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곁에 있던 사람’이 사라져 간 길

by 이정

삶을 뒤돌아보았을 때 곁에서 ‘사라진 사람들’과의 장면은 가슴 아프게 남아있다. 가슴 아픈 장면에 묻혀 사람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억하고 싶다.


학교사회복지사가 없던 시기, 통합 학교에 가서 성, 직업, 사회성을 구실로 장애가 있는 중・고등학생들을 만났다. 학교로 초빙된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주어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복지관의 프로그램을 경험시켜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육적인 고민보다는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서 겪는 차별, 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반항 아닌 저항 행동, 교사나 부모조차 무기력해지는 학교의 분위기에 대해 고민했다. 특수학급반 선생님들은 수업뿐 아니라, 학생의 학교생활, 가정생활 전반을 살펴보고 복지관에서 연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요청하셨다. 그때마다 학생의 가정에 방문하기도 하고, 주말엔 활동을 연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삶은 주로 부모가 결정하고 가정의 종교에 따라 정해지곤 했다. 연습하면 충분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학생이 용돈도 주지 않고 걸어 다니라는 부모의 지시에 따라 걸어 다니느라 대중교통을 이용할 줄 몰랐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은 부모의 종교에 따라 주말마다 일정한 복식을 하고 종교생활을 해야 해서 또래들과 추억을 쌓을 기회가 부족했다. 반면에 자녀에게 적극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가진 부모의 자녀는 누구보다 먼저 주말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가정마다의 깊고 먼 간극 사이에서 학생들이 서로의 곁에서, 동네에서 다양한 삶의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끌어당기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그 학생을 처음 만났을 땐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단발머리를 푹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그 학생은 많아야 6명 남짓한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독 작아 보이는 학생이었기에 가끔씩 웃어주는 미소가 빛나는 학생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단발머리 사이로 눈을 마주치며 웃어줄 땐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학생의 부모님은 적극적이지도, 인권침해적이지도 않아서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역할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학생이 부모님을 경찰에 신고했다고 연락이 왔다. 부모님이 때렸다고 경찰서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경찰, 아동학대 관련 기관과 함께 학생의 가정을 찾아가 어머니, 학생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은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꼿꼿한 몸짓과 언어로 어머니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결벽증에 가까운 어머니의 생활 태도가 학생과 부딪힐 때마다 폭력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머니도 학생에게 한 행동을 인정했고 자녀와 같이 살겠다고 주장하지 않으셨다. 뉴스에서 보던 아동학대 사건들처럼 끔찍하고 놀라운 폭력이 아니었기에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일들로 가정이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이후 학생은 행정기관에서 미리 연결해 둔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다.

곧바로 학생은 책가방에 자신의 물건들을 담았고, 어머니는 작은 박스에 옷가지를 담아주셨다. 어떤 실랑이도 없었고 긴장감도 없었다. 복지관에서 온 나의 역할은 계획대로 학생을 정해진 시설의 그 자리로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자치구 내에 있던 시설이라 버스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근거리였다. 이전에도 사회복지사로 시설에 드나든 경험은 있었지만, 입소할 수 있도록 함께 시설을 찾아가는 길은 낯설었다. 시설 입구의 커다란 대문을 지나니 대학교에 있을 법한 넓다란 운동장이 보였다. 땡볕만 보일 뿐 재미있어 보이는 놀이기구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대형 건물의 사무실로 들어가 직원을 만났다. 커다란 칠판 가득 시설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많이 적혀 있었고, 장애가 있는 사람의 수가 따로 있었다. 직원은 부모나 가정이 있지만 다양한 사연들이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오게 된 아이들이 더 많다고 했다. 그동안 시설을 뭉뚱그려 알고 있었다는 것, 부모나 가정이 없는 아이들이 가는 곳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앉을 새도 없이 자리를 배정받았고 이내 어딘지 모를 곳으로 직원을 따라갔다. 직원은 걸어가는 동안 시설이 전쟁 이후 병원이 있었을 만큼 오래되었고 지금은 수영장까지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는 동안 비슷한 옷과 신발을 신고 걸어가는 아이들과 서로 생경하게 쳐다볼 뿐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 이렇게 큰 시설이 오랫동안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지역사회 중심’이라는 가치를 외치며 ‘장애인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자’는 복지관의 사회복지사로서 자긍심은 사라지고 제대로 된 현실을 맞닥뜨렸다.

직원이 안내해 준 건물로 들어가니 열린 방문들 사이로 2층 침대들이 보였다. 낯선 풍경과 분위기에 당황해 정작 입소할 학생의 반응을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어느 지점부터는 입소인이 아닌 사람은 들어갈 수 없어 학생에게 들고 있던 박스를 건네주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말을 나누거나 감정을 나눌 새도 없이 담담하고 빠르게 헤어졌다. 이후 학생을 만나러 시설에 찾아가곤 했지만 드넓은 운동장에 앉아 나눈 대화들도 심심했다. 학생의 꼿꼿하던 모습은 사라졌고 다시 눈을 마주치거나 미소를 발견하긴 어려워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시설에서 연락이 왔다. 학생이 건물에서 떨어져 응급실에 있다고 했다. 학생이 시설 안에서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다른 입소인들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학생은 말 문을 열지 않았고 그저 스스로 건물에서 뛰어내리고자 했다는 것만 전해 들었다. 학생이 경험한 세상을 모르는 초년생 사회복지사가 본 모든 과정이 갑작스럽고 무서워 마음과 손이 덜덜 떨렸다. 다행히 학생은 몸이 나아졌지만 곧 다른 장애인 시설로 가게 됐다. 그 과정에서 지역사회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없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그저 학생이 미련 없이 온몸으로 떨쳐 버리고자 했던 가정과 지역사회, 그리고 시설이라는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 채 '당사자의 주체성', '함께 살아가는 지역사회'라는 가치나 이상을 외쳐왔다 것을 알게 됐다. 마치 빨려 들어가듯 학생이 세상에서 멀어져 가는 길을 동했했을 뿐이다. 그 빠른 길이 당황스럽고 무서워 멈추어 서서 학생에게 인권에 대해 묻고, '어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지 못했다.

학생은 복지관 인근의 장애인 시설로 옮겨졌고 이후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도 세상의 뜨거운 맛에 크게 데이고 나니, 시설에 있는 학생을 만날 수 있는 계기나 역할이 없단 이유를 핑계 삼아 한 학생의 안타까운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모험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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