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함께 출퇴근하는 꿈을 꾸며 사회복지를 시작했지만, 졸업하기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한동안 방황하다 전국의 사회복지기관을 순례하면서 많이 울었다. 방문했던 기관들은 저마다 대안적인 사회복지를 꿈꾸며 당사자가 주체적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들이라고 했다. 치매케어센터 같은 기관의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직원들은 당사자가 살고 있는 마을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쓴다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이런 기관들을 알게 된 것이 억울했다. 이런 기관들이 우리 주변에 있었다면, 그 누군가가 우릴 찾아봐주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할머니가 안 계셔서 내 꿈을 이룰 순 없었다. 하지만 훌륭한 기관의 열정적인 사회복지사는 되고 싶었다. 우리 같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그와 함께하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면 더 울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러 상처를 가진 손으로 타인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은 안 되는 일이라고 말렸다.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돌멩이처럼 부서져버릴 수 있다던 경고는 무서웠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오랫동안 시민단체나 사회복지기관을 다니며 자원활동을 했다.
하지만 첫 근무하던 날을 떠올려 보면 오랜 준비과정이 무색할 만큼 어색했다. 첫 업무는 발달장애당사자가 다니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시작했는데 어색한 정장치마를 입고 어쩔 줄 몰랐다. 복사기 앞에서 얼쩡거리며 이면지를 정리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누군지 모르니 무조건 인사부터 했다. 전 직원 앞에서 인사하던 첫날은 각오를 보여주고 싶었다.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열정이 이끄는 사회복지사 이정하입니다.” 할머니나 우리 가족 같은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행동하고 진실로 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첫 마음을 고백했다. 어떤 직원은 이 말을 따라 하며 놀리기도 해 낯이 뜨거웠지만 할머니가 만들어준 이 말은 이제껏 내 앞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처음 담당한 일은 성인장애인의 주간보호센터에서 일하다가 방과 후 시간이 되면 통합학교를 다니는 장애청소년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낮에는 일상생활을 살다가, 오후 4시가 되면 학교에서 돌아온 장애청소년과 교육적인 활동을 했다. 처음엔 누군가 지시하는 일을 하거나, 누군가 나에게 지시를 내려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어딘가에 정답이 있으리라 여기는 학생처럼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습은 틀리고 싶지 않았던 두려움과 불안이기도 했다. 비판하거나 질문해서 혼나던 국문과 학생이 사회복지기관에 취업한 것은 드문 일이라 부서지지 않고 잘 적응하고 싶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면서 정답을 찾을 순 없었다. 하지만 기관에 오는 것이 소중한 일과였던 당사자분들과 좋은 선배들을 만나 함께 즐거운 사람살이를 하면서 정답 찾기를 잊어버렸다.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은 행동이나 표정, 소리로 소통하는 당사자와는 소리로, 몸짓으로 소통했다. 청소년들과 만든 작품들은 완성품이 아니었지만 모두가 참여했다는 것이 성과였다.
우리는 잊지 못할 20대의 추억을 매일매일 만들어 추억부자가 되었다. “주간보호센터를 다닐 수 있는 5년이 당사자에게는 정말 귀한 시간이다” 한 선배는 이 말을 주문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처음엔 일을 열심히 하라는 말인가 했지만 이용기간이 종료되어 집에 있게 되거나 다른 기관을 찾아야 하는 분들이 생기면서 장애인이 복지관의 주간보호센터를 다닐 수 있는 5년이라는 기간이 하루하루 소중해졌다.
하지만 그 기간이 장애가 있는 당사자에게만 소중했다거나, 그래서 노동자들의 시간을 희생한 것은 아니다. 20대던 직원들도 첫 직장인 복지관에서 당사자와 함께 관계를 맺고, 먹고 자면서 사회에 적응해 간 경험은 독립적인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노동자들도 생전 처음 여러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서 나눠먹고, 여유롭게 동네를 거닐며 산책을 하거나 문화생활을 했다. 사람답게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도전하는 일들도 많아졌다.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함께 수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갓 딴 면허증을 들고서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었다. 와이퍼를 켜는 것도 어색하던 사람이 장대비 속에서 대형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는 길이 짧게 느껴졌다. 마음속에서 할머니를 보내지 못해 힘들어하던 시간들보다 할머니 같은 눈앞의 당사자와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일과가 더 많아지면서 다시 오롯한 사람으로 사회에 설 수 있었다.
당신들을 통해서, 당신들과 함께한 일상의 힘으로 20대의 흔들리던 내가 어엿한 어른으로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 당신들에게는 그 시간들이 어땠을지 궁금하고 보고 싶다. 그리고 상처 많은 이에게 도전하다가 부서질 거라고 경고했던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힘은 생각보다 엄청나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