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회초년생 사회복지사의 이기적인 선택

by 이정

지구의 사회복지사 중 적어도 1/3은 한국인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은 한국이 사회복지가 발전한 나라이거나, 한국인이 특별히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한국에서 흔한 자격증이라는 말을 달리 표현했던 것이다. 그렇게 흔하다는 사회복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생 때였다. 주변에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친구와 선배들이 있었다. 지구 사회복지사의 1/3이 주변에 있었던 셈이지만 특별한 일처럼 여겨졌다. 선배들은 ‘사회복지가 너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네가 잘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당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었고 경영학, 일어일문학, 미술사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에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사회복지’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무슨 학문인지 예상할 수 없어서 관심이 더 생기진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회복지’는 늘 내 옆에 있는 학문이었어야 했고 여러 번 ‘사회복지사’를 만났어야 했다. 중학교 때 IMF 시기여서 수학여행을 못 가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나중에는 수학여행이 없어졌다. 사립 고등학교라 자부담해야하는 학비를 못 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밀린 학원비를 보내겠노라고 말하며 뜨문뜨문 학원을 다녔다. 대학생 시기에는 반값 등록금 투쟁이 한창이었다. 돌이켜보면 홀로 나와 동생을 양육했던 어머니 곁에는 ‘사회복지’라는 학문이 있어야 했었다. 장애가 있었던 할머니나 지인들이 곤란한 상황이 있을 때 어떤 기관(사회복지기관)인지 모를 곳에 문의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군을 여러 번 만날 수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없거나, 이용하려면 일상을 멈추고 ‘당신이 찾아와야 한다’ 거나 시설 같은 곳에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번번이 사회복지의 문은 두드렸지만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고 그 때마다 가족들이 함께 버티거나 종교기관이나 지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회복지현장을 바꿔야겠다거나, 좋은 사회복지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사회복지사에게 기대하듯 ‘누군가를 돕는’ 훌륭한 사람이 되거나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심까지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IMF 이후, ‘인문학은 배워서 대체 뭐에 쓰냐’는 말을 일상으로 듣던 국문과 대학생이 할머니와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자 선택한 것이 ‘사회복지사’였다. ‘노인복지센터’ 같은 곳에 취업하면 할머니와 출퇴근을 같이 하면서 돈도 벌고 일상을 잘 지켜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내 삶의 해결책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사회복지’와 ‘노년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배워보니 사회복지학 안에는 경영학, 심리학, 역사 등 많은 학문이 섞여 있었다. 사회복지를 배우고 보니 국문학에서도 사회복지가 보였다. 현대문학 시간에 교수님께서「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문학적 구조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그게 꼭 사회복지처럼 들렸다. 현대문학이 가진 냉철한 눈이 사회구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사회복지’라는 학문이 단단한 사회구조를 깨뜨리는 ‘작은 공’처럼 느껴져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그런 사회구조에 대해 인식할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방학이나 주말을 이용해 사회복지기관에서 실습생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 주변에는 임대아파트가 있었고 IMF이후라 다양한 시민단체에서도 자원활동이 많았다. 그래서 사회복지기관에 가서 방과후 학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장애인의 삶을 알리는 홍보 글을 썼다. 국문과 학생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일들을 제안해주셔서 ‘사회복지’라는 일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유지되고 달라지고 있는지에 대해 후원자나 시민들에게 알리는 글을 썼다.

글 속에서는 사회구조를 말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에 대해 설명하기 보다 한 사람이 살고 있는 삶이 더 열악한 상황이어야 했고, 사회복지로 인해 더 극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사회복지관에서 만난 아이들의 일상은 변하기 어렵고, 심지어 사람들은 억울한 일들이 많이 겪었다. 내가 꿈꾸는 것과 달리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찾아보기도 어려웠고,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은 잠금장치가 있는 낮 보호센터에 계시기 때문에 만나기도 어려웠다.

장애인 시설을 처음 다녀오던 날, 할머니와 출퇴근 하는 나의 꿈과 현실이 너무 다른 것이 이상해서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물었다.

"시설에 사람을 두고 가족들이 연락을 끊고 찾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정확히는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서 던진 질문이었다. 할머니가 시설에서 영원히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면, 사회복지가 어떻게 해줄 수 있냐? 무엇을 하면 시설에 보내진 삶을 벗어날 수 있냐는 질문을 돌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이 예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실습생들 앞에서 엄청나게 혼났다. 사회복지사에게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어야 했다.

문학에 질문하고 비판하던 국문과생은 사회복지학에는 질문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지구의 사회복지사의 1/3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 기관에 취업하려면 치열하게 공부하며 더 ‘사회복지사’답고, 현장에서 열일하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했다. ‘사회복지사’라고 해서 특별히 ‘사회’의 변화에 대해 대응할 필요는 별로 없었고, 다른 직업군들처럼 다양한 기술을 갖추는 것이 중요했다. 이력서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뿐 아니라 운전면허증, 컴퓨터 자격증 등을 적어두어야 했다. 복지현장의 경험뿐 아니라 다른 직업들처럼 해외 연수 경험이 있으면 좋고, 결정적으로는 해당 기관에 지인이 있거나 나를 추천해 줄 인맥이 필요하기도 했다. 사회가 인식하는 것처럼 사회복지사라고 해서 특별히 타인을 위하거나, 착할 필요도 없었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봉, 직업안정성 등을 고려해서 취업할 기관을 골라 면접을 보았다. 사회복지기관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사회가 바라듯 전문적인 사회복지사로서 일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과 경력이 필요했다. 오히려 일반적인 회사와 다르게 한 다리 건너면 다 알만큼 좁고 경쟁도 치열한 사회복지 바닥에서 사회복지사로 채용되어 작은 일이라도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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