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시로 정착한 곳은 모슬포에 있는 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집을 나온 지 삼 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동안 제주도 해변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제주도에서 삼 년이나 있으면서도 집 근처 이외에는 나가 본 적이 없었는데 얼떨결에 올레길을 대부분 완주해 버렸다. 처음에는 펜션의 일인실을 이용하다가 잠만 자는 건데 어떠랴 싶어서 게스트하우스의 값싼 도미토리 객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잠자리를 그다지 가리지 않는다는 건 그전에는 나 자신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날마다 예닐곱 시간씩 걸었기 때문인지 낯선 사람들이 주위를 오가든 말든 대체로 잘 잤다. 텅 빈 집에서 혼자서 잠들 때보다 불 밝힌 야간열차처럼 여행자들이 지나다니는 게스트하우스가 더 편했다.
그날도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가 식당 입구에 붙은 스태프 모집 안내를 보았다.
주 2일 근무, 일인실 및 조식 제공.
뚱뚱한 고양이가 데크 테이블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시리얼에 우유를 붓고 수저를 들고는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조금 낡았지만 차분한 크림색을 메인톤으로 사용한 건물 분위기나 햇볕에 잘 말린 침구가 청결해서 느낌이 좋은 곳이었다.
빈 그릇을 들고 오픈 키친 개수대 쪽으로 다가갔더니 높다란 스툴에 앉아서 책을 읽던 여자가 거기 놔두라고 말하며 눈인사를 건넸다. 짧은 곱슬머리에 통이 넓은 연푸른 줄무늬 셔츠를 입은 중성적인 분위기의 여자는 대략 삼십 대 정도로 보였는데 가까이에서 보자 그보다는 더 나이가 든 거 같기도 했다.
- 저, 스태프 모집한다고 해서요.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일 거라고 짐작했던 그 여자가 사장이자 건물주였다.
- 건물 청소하는 일이랑 크게 다를 바 없어요.
내가 감탄하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일이 생각보다 힘들지도 모른다면서 그녀는 하루 이틀 일해보고 결정을 내리라고 했다. 마음이 바뀐다면 일당이나 숙박권을 제공하겠다면서.
오랫동안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세계 여행을 한 후에 이곳에 정착해서 낡은 건물을 구입하고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서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었다는 사장 윤의 나이는 놀랍게도 오십 대 중반이었다. 독신이며 젊어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 이게 의외로 영업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책으로 가득 찬 서가를 가리키면서 수수께끼처럼 미소를 짓던 그녀의 말뜻은 그날 저녁에 열린 게스트하우스 파티에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
게스트하우스 ‘오늘’에서는 파티 예약 인원이 네 명 이상이면 저녁 여섯 시마다 하우스 파티가 열렸다. 통상적으로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열린다고 했다.
윤은 긴 테이블 상석의 팔걸이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다리를 꼬고 있었다. 양옆으로 네 명분의 커트러리가 세팅되어 있었고 둥근 도자기 접시 위에는 음식 대신 다양한 표지의 책이 한 권씩 올라가 있었다.
여섯 시 정각을 십여 분 남겨놓은 시각에 네 사람이 다이닝룸으로 내려왔다. 각자 삼각형으로 접어서 세워놓은 종이 이름표를 보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우연히 발길 닿는 대로 찾아왔던 그곳은 알고 보니 제주 여행자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진 곳이었다. 시끌벅적한 술 파티가 아니라 책을 읽고 와인 한 잔 하면서 기분좋은 대화를 나누는 곳으로.
게스트하우스 객실을 예약하는 인터넷 페이지에는 파티를 예약하는 버튼이 따로 있었다. 고독한 여행자와 친구가 그리운 사람, 독서를 좋아하는 이를 환영하며 떠들썩한 술자리를 원한다면 권하지 않는다는 소개 글이 나와 있었다.
파티를 예약한 이들에게 윤은 간단한 사전 설문지의 링크를 문자메시지로 미리 보내서 참석자들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각자에게 맞는 책 선정을 해 놓았다. 만약에 윤이 골라놓은 책이 마음에 안 든다면 서가에서 관심이 가는 책을 가져와서 읽는 것도 자유였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참석자들은 간단한 자기소개 후 책을 펼쳤다.
