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군대(로카프 바이러스)

군생활, 꿀빠셨나요?

by 조성영

1.

로카프 바이러스(ROKAF Virus) :

군복무 동안 생긴, 서로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할, 군생활의 힘들고 아픈 기억이나 몸과 마음의 상처, 또는 트라우마.

*ROKAF : 대한민국 공군(Republic Of Korea AirForce)



내 군대 경험을 소재로 한 이 글의 제목은 ‘로카프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만들어 붙여보았다. 박완서 선생님의 단편 [빨갱이 바이러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걸작을 짧게 설명하자면,

인물들은 서로를 넘겨짚어댄다. 어떻게 생겨서, 어떤 옷을 입어서, 어떤 말투를 써서 등을 근거로. 하지만 각자는 사실, 남한테 가볍게 털어놓기 어려운 사정과 비밀을 갖고 있었다.

타인이 함부로 공감을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아픈 기억들이, 만성질환처럼 몸과 마음에 남아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한 번 유행하면 개개인이 손쓸 수도 없이 감염되어, 어쩌면 평생을 흔적 또는 지병을 달고 살아야 하는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나의 조잡한 글 대신 읽기를 당연히 추천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이제 내 친구 ‘박’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2.

공군 병사 생활 일 년 하고 넉 달쯤, 드디어 병장을 달았다. 어느 밤, 저녁 청소와 점호 시간 사이에 생활관 방안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월드스타 BTS가 군복무를 면제받아도 되느냐 하는 논의를, 현역 군복무자들이 시청하고 있었다.


나는 내 침대 앞에 서서, 몸을 왔다갔다 흔들고 짝다리도 짚으면서 삐딱하게, 마치 방탄소년단을 내 후임인 양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방 한쪽 중앙 넓은 책상에는 내 동기 ‘박’이 공부 중인 시험 책을 얕은 집중 속에 읽고 있었고. ‘김’과 ‘이’는 각자 침대에 앉아 있었다.


“김아, 넌 어떻게 생각해? 방탄?”

“아, 방탄소년단 말입니까? 음, 조금 괘씸하긴 한 것 같습니다.”

“크크. 그렇긴 하지. 이야, 넌 어때?”


갓 전입 온 김일병은, 일단 방탄을 옹호하지 않아야 선임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적당한 장난말로 호응했다. 다음은 김보다 서너 달 선임인 이일병이 발언했다.


“근데 있잖습니까, BTS는 솔직히 벌어오는 돈이 많기는 하지 않습니까? 근데 저희, 아니 조병장님이야 워낙 똑똑하시고 훌륭하시지만은, 저는 뭐 고졸이고 일도 안 하는데, 군대에서 시간 때우면 그만입니다. 근데 쟤네는 세계적으로 해야될 일이 많지 않습니까?”


난 이일병 의견에 동의했다.

“음, 그래 우리는 뭐, 너나 나나 여기서 그냥 시키는 일 하다가 군적금이나 땡기면 그만인데, BTS는 다르긴 하지. 박병장,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세 음절을 또박또박 강조해 박을 부르며, 무려 작대기 네 개를 단 용사의 고견을 물었다. 중년 장교를 따라하는 내 말투에 짧게 피식하며 박병장은 답했다.


-아, 무조건 가야지. 절대 안 되지.

“아 그래? 국위선양이나 외화벌이의 영웅인 건 사실이잖아.”

-그런 거랑 상관없어. 그게 근거가 되면 안 돼.


박은 한 손을 양옆으로 휘저으며 거절을 표했다. 가볍게 물어본 거였는데, 생각보다 단호하여 나는 흠칫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물어보며 시선을 티비에서 박으로 돌렸다.

안경 도수가 강한, 그래서 꽤 작아보이는 그 눈에서는 흔들림 없는 안광이 직선으로 뻗어나왔다. 평소, 소심하여 의견을 강하게 말하는 법이 없으며 곤란한 질문에는 삼촌 같은 너털웃음으로 넘기던 박이, 그때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걔네가 젊은 나이부터 전세계에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버는 거, 그건 알겠어. 그니까, 걔네가 군대 갔다오는 동안 국가적인 손실이 발생한다는 게 근거잖아.

아니 근데, 걔네는 국가적인 손실이고, 나는 그럼 아무 손실도 아니야? 생각해봐, 내가 군대 안 왔다 치는 2년 동안 대단한 일 하지 말라는 법 있어? 유니콘 기업 창업자들 이십대에 시작한 사람도 수두룩빽빽이고, 나 지금 준비 중인 이거 회계사 시험을 붙어버릴 수도 있는 건데.

왜 내 가능성은 낮잡아 보고 저 사람들은 왜 무조건 대단하다고 하는 건데?


“어? 어, 그렇지. 맞는 말이지. 근데-”

-그리고.

박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저번에 지나가듯 말한 적 있지만, 나 사실 평발 심하거든. 면제받았어야 돼. 학교 다닐 때부터, 검사 같은 거 하면 군대 안 가겠다고 의사들이 맨날 그랬다고. 근데 병역 판정 갔는데, 막 발을 더 누르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그냥 현역 나왔잖아. 하. 그래서 군대 온 거야, 나.

