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은 날이 밝자마자 눈을 떴다. 평소에는 정오가 가까워서야 일어나다가 서너 시간도 못 잤더니 눈꺼풀 안에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따끔거렸다.
늦잠을 자서 조카들 선물을 못 사거나 마중을 못 나가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잠들었더니 회사에 지각하는 꿈을 꿨다. 그만둔 지 삼 년이 넘었는데도 화가 잔뜩 난 상사의 표정이 눈에 선했다. 월급날이 정해져 있는 직장은 퇴근 시간이 아무리 제멋대로라도 출근 시각을 정확히 지켜야만 한다.
통장에서 월세와 카드 대금이 자동이체되고 나면 아무리 월급을 쏟아부어도 통장이 텅 비던 서울살이와 달리 제주도에서는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두 달 있다가 떠날 생각이었다. 언니의 침대에서 뒹구는 게 어색했고 소파와 냉장고를 사용하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주인 허락을 받기는 한 거였지만.
몇 군데 원서를 넣어본 서울 소재 회사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딱히 직장에 나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출퇴근하는 회사에 다니는 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싫었다. 나는 타고나기를 말귀를 잘 못 알아들었다. 상사가 지시하는 일을 눈치껏 해내느라 애쓰다가도 야단을 맞을 때마다 얼음으로 만든 칼이 날아와서 가슴에 정통으로 꽂히는 기분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정말로 출근하기가 싫었다. 그래도 그만둔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정기적으로 안부를 물어오는 큰아버지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이곳에 와서 한 달 동안은 잠만 자다시피 했다. 가장 좋은 것은 큰집에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언니의 신혼집에서 지내라는 권유에 ‘큰아버지에게 말해야겠지?’ 묻자 언니는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했다. 짧은 대답이었는데도 다정한 여운이 남았다.
록 언니의 침대에서 나는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씩 잤고 매일 정오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하도 침대에 누워만 있었기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허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누운 채로 휴대폰을 보면서 치료법을 검색했다. 가벼운 증상이라면 하루에 한두 시간씩 걷는 거로도 나아질 수 있다는 정보를 읽었다. 그날부터 집 밖으로 나가서 걷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면서 산책만 하는 일상은 나쁘지 않았다. 너무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하면 가끔 노트에 일기를 끄적거리거나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빌려왔다.
록 언니와는 가끔 통화했다. 화제는 대체로 아이들에 관한 것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이 너무나 신기하다며 언니는 기쁘고 활기차 보였다. 외국에서 쌍둥이를 키우는 게 쉽지 않을 텐데도, 화려한 커리어를 중단하고 시골에 파묻혀서 수영을 뒷바라지하는 일에 대해서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 록 언니의 성격상 본가에 손을 내밀 것 같지는 않았는데 수영의 수입만으로도 생활비가 충분한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사이 나는 제주에서 출퇴근할 직장을 알아보다가 재택근무가 가능한 아르바이트로 마음을 바꿨다. 간단한 영상편집이나 일회성 포토샵 일은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돈을 모으는 걸 포기하자 아르바이트로 들어오는 푼돈만으로도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정오 무렵에 서귀포 해안가를 산책하고 집에 오면 간단한 요리를 해 먹거나 노트북을 짊어지고 카페로 나가서 인터넷으로 의뢰받은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잘도 흘렀다. 다달이 나오는 공과금만 내 앞으로 옮겨놓고 생각 없이 지낸 지도 삼 년째였다.
비수기 평일 제주공항은 비교적 한적했다.
웰컴 투 제주 스티커가 붙은 유리문 너머를 멍하니 보고 있다가 화사한 옷차림의 관광객들 사이에서 깜짝 놀랄 만큼 낯설어 보이는 록 언니 일행을 발견했다.
민소매 리넨 블라우스와 통바지에 선글라스를 낀 언니는 네 살배기 쌍둥이 중 하나를 팔에 번쩍 안아 들고 다른 하나는 손을 잡은 채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서양 여자처럼 키가 크고 후리후리한 그녀는 어린아이를 안고 등에 백팩까지 메고 있었건만 가뿐해 보였다.