윤은 오픈키친 주방 안에서 절도 있는 동작으로 요리를 하던 스태프를 도와서 커다란 스파게티 접시를 날라왔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는 건 무척 어색할 것 같았는데 책이 있으니 의외로 할 만했다. 처음 보는 외국 작가의 수필집을 펼친 채로 나는 접시에 스파게티를 덜어오고 견과가 든 호밀빵 한 조각을 집었다.
크림소스와 토마토소스 두 종류의 스파게티는 전문 레스토랑 못지않게 맛있었다. 면은 적당히 익어서 단단한 심이 남아 있었다. 갓 만든 스파게티를 입안에 넣고 씹기 시작하자 혀와 식도와 위장이 질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에 환호성을 울렸다. 낮잠에서 깨고 난 이후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팠던 터라 나는 크루통과 치즈를 곁들인 샐러드까지 세 접시를 연이어 비웠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포크가 그릇에 부딪혀서 달그락거리는 소리, 낮게 깔린 재즈 피아노 음악 소리만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검은 유리창 앞에 세워놓은 커다란 은촛대에는 세 개의 촛불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샹들리에에 매달린 크리스털 조각들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다이닝 룸은 별세계처럼 적요했다. 무심코 나는 등 뒤로 고개를 돌리고 등 뒤의 창밖을 내다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실내 풍경이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어둠과 정확히 겹쳐있는 풍경이 이상하게도 몹시 낯익어 보였다.
한동안 제법 몰입해서 책을 읽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는 일체 딴짓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잠자코 글자를 읽는 수밖에 없었다. 곁눈으로 슬쩍 훔쳐본 다른 참석자들도 각자 편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식사를 마쳤을 무렵 윤이 고개를 들고 ‘시작해 볼까요?’라고 말문을 텄다.
참석자들에게는 와인도 한 병씩 제공되었는데 나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술에 취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무알콜 와인으로 부탁했다. 옅은 주황색을 띤 투명한 음료는 분명 무알콜이었는데도 한 모금 마실때마다 살짝 취기가 도는 것 같았다.
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신이 읽던 유명 소설가의 신작 에세이를 보여주면서 예전에는 외로움을 견디는 게 힘들었는데 이곳에 정착한 후에는 그런 느낌이 사라졌으며 오히려 가끔은 고독을 즐기게 되었다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부드러운 인상에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안경을 쓴 젊은 남자는 제주도를 여행 중인 사진작가라고 했다. 장기 프로젝트가 끝나서 모처럼 휴식을 취하려고 왔는데 눈을 두는 곳마다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아서 쉴 새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오히려 일할 때보다 더 바쁘다며 그는 행복한 듯 웃었다. 단정한 단발머리 여성은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나흘간의 휴가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면서. 정말 아쉽겠어요,라며 맞장구치는 남자가 그녀 못지않게 아쉬워 보였다. 둘은 빈 글라스에 가득 와인을 채우고 건배를 하더니 가 본 곳 중에 특히 좋았던 장소에 대해 얘기을 주고받았다. 윤은 미소를 띤 채로 말없이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나머지 한 명은 사자처럼 덥수룩한 파마머리의 앳된 여자애였는데 와인 한 병을 이미 다 비우고 취기가 꽤 올라 있었다.
"가진 게 많으면 외로울 틈도 없는 게 아닐까요?"
윤은 다분히 자신을 겨냥한 그녀의 말에 차분히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냥요."
그녀는 입술을 살짝 비틀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제 부모님은 항상 저를 부끄럽게 여기셨어요. 어렸을 때는 공부를 못하고 학벌이 변변찮다고, 커서는 번듯한 직장에 못 다닌다거나 근사한 남자를 못 물어온다는 이유였지요. 저는 딱히 그분들에게 폐를 끼치거나 신세를 지는 것도 아닌데 때때로 자기들 멋대로 저를 낳아놓고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입술을 꽉 깨문 그녀의 얼굴은 술기운에 조금 달아올라 있었고 광대뼈가 도드라진 두 뺨에 갈색 주근깨가 선명하게 보였다.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윤은 상냥하게 물었다. 감정의 동요가 조금도 없는 그녀에게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그냥, 바닷가 조금 걷고 카페에도 가고… 오늘은 뭐, 괜찮았어요."
