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살갗이 타버린

인생은 사람과 사랑의 반복

by 조성영

살갗이 타버린 거 기억나?

유난히 쨍했던 햇빛은

한여름도 아녔는데 말야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고

한동안 잘 수가 없었어, 너무 아파서


하지만 기어이 새살이 돋겠지

흔적이 남아도 아픔은 가겠지


괜찮으면 우리

그때 또 놀러가자



작년 여름, 바다로 여행을 갔다. 민소매를 입고 그 위에 구명조끼를 걸친 채로, 서너 시간을 땡볕에서 놀았다. 수영도 하고, 수구도 하면서.


당장 그날 밤부터 해서, 특히 팔뚝이 피부가 너무 따가웠다. 선크림을 부족하게 바른 건지 아니면 내가 문대서인지 자외선을 제대로 받은 듯했다. 한 2주 정도, 옷을 입고 벗을 때마다 인상을 써야 했으며 옆으로 돌아눕지 못하고 정자세로만 잤다.


따가운 피부 때문에 그 여름은 더 놀러다니지 못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옛날 광고가 떠오르기도 했고, 더위와 불편함을 참고 긴 옷을 입어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

피부가 다 벗겨질 대로 벗겨지고 나서야 아픔은 가라 앉았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반팔티셔츠로 가려지는 팔뚝 부분은 여전히 까맣다.


생각해보면 여름은 이것의 반복인 것 같다. 덥디 더울 때 밖에서 놀다가 타고, 다른 계절 동안 피부가 돌아오고, 다시 쨍해지면 또 빨개지고 까매지는 것, 그 계속되는 순환이야말로 내가 지내온 여름들이었다.


올해도 역시 수상레저(빠지)에 가기로 되어 있다. 만반의 준비를 해서 덜 탈 수는 있겠지만, 또 심하게 탔던 작년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지만, 한 해의 중반이 되면 나는 기어이 놀러다니게 된다.


쨍쨍한 햇볕 아래에 피부가 벗겨지는 것쯤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어두운 팔뚝 피부처럼 인상이 깊게 남았던 것 같다. 이를 소재와 주제로 하여 시를 썼다. 첫머리의 [살갗이 타버린]이라는 시가 그것이다.


이 글은 [살갗이 타버린]의 해설이자, 그 경험에서의 내 깨달음이다.


이런 비유에서 시는 시작됐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 것이, 마치 여름에 놀러가는 것 같다.’


햇볕은 우리를 살게 해주는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공간이지만, 눈과 피부를 상하게 하는 자외선을 반드시 함께 쏜다.

우리는 햇빛이 맹렬한 여름일수록 더 놀고 싶어진다. 덥고 또 탈 거 알면서도 놀러나간다. 놀고, 타고, 따갑고, 벗겨지고, 가라앉는다. 후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 흘러 다시 여름이 오면, 또 놀러나간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람들은, 사회적 동물로서 ‘사람과 사랑’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런데 사람과 사랑은 불가피하게, 실망과 갈등과 이별, 그리고 그에 따른 아픔을 수반한다. 우리는 그 아픔에서 헤매며 힘들어하다가, 충분한 시간이 분노와 슬픔을 가라앉히면, 다시 마음을 연다.


물집이 나도록 피부가 타보기 전에는 그 따가움을 몰랐던 것처럼,

강렬한 고통을 한 번 경험한 뒤 또 그렇게 되기가 싫어, 나갈 때는 온몸을 다 가리거나 아예 실외활동을 피해버리기도 하는 것처럼,

또 그 덴 흔적이, 해가 지나도록 남아있기도 한 것처럼,

진심으로 실망해보기 전까지는, 갈등과 이별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게 그만큼 힘들지 몰랐다.

아픔을 한 번 겪은 뒤 또 그렇게 되기가 싫어, 사람을 만나되 마음을 닫거나 아예 만나지 않아버리기도 했다.

하물며 그 상처의 기억이, 시간이 충분히 지났는데도 여전히 남아있기도 했다.




[살갗이 타버린]은 그런 비유를 담은 시다.


우리 모두, 각자 경험 속에서의 ‘사람과 사랑’도 그러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좋은 때에 만나,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 진심에 도달했고, 진심인 만큼 얼굴 붉히며 상처를 주고 받아 아팠을 것이다. 잊을 만큼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는데도 기억이 여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우연인 듯 운명인 듯한 어떤 때가 찾아오면, 또다시 마음을 열고 그 짧고 또 긴 이야기 쓰기를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덧붙여 전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

우리 모두, 햇빛의 필요함보다 자외선의 해로움을 더 크게 여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만남과 시작의 설렘보다 이별과 실패의 걱정이 선택에 있어 더 중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나고 헤어지고 시작하고 끝나고 웃고 우는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성장하며 말마따나 ‘인간답게’ 살고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우리가 각자의 여름을 맞이할 때, ‘사람과 사랑’을 시작할 수 있기를, 망설이더라도 용기낼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이 [살갗이 타버린]에 담겨있다.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주제처럼 끝이 시작이 되듯,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를 다시 읽어보시기를 바라며 마무리한다.


24년 여름 여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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