캡모자를 눌러쓰고 검은색 반팔티에 반바지 차림의 수영은 그들과 약간 떨어져서 운반용 캐리어를 밀면서 유리문 쪽으로 다가왔다. 균형 잡힌 걸음걸이에 두터운 상체와 팔 근육이 내가 알던 수영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오일을 발라서 태닝 한 피부에 키가 크고 선글라스를 낀 두 사람은 겉모습만 동양인일 뿐 외국인처럼 보였다.
나를 발견한 언니가 치아가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수영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만 까딱했다. 장난감이 든 커다란 쇼핑백을 든 채로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갓난아기 때 이후로 처음 보는 조카들과 인사를 나눴다.
“연 이모야.”
“안녕하떼여.”
여아인 율과 남아인 현이 일제히 배꼽에 손바닥을 대고 고개를 꾸벅 인사했다. 쌍둥이들은 생김새는 달랐지만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보석 같은 눈을 깜빡거리는 아이들은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전날 전화로 공항으로 마중 나가겠다고 알리자 언니는 공항 근처 렌터카 회사까지 내 차를 타고 이동하면 되겠다고 했다. 찌그러진 초록색 번호판을 탄 내 차는 얼마 전부터 엔진 소리가 엄청나게 커진 상태였다. 카센터에서 알려준 견적이 한 달 생활비보다 더 많은 액수였으므로 수리는 하지 않았다. 에어컨을 켜면 엔진 소리가 더 커지므로 더워도 창문을 열고 다녔다. 하지만 언니 가족을 태우고도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언니가 조수석에 타면 좋을 텐데.
내 기대와 정반대로 언니는 수영에게 앞 좌석을 손짓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뒷좌석에 올랐다.
휴대폰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면서 엔진 소리를 조금이라도 감추려고 라디오를 틀었다. 에어컨 버튼을 누르자 낡은 차 엔진이 칼을 가는 듯한 소리를 냈다. 라디오 디제이가 시시껄렁한 농담을 요란하게 쏟아냈다.
언니와 수영은 정신 사납다고 느꼈을 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렌터카 회사 앞에서 그들이 내리자 나는 시동을 끄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작 십여 분의 시간이 열 배는 더 길게 느껴졌었다.
수영과 언니가 대여한 차는 멋들어진 검은색 그랜드 체로키였다. 호주에서 타던 차와 같은 모델이라고 했다.
나는 반쯤 내린 유리창 너머로 선글라스를 낀 수영이 커다란 자동차의 트렁크에 짐을 차곡차곡 올리고 운전석에 올라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언니는 아이 둘을 뒷좌석 카시트에 앉혀놓고 벨트를 잘 매어준 다음에 조수석에 앉았다.
수영이 모는 차가 덩치 큰 맹수처럼 유려하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서귀포의 특급 리조트까지는 차로 한 시간쯤 걸렸다. 나는 라디오를 끄고 창문을 열어둔 채로 삐걱거리는 차를 달렸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질문들이 내 안에서 부글거렸다.
이럴 거면 제주도 집은 왜 놔두는 건데. 어쩌다가 한 번 제주도에 올 때도 호텔에 머물 거라면 처분해도 되잖아. 내가 살고 있으니까 나가라고 하기가 그래서? 나 신경 쓸 거 없는데. 이제 어린애도 아니잖아.
언니에게는 다른 의도가 없을지도 몰랐다. 아마도 그쪽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몇 년 만에 찾아온 제주도에서 며칠 있다가 가는 건데 기왕이면 특색 있고 색다른 리조트에 머무는 게 언니답기도 했다.
한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아팠다. 낯설기만 한 수영이. 미운 오리 새끼가 자라서 백조가 되듯이 과거의 그보다 훨씬 더 근사해진 그의 모습이. 이제야 제 모습을 찾은 것 같은 그와 함께 있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