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과 내가 미대 동창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것들도 더러 있었다.
대학 시절 한때 수영은 나와 꽤 가까운 사이였다. 그가 갑자기 학교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때 누구나 나에게 그의 행방을 물었을 만큼.
하지만 나도 몰랐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수영과 내가 어떤 관계였냐고 묻는다면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연인이나 그 비슷한 남자친구는 아니었다. 그저 이십 대 초반, 설익은 어른이 되었던 몇 년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나란히 앉아서 시간을 흘려보냈던 회화과의 아웃사이더였을 뿐.
회계학과에서 미대로 전과한 나와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으로 입학한 수영은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우리는 종종 실기수업 시간에 땡땡이를 치고 운동장 스탠드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별다른 얘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수영은 내가 대학 다니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이였다.
그와 내가 줄창 붙어 다녔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다. 서로 좋아했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피해서보다는 그가 조금 덜 불편했다. 희미한 동족 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을 때 정면으로 받아야 하는 타인의 시선을 그와 함께 있으면 절반으로 나눌 수 있었으니까. 억지로라도 이유를 더 댄다면 하루아침에 졸지에 고아가 된 나의 고통이 난독증을 앓던 그의 고통을 알아본 거라고나 할까.
수영은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글을 읽거나 쓰는데도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그가 스케치한 그림은 전체적인 구도나 방향이 엉망이었다. 건물이 공중에 붕 떠 있고 나무는 하늘을 향해서 뿌리를 쳐들고 있기까지 했다.
그는 예술 계통의 대안학교를 나와서 미술대학에 정원 외로 입학했다. 말수가 지극히 적은 데다가 말주변이라곤 없는 수영의 서툰 표현에 따르면 ‘현명하신’ 그의 어머니 덕분이었다. 그림이라곤 그릴 줄도 모르는 나와 이상한 무늬만 그려대는 수영은 강의실 주변을 맴도는 왕따 신세였다.
그러다가 졸업을 두 달 남겨두고 수영은 갑자기 학교에서 사라졌다.
조교가 나를 불러서 학과장 사무실로 가 보라고 했다. 혈색 좋은 대머리가 알전구처럼 반들거리는 학과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수영의 행방을 물었지만 나 또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의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의 부모님이 학과장의 지인이라는 사실도 그날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얼마 전부터 그를 피해 다녔었다. 그때 일에 대해 수영은 나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고 그에게서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아주 단순한 감정이라도 언어로 명쾌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전무했던 수영에겐 그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달리 없었으리라. 묵직한 앙금을 남긴 채로 그는 내 앞에서 소리 없이 자취를 감췄다.
혼자 남은 학교는 정 붙일 곳이라곤 없는 콘크리트 감옥처럼 느껴졌다.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출석 일수를 꾸역꾸역 채우다가 성의 없이 기말고사를 치렀다. 졸업식 전날 미용실에 가서 회사 면접을 볼 거라고 하자 키 작은 미용사가 작은 은빛 가위를 재빠르게 놀리면서 길게 자란 머리를 싹둑 잘라주었다.
대학 시절이 지루하고 불편했다면 그 후에 이어진 삼 년간의 직장 생활은 안간힘을 다해서 달리기 하는 것처럼 필사적이었다. 나 자신이 상어에게 쫓기면서 암초를 피해 전속력으로 도망치는 초라한 물고기처럼 느껴졌다. 비참한 아침과 기진맥진한 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큰아버지의 관심에서 벗어나려면, 대학을 졸업한 성인답게 밥벌이를 하려면 직장에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몇 년 만에 수영을 만난 장소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벗어난 곳이었다. 바로, 록 언니가 결혼할 남자를 소개하는 호텔 상견례장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