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힘든 순간이 여럿 있었는데, 그때마다 힘들었던 이유는 ‘괜찮은 척’ 하는 것이었다.
그만두고 난 후, 일하던 복지관에서 강의 요청이 있었지만 고사했다. 현재 열심히 일하고 계신 분들과 일하는 성향도, 사회적 상황도 전혀 다른데 과거의 일을 잘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것도 교만이 아니었나 싶다. 잘한 것뿐 아니라, 실패한 경험도 터 놓고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실패담을 잘 정리해 두고 누군가는 같은 실패를 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이것은 나의 실패였지만 기관과 정책의 실패였기 때문이다.
복지관에서는 학생들의 방학 기간이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계절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매년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는 터라 개인의 성격, 행동, 특성 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복지관을 오가는 길도 살펴서 학생들이 새로운 일과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집으로 가던 길에 복지관과 같은 법인의 기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법인은 복지관뿐 아니라 여러 기관을 한 부지에 여러 개 운영하고 있어서 서스럼없이 아이를 찾으러 기관으로 들어갔다. 같은 법인이니, 아이를 잘 찾아 보내주길 기대했는데 아이는 울고 있었다. 정확히는 뺨을 맞고 울었다. 잘못 들어와서 물건을 헤집어 놓았다고 쳐도 아이에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이를 빼앗듯 데리고 나와서 아이의 어머니께 연락드렸다. 아이가 뺨을 맞아서 울었고, 가해자가 사과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덩달아 울어버렸다.
정답이 당연한 일이었다. 가해자는 사과해야 하는 것이고, 우리 기관과 법인도 가해자에게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들은 상상 속에는 전혀 없던 것들이었다. 기관의 책임자가 날 불러 세워두고 냉랭하게 물었다.
“넌 왜 울었냐?”, “네가 사과를 받아주겠다고 했냐?”
대답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어떤 조치도, 조언도, 마음도 없었다.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았고 학생의 어머니도 이를 문제 삼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만하면 되었다’며 나를 위로하셨다. 어머님이 그러시니 난 괜찮은 척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속상해서 선배들에게 방법을 물었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복지관과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전화번호를 알아낸 법인 소속 기관의 장이라는 사람이 첫 통화에 대뜸 폭언을 시작했다. “네가 뭐냐는 둥, 가만 안 두겠다는 둥” 도리어 나를 나무랐다. 들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녹음하는 것뿐이었다. 맞은 학생도, 옹호자인 사회복지사도 죄인이 되어버렸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사라지고, 문제를 알린 사람이 문제였다. 결국 공론화는커녕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았고, 이후 각 기관의 벽은 더 온고 해졌다.
집단시설이 아닌 이용기관에는 인권침해적인 일을 처리할 신속한 독립기구가 없었다. 사회복지 노조는 기관과 분리되기 어려운 구조였고,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법도 생기기 전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은 기관을 비롯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환경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기관과 책임자들에게 실망하는데 그친 나의 인식이 묹였다. 동료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자만심이 큰 걸림돌이었다. 그 후로 나만의 실패가 되어버린 일을 묻어두고 ‘괜찮은 척’ 일해 왔다.
결국 몇 년 후에 그 기관의 문제가 다시 가시화됐다. 폭언을 했던 기관의 책임자도 문제였으나, 또다시 문제를 덮으려 한 행태가 공론화된 것이었다. 그렇게 터진 일들은 수많은 외면, 묵인, 방임과 같은 무수한 실패들 끝에 나온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일과는 비교되지 않는 더 큰 폭력이 있었고, 더 많은 이들이 피해자가 됐다.
사회복지현장에서는 ‘인권’ 관련 문제라고 하면 직원을 문제 삼아 꼬리를 자르거나, 피해자가 드러나지 않게 하는데 급급하다. 하지만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마치 기업처럼 경쟁하듯 포장하고 홍보한다. 나도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문제 직원은 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일들을 잘 구분하여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듯 하다.
활동가로 살아온 지 5년이 넘어가면서 가장 변화된 부분을 꼽으라면, 실패와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활동을 시작하고서야 힘들어도 힘들다 말하지 않고, 괜찮은 척 살아왔던 나를 인정했다. 활동 영역에서는 성공과 실패를 따지지 않고 성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되지 않던 것을 되게 하려고 투쟁하는 일상은 어쩌면 실패의 연속이라도 할 수 있겠으나, 그 안에서 동료들은 경쟁하거나 탓하지 않고 함께 일하면서 서로의 일상을 살핀다. 이제는 '힘든 순간'을 잘 말할 수 있고, '실패'라고 여겨지는 과정 속에서 나를 멀리 두고 바라보며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다. '성공'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혼자 해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실패할지라도 우리는 잘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고,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투쟁의 과정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도 만족할 수 있다.
실패담을 꺼내놓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용기가 필요했다. 사회복지 현장이라는 곳에서도 사람과 함께하는 어떤 일에도 ‘실패’가 결론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실패를 기록하고 공유하면 실패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이 생길 거라는 기대가 있다. 개인의 실패가 아닌 우리의 실패가 되고, 실패가 결론이 아닌 과정이 되어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나 더 큰 실패를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수 있길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