원래 안 와도 됐던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사지멀쩡한 훤칠이들이 돈 좀 번다고, 인기 좀 있다고 안 오는 게 맞는 거야?


밑줄을 슥슥 긋던 연필을 페이지 사이에 던지듯이 올려놓고, 기어이 박은 공부하던 책을 덮어버렸다. 그의 오돌토돌 두꺼운 피부가 유난히 빨개진 것 같았다.


-조야, 너, 군대 오기 전에 혼나봤어?

“어? 혼나봤냐고?”


후, 하며 짧게, 그러나 하려는 말은 긺을 암시하듯 간단히 숨을 내뱉고 박은 다시 시작하였다.


-이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사실 있잖아, 나는 살면서 지금까지 혼나본 적이 없어. 사실 혼날 일이란 게 딱히 없잖아. 그냥,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집단에서 규칙 지키면 잘못할 일이 없으니까.

근데 나는 여기서 매일 같이 혼났어. 뭘 놓치거나 실수해서도 아니야. 그냥 동작이 조금 느리다는 거야. 나는 어차피 제시간 안에 일을 끝내 놓을 거거든? 근데 자기들 속도에 안 맞춘다고, 임의로 정해준 거 먼저 안 했다고, 시간이 남길래 걸어가는데, 자기가 뛰는데 왜 나는 안 뛰냐고 혼났어.

나, 심지어, 후임 정상병 있잖아, 걔 저번에 나한테 소리를 지르더라고? 조교라서 자세잡는 거나 배우고 목소리 깔면서 겁주는 것만 배워서 그런지 몰라도, 나한테도 성질을 냈다고.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



3.

-후. 어쨌든. 이런 나도 군대에서 고생하는데, 그냥 건장한 남자면 다 와야지 군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그런 게 어딨어.


10시가 되어 점호 안내방송이 나오고 나서야, 박은 털어놓는 말들을 멈추었다.


나는 당황했고, 어떤 말로도 분위기를 풀 수 없을 것 같아, 아예 하지 않았다. 박이 군생활을 남들보다 힘들게 해온 건 옆에서 넘겨봤기에 알고는 있었지만, 웃자고 던진 말에 이렇게 강한 반발을 표현할 거라곤 예상 못 했다. 앞으로 몇 개월 시간 죽이기가 남은 업무인, 마음은 이미 집으로 돌아가있는 병장이라면, 나처럼 가벼운 마음일 줄 알았는데, 박은 그렇지 않았다.


점호를 다녀오고, 이를 닦고, 방으로 돌아와 침구를 정리하는 이십여 분 동안, 나는 흘긋흘긋 스치듯이 관찰해온 박의 군생활을 되짚어 추측해보았다. 나와 어떻게 달랐을까. 일 년 반의 시간이, 나와는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흐른 걸까.



조.

먼저 나를 말하자면, 나는 군생활을 엄청 편하게 했다. 다행스럽게 좋은 부대를 걸려서, 또 부드러운 분위기의 부서에 배정된 것뿐만은 아니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사회성이 좋았다. 눈치도 있었고 말주변도 좋았으며, 대학 간판 덕인지 무시도 안 당했다. 운동도 잘했고 일머리도 있어서, 병사 선임이든 부서 간부든 다들 나를 잘 대해주었다.

한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거리낌이 없었으므로 병사대표도 맡았다. 군 생활 내내 배려받고 존중받았으며, 결과적으로 나는 군생활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걸 내가 해냈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그저 주어진 상황에 대해, 손에 쥐어진 선택지 중 하나씩을 골라서 냈던 것뿐이다.



박.

하지만 나와 동기이며 동갑이자 같은 부대원인 박은 어떤가. 그는 신촌에서 대학을 다니는 똑똑이였고, 내가 흉내내곤 했던 진짜 ‘바른생활어른이’였다. 군대를 가지 않을 만한 신체조건을 가졌으나 현역 보급병이 되었다.


박과 함께 특기교육을 마친 대여섯의 교육동기들은, 허리가 안 좋고 몸이 약한 박을 배려해주었다. 자기네가 다같이 보급대대로 가고 박을 혼자 우리 부대로 보낸 것이다. 여기가 군수특기학교로서 교육생들 뒤치다꺼리만 하면 그만이며, 그래서 쉬울 거라 추측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하필, 잡일을 하는 사무부서가 아닌, 현장부서로 박은 배정받았다. 교육생이 들어왔다 나가는 거의 매주 이불과 베개피 몇백 개씩을 빨래를 위해 옮겨야 했고, 간이마트 물품 등 무겁게 이고져야하는 짐들투성이였다.


그나마도 배려받아서 소속을 정한 박은, 우리 부대 중 가장 투박한 부서에서, 한 번도 혼난 적 없다던 경력에 무색하게 말 그대로 매일 같이 혼나가며 고생을 했다.