윤이 그녀를 향해 잔을 들면서 싱긋 웃었다.
"그러면 된 거 아니겠어요."
얼떨결에 윤과 건배를 하던 사자머리 여자애도 기가 막힌 표정을 짓다가 얼결에 따라 웃었다.
“그런가요? 뭐, 그렇군요.”
공격적인 분위기가 사라진 그녀는 덩치만 커다란 어린애처럼 순박해 보였다.
“어느 집 뒷마당에나 파 보면 시커먼 해골바가지가 나온다잖아요.”
주름진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보조개를 만든 윤은 문득 조금 지친 듯이 보였다. 그녀는 분명히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는데도 그 순간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윤이 살아가는 게스트하우스 <오늘>과 내가 몸담고 있던 세계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겹쳐졌다고나 할까. 중년이지만 빳빳하게 힘이 남아있는 윤의 깡마른 그녀의 체구는 몸의 윤곽선과 주위의 경계가 살짝 희미해 보였다.
나는 윤에게서 은은한 체취처럼 풍겨 나와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던 생소한 느낌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윤은 세상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넘치도록 겪었으리라. 나를 포함해서 이 자리에 모인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윤은 차분한 시선으로 나를, 사자머리를 바라보았다. 섣불리 나서서 떠들지 않고 거대한 빙산처럼 수면 깊숙이 잠겨 있는 그녀의 심연이 사자머리의 소란하게 들끓던 감정을 어루만지고 진정시켜주었다. 잔잔한 표정 너머 깊이 감춰져 있을 사연에 대해서는 물어볼 엄두조차나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 혼자였지만 조금도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윤은 오픈키친 안으로 들어가더니 새로운 안주를 내왔다. 커다란 도자기 접시에는 세계 각지에서 만든 꼬릿한 냄새가 나는 작은 치즈 조각들이 원형을 만들면서 보기 좋게 배열되었고 한 귀퉁이는 허브와 들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요리를 만들었던 젊은 남자 스태프가 마지막으로 커다란 과일 접시를 날라와서 사자머리 여자애 옆에 앉았다. 탐스러운 포도알과 껍질을 벗긴 복숭아가 달콤한 향기를 발산했다. 윤이 그에게 수고했다며 와인병을 건네자 그가 싱긋 웃으면서 자신의 글라스에 술을 따랐다.
술잔이 한 차례 씩 더 비어가면서 화제는 제주도에서 유행하는 체험으로 옮겨갔다. 안경을 쓰고 머리를 묶은 남자와 단발머리 여자는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할 수 있는 곳과 향수 공방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사자머리 여자애도 질세라 끼어들어서 열띤 대화를 나눴다. 윤은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읽었던 책은 낯선 여행자들 사이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수단일 뿐 독서토론이 목적은 아니라고 그녀는 미리 귀띔했었다.
나는 루비처럼 아름다운 와인이 든 글라스를 눈앞에서 흔들면서 조금씩 마시다가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긴 하루였다. 낮에는 윤을 따라다니며 시트를 걷어서 세탁하고 청소를 하는 일을 도왔었다.
남자처럼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는 윤을 따라다니면서 투숙객들이 사용한 시트를 벗겨서 세탁기에 넣고 청소기를 돌리고 예약상황을 체크하고 재빨리 메시지를 보내는 일을 거들었다. 묵직한 빨래바구니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서 하얀 시트를 펴서 햇볕에 너는 그녀의 동작은 간결하고 유려했다.
- 여기 일이 딴 데보다 편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하지만 나는 윤을 따라다니며 일했던 그 날 하루가 마음에 들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윤에게 인색한 구석이 조금도 없다는 점이었다. 스태프가 사용하는 방이라면서 안내해 준 방은 가장 비싼 독실과 인테리어와 전망이 동일했다.
오전 스테프는 일곱 시에서 세 시, 오후 스태프는 세 시에서 열한 시까지가 근무 시간이었다. 그녀는 이만 들어가서 저녁까지 푹 쉬라고 말했다. 스태프가 사용하는 객실에서 쉬다가 저녁 파티 시간에 맞춰서 내려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