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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 Oct 27. 2024

1. 뜻밖의 방문

록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시회가 끝나고 호주로 귀국하기 전에 제주도에 들른다고.

호텔에 머물 거니까 밥이나 한번 먹자고 했다.

- 집으로 안 오고?

- 가 보고 싶은 데가 있거든. 제주 전통집 독채에 수영장도 있대.

언니의 말에 따르면 백 년 전부터 있던 서귀포 어촌 마을 전통 가옥을 리모델링한 리조트가 있다고 했다.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기도 해서 이번 기회에 가 보기로 했다고, 놀러 오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거실에 선 채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귤밭 너머로 바다에 엎드린 거북이 모양의 범섬이 보였다. 푸른 바다와 그보다 옅은 색 투명한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에는 여느 때처럼 커다란 흰구름이 턱 하니 걸터앉아 있었다.

머리를 묶고 캡모자를 눌러쓴 후 산책을 나갔다. 아파트에서 십 분만 걸어 나가면 해안도로가 나왔다. 차로 들어오기에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었지만 걷기에는 좋았다.

내가 사는 곳은 예전에 록 언니가 살았던 신혼집이다.

록 언니는 결혼하자마자 제주도로 내려와서 살다가 쌍둥이를 낳고 나서 호주로 건너갔다.

수영이 원했다고 들었다. 되도록 한국 사람들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나와 미대 동창이기도 한 수영은 화가였다. 아트 컨설턴트인 언니와 결혼한 후 첫 개인전에서 호평을 받더니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언니는 호주로 떠나면서 가끔 들어올 수도 있으니 신혼집은 놔두고 간다며 빈집 관리도 할 겸 제주도로 내려와서 사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때마침 직장을 그만둔 데다 서울의 높은 월세에 허덕이던 나에겐 고마운 제안이었다.     

                                                                                          *     

거친 풀이 높다랗게 자란 공원에는 커다란 수국이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하늘색 꽃송이가 어찌나 큰지 물빛 꽃다발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 같았다. 거무스름한 진녹색 이파리에 초여름 햇살이 똑바로 떨어졌다.

해변의 자갈 위로 투명한 물살이 힘차게 밀려왔다. 물거품은 얕은 바다 표면에서 하얀 레이스처럼 화려한 무늬를 만들다가 금세 사라졌다.

형광색 구명조끼에 스노클링  대롱을 문 아이들이 한낮의 바다 위에 개구리처럼 떠 있었다. 커다란 챙모자를 쓴 여자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캠핑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소금기를 머금은 뜨듯한 맞바람을 가르며 한참 동안 걸었다. 걷고 또 걷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여기 온 후부터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낚시 배가 정박해 있는  포구 앞 편의점에서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서 커다란 플라스틱 컵을 들고 해변 벤치에 앉아서 바다에 시선을 둔 채로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야 할까.

록 언니는 렌터카로 이동할 테니 리조트로 바로 오라고 했다.

그래도 될까.

나는 록 언니의 신혼집에 월세도 안 내고 사는 처지였다. 언니는 나를 가족으로 여기므로 한 번도 돈을 내라고 말하지 않았다. 가족이면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럴 때만 손님으로 변신해서 리조트에서 밥만 먹고 놀다가는 건 너무 양심 없는 짓 아닐까.     

언니를 만나는 건 이년 만이다.

쌍둥이 조카들은 갓난아기 때 이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네 살이라니 많이 컸겠지. 눈앞에서 관광객처럼 보이는 젊은 부부가 성별이 다른 유아들을 데리고 부둣가를 지나갔다. 귤모자를 쓴 아이들은 새된 소리를 지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어다녔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햇살처럼 긴 꼬리를 물고 반짝거렸다.

아무래도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야 할 것 같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서 플라스틱 컵을 분리수거한  후에 집으로 가면서 아이들에게 무슨 선물을 가져가야 살지 생각했다.

조카들이라.

큰아버지의 딸인 록 언니와 나는 사촌 자매 간이었지만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점에서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중학교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나는 줄곧 큰집에서 살았다. 지방 도시에서 살다가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했을 때 록 언니는 대학생이었다. 대학 졸업 후 언니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기 때문에 한집에서 살았던 기간은 삼사 년 정도였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그녀는 친언니 못지않게 다정하게 나를 보살펴주었다. 사춘기 시절에 단답형 이상의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은 언니가 유일했다. 왜 그랬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록 언니에게만은, 서늘하게 맑은 민낯 앞에서만은 당신이 뭘 아느냐고 악을 쓰고 싶던 마음이 사라졌다. 나를 보는 언니의 눈동자는 언제나 순수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하지만 언니는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러했다.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유아용 선물과 장난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인형, 레고블록, 딸랑이, 모형 자동차 등등. 세상에는 많고도 많은 장난감이 있었다. ‘조카 선물’로 검색했더니 알록달록한 자석 블록이나 유아용 키보드를 추천하는 블로그가 줄줄이 나왔다. 글 중간마다 쇼핑몰을 광고하는 파워링크가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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