적지만 좋았던 시간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왜, 이들을 친구이자 동료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한 채, 좁은 시야와 닫힌 생각으로 스무살 가을을 보냈을까.


나는 머지않아 유럽여행을 갔지만, 자신을 ‘Warwick(워윅)’이라 부르라던 그 영국인 친구에게는 연락하지 못했다.




#신의성실

매번 돌아보아도 아쉬움이 옅어지지 않는 스무살 가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내게 큰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타인과의 신의(信義)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 다짐으로부터 5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적어도 노쇼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는 반드시 사정을 설명하는 연락을 미리 했다. ‘약속의 예의’에 대한 단단한 의식을, 나는 갖게 되었다.


이후 스물하나부터 스물일곱 졸업까지, 대학생활 동안 나는 수많은 리더의 역할을 맡았다. 나는 팀장이었고, 동장이었고, 회장이었다.

리더로서 나는, 스무살의 나처럼 좁은 생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내가 창립한 독서동아리에서는 모임에 나 혼자만 나오거나, 책을 다 읽어온 사람이 나뿐인 때가 여러 번이었다. 러닝동아리에서는 사람이 많은 만큼 노쇼 사례는 그야말로 비일비재였다. 그 외, 공지를 확인하지 않는 듯하여 개인 연락을 보냈는데 읽고 씹는 경우 등도 종종 있었다.


그런 순간마다 화가 났던 게 사실이다. 그쪽에서 이후에 둘러대는 변명을 의심하기도 했고, 사과나 양해를 구할 용기가 부족하다고, 또는 더불어 살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인격을 낮잡아 판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 ‘나 같은 경우일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내가 스물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거나, 겪어보지 않아서 공감과 동의에 이르지 않는 걸 수도 있었다. 또는, 자신을 바꿀 만한 계기를 아직 만나지 못한, 변화의 근거나 동력을 갖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때의 나처럼 말이다.

나 또한 그러했던 과거를 생각하니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이 조금 열리는 것 같았다. 저 사람도 언젠가, 좋은 계기가 되어줄 사건과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로도 이어졌다.


#계기

물론, 타인의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억지스러운 욕심일 수 있다. 또, 그와 나의 차이가,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를 인식하는 상식의 범위가 다른 것에 불과할 수도 있기에, 내 기대는 애초에 주제넘는 엘리트주의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 철없던 스무살 가을의 확실한 결과는, 적어도 나는 ‘계기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이다.

누군가에게 저지른 분명한 잘못을 계기 삼아 그걸 반성하고 이후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저 사람은 나랑 안 맞을 거야, 금방 떠나갈 거고 앞으로 만날 일 없을 거야’ 단정했던 것을 후회하며 인간관계에서의 섣부른 판단을 멈추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바로 그것이다. (하, EPL 볼 수 있었는데.)

모든 일에는 우연과 운과 남탓이 있겠지만, ‘같은 상황이 또 발생한다면 나는 어떻게 다르게 행동해야 할까’를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계기를 외면하지 않고 기회를 피하지 않는, 그리고 언젠가는 그 태도가 남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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