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채식주의자에 준하는 식사

D44. 집에서 요리를 안 한다는 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일까

by 유랑

특별히 무엇을 가려 먹지는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고기보다는 생선과 해산물을 좋아하고 기름기가 많은 삼겹살 구이는 되도록 피하고 싶다.

매운 음식은 잘 못 먹으므로 밥과 김치를 매일 먹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다. 집에서 혼자 하는 식사는 주로 냉장고에 넣어둔 삶은 계란에 껍질째 자른 사과나 제철 과일이다.

미각이 살짝 둔해서 미식가는 못 되는 대신에 식탐을 부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아침에는 따듯한 두유를 한 잔 마셨다.

모카포트로 원두커피를 추출해서 골프 연습장에서 마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보온병에 채웠고, 잘 익은 감귤과 잡곡빵으로 도시락을 쌌다.

내가 이용하는 단골 카페인 스타벅스나 에이바우트는 외부 음식물도 허용했기 때문에 카페라떼 한 잔을 주문하면 도시락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할 수가 있었다.

저녁에는 냄비에 물을 붓고 제주 감자를 보글보글 삶아 먹었다. 껍질은 비닐 지퍼백에 모아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이삼일에 한 번씩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 한꺼번에 비웠다.

트래킹 모임에 나가서 식사를 함께 할 때는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지만 집에서 요리를 해 먹지 않는다는 말에 사람들은 의아해하곤 했다.

돌아보면 예전에는 일이 년 전까지는 집에서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었다.

요리에서 완전히 손을 놓아버린 것은, 내가 만든 음식에 그가 거의 손을 대지 않고부터이다.

그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처럼 밥과 김치가 아니면 식사라고 여기지 않았다. 구운 삼겹살은 가장 좋아하는 특식이었다.

육즙과 지방이 흐르는 고기나 맵고 칼칼한 양념을 좋아하는 그에게 내가 만든 생선 구이나 간장으로 양념한 반찬의 대부분은 비리거나 느끼하고 밍밍했다. 식재료의 질이나 신선도도 미식가인 그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해동한 고기나 냉장고에 들어간 지 며칠 지나서 시들시들한 야채는 질색이었다.

그가 끓인 라면은 면발이 맵고 꼬들꼬들했고 콩나물을 넣어서 시원했다. 센 불에 빠르게 구워낸 고기는 불맛이 났다. 하지만 나는 고기나 라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만든 요리에 나도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만든 음식을 타박만 하다가 수저를 놓고 결국에는 따로 라면을 끓여먹는 그에게 화가 난 탓도 얼마간 있었다.

가을바람이 쌀쌀해지자 지인들은 김장을 하기 위해 어머니를 찾아가야 한다고들 했다. 엄마 김치가 최고라며, 그게 있어야 일 년을 난다면서.

제주도로 온 후로 나는 밥도 하지 않고 김치도 담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 계란이나 과일을 사러 갔을 때 마트 한구석에서 묶음 세일하는 빵이 나의 특식이다. 시쳇말로 몹쓸 년이다.

나의 이런 식습관은 그에게 참기 힘든 요인이었다. 그의 비난하는 시선 앞에서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곤 했었다.

제주도로 내려와서 이혼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듯, 음식을 먹는 방식에 대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식욕이 주요 에너지원인 사람들은 음식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쓴다. 집에서 가정식 백반을 먹기 위해서는 밥과 국과 세 가지 이상의 반찬이 있어야 하는데, 수많은 재료와 갖은양념이 필요한 반면에 먹는 것은 순식간이다. 만든 지 하루 이상 지난 반찬은 처음의 맛을 금세 잃어버린다.

지인들과 물놀이를 갔다가 해변의 개방 어장에서 뿔소라를 잡은 적이 있었다.

노란 띠가 선명한 물고기가 떼 지어 헤엄치는 바닷속에서 껍데기에 해초가 달라붙은 뿔소라를 건져 올려서 그 자리에서 돌로 깨서 만든 회는 오독오독하고 단맛이 났다. 소라살을 이로 고 혀로 맛보다가, 소라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파도를 즐기다가 날벼락을 맞은 소라에게 무척 미안했다.

식탁에 오르는 고기와 달걀을 위해서 가축들이 잔혹하게 사육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다른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에 가치 판단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지금껏 고기를 먹었는데 이제 와서 유난을 떨며 육식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집에서 혼자 하는 식사는 되도록 채식 위주로 해결하려고 한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고기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고 요리하기도 귀찮으니까.

두유와 아메리카노, 껍질째 자른 사과와 감자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또 하나, 채식을 하다가 운 좋으면 언젠가 달마 대사처럼 해탈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