업무가 힘들어서인지 그 부서는 간부고 병사고 할 것 없이 서로 다투어댔기에 관계적으로도 불편했을 것이고, 후임으로부터 만만하다는 낙인을 찍힌 것도 불만이었을 테다.


게다가 박은 생활관에서도 어려움이 컸다. 그건 내가 목격자이기도 하다. 박은 추위를 심하게 타서 한여름에도 위아래 긴 옷을 입었는데, 선임들은 그런 박을 배려해주지 않았다.

내가 신병이던 어느 밤이었다. 과자 좀 얻어오라는 말을 듣고, 최선임들의 방으로 갔었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아 잠이라곤 잘 줄 모르던 이들 사이에 박이 외로이 껴있던 곳이었다. 일러도 새벽은 되어야 불이 꺼지는 그 시끄럽고 에어컨 빵빵한 방에서, 선임들에게 고개를 연신 꾸벅이던 나는 침대에 누운 박을 옆눈으로 훔쳐보았다. 그는 깔깔이를 입고 이불 두 개를 덮은 채 오렌지색 귀마개를 귀에 꽂고, 그야말로 안쓰러운 잠을 청하며 뒤척이는 중이었다.

그 선임들은 우리가 상병에 가까워질 때쯤 전역했다.


그게 오래도록 마음에 걸렸던 나는, 병사대표가 되고 우리가 계급이 높아졌을 때, 박과 둘이서 방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한여름에 에어컨 안 트는 선임이랑 같이 지내겠다는 사람이 없기도 했고, 솔직히는, 나 또한 박을 만만하게 여겼으므로 생활과 관련한 많은 것들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속셈도 있었다.

그러다가 싹싹한 김이 들어오고, 얼마 전에 이가 들어온 거다.



4.

박은 그러한 군생활을 거쳐 병장이 되어온 것이다. 나와 같은 부대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같은 시간이었지만 다른 기간을 버텨온 그였다. 내가 함부로 말할 수도, 감히 공감할 수도 없는 그만의 군대 인생이었다.


내가 군대에서 해야했던 일은 그저, 엘리트적인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는 것 정도였다. 나는 그마저도 굴욕적이라고 종종 느꼈는데, 역풍의 트랙을 꿋꿋하게 달려온 박을 제대로 발견하고서야, 내가 연한 바람 속에서 조깅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내가 먼저 전역 전 휴가를 나가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봄밤까지, 나는 박의 군생활을 판단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가 나와 같은 경험을 겪었을 것이라고, 또는 같은 경험을 겪었다 하더라도 그가 나와 같은 걸 보고 듣고 느꼈을 것이라 섣불리 단정하지 않으려 애썼다.


“억울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것들을 다 덮을 만큼 좋은 게 더 많았던 군생활이었습니다.”

전역 전날, 우리 부서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은 어쩌면 나의 문장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채 인생에 단 한 번일 군인 생활을 마무리했을 수도 있다.

감히 생각을 진전시키건대, 나와 박의 차이보다도 더 극단적인, 몸과 마음의 상처를 군대 생활로부터 입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5.

내가 공군 나왔다는 말에 “꿀 빠셨네요(군생활 쉽게 하셨네요)”라는 반응을 들으면 마음이 안 좋아진다. 나, 그래, 나는 꿀 빨았다. 하지만 이런 대화 때마다 박이 생각나기 때문이고, 나에게는 장난인 말이 박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을 감히 걱정하기 때문이다.


우리 남정네들은 각자의 군생활을 마치 영웅담처럼, 평생의 안줏거리로 반복재생한다. 군복무를 ‘해학하는’ 의도도 있겠다만, 자신에게는 너무나 특별했던 그 경험을 털어놓고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다.


내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남의 군생활을 쉽게 말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다 다른 개별적 경험을 했다. 현역과 보충역, 군과 부대와 부서와 보직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거의 모든 여건이 같았고 딱 부서만 달랐던 나와 박의 경험이, 대놓고 정반대였던 것처럼 말이다.



감히 생각을 진전시키며 마무리한다.

우리는 서로 다 다른 삶을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꼭 군대에 대한 게 아니더라도, 나와 남은 공통되어도 공통되지 않는, 자신만의 입장과 사정이 있다. 각자의 지병과 과거와 상처와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는, 마치 바이러스처럼 오래도록 몸과 마음을 괴롭힌다.


나한테 쉬운 일이 누군가한테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내가 내키지 않아 피하는 것을 누군가는 거리낌 없이 해내듯 말이다.

안다는 이유로 또는 모른다는 근거로 남에 대해 편하게 말해도 되는 건 아니다.

내가 겪어봤다고 해서 타인도 나와 같게 겪었을 것이라 단정해서도 안 된다.


남이 내 인생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되듯, 나도 그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름이 온다. 그 친구가 감기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나도 체질을 닮아버려 긴 팔에 두꺼운 이불 없이는 안 되지만.


군옷.jpg 올해는 예비군 더울 때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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