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해외패키지 0.5일 차
음료를 주문하는데 카운터 직원이 공항 상주 직원이냐고 물었다.
중년여자 혼자 해외여행 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인가 보았다.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은 십 프로 할인된다고 했다.
6월 29일 제주도 출발 오전 열한 시.
열두 시 김포공항 도착. 한 시 인천공항 도착.
오후 네 시 반에 여행사 데스크에서 전자항공권을 받아서 일곱 시 반 출발하는 에어서울 보홀행 비행기를 타면 된다. 서울로 가는 비행기가 연착되거나 인천공항행 버스를 기다려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 세 시간의 여유시간을 두고 스케줄을 짰다.
헌데 김포공항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가 칼같이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는 인천공항행 리무진이 출발대기 중이었다. 보홀행 비행기은 일곱 시 반 출발인데, 열두 시 반에 인천공항에 도착해 버렸다.
첫날 인천공항에서 무려 여섯 시간 동안이나 대기해야 했다. 제주도 살면서 해외 나가기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수도권 살 때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점심식사라도 하면서 시간을 때울 겸 인천공항 4층 푸드코트로 올라갔다.
한식과 분식과 경양식 음식점과 메뉴와 가격대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오므라이스 전문점에 들어갔다. 줄을 섰다가 빈자리가 나면 빠르게 주문하고 식사를 마치는 어수선한 식당이었다. 구석자리에 앉아서 되도록 천천히 식사를 마쳤다. 화장실에도 들러서 거울을 보자 하얀 티셔츠에 튄 소스 자국이 보였다. 물비누로 정성껏 얼룩을 지우고 캐리어를 끌면서 4층 푸드코트 전체를 한 바퀴 산책(?)했다.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 가는 한식집과 분식집,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도넛 가게 등.
느긋하게 앉아있을 만한 카페는 눈에 띄지 않았다. 맨 처음에 지나갔던 카페로 돌아갔다. 통로 한켠의 테이블에서 음료만 마시고 금방금방 일어나는 카페였다. 자녀들을 동반한 가족단위 여행객도 있었고 커플도 있었다. 떠들썩한 단체 여행자들도 있었다.
누군가 겉옷을 놔두고 간 바람에 비어있던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노트북을 열었다. 며칠 전 쓰다 만 블로그를 마저 쓰기 시작했다.
일단 노트북을 켜고 작업에 들어가자 시간이 후딱 가버렸다. 여행사 미팅시간 직전까지 블로그를 쓰다가 3층으로 내려가서 직원에게 형식적인 설명을 들었다. 자신 없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e-ticket과 일정표가 든 비닐팩을 받아서 항공사 데스크로 향했다.
에어서울 직원은 창가와 복도 중 어느 좌석을 원하냐고 물었다. 창가 좌석으로 부탁했다. 고마운 배려였다. 보홀에서 돌아올 때는 전자항공권을 내밀고 주는 대로 티켓을 받았더니 젊은 커플 옆자리 복도석이었다. 다음번 여행부터는 창가 쪽 좌석으로 요청을 잊지 말아야지. 또한 가급적 지방 소재 공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편부터 알아봐야겠다. 지방소재 공항의 국내선과 국제선 출국장은 도보로 10~20분이면 충분한데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는 시간과 돈도 더 들었고 심리적 부담감이 컸다.
수화물을 부치고 출국장과 보안검색대를 차례로 통과하고, 인천공항 셔틀트레인에 올라서 13번 게이트에 도착하고 나서도 두 시간이 남았다. 저녁식사는 기내식이 나올 테니까 그냥 기다릴까 했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보홀행 에어서울 비행기에서는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근처 파리크라상에 들어가서 과일주스와 빵 두 개를 구입했다. 매장에 테이블이 몇 개 있어서 한 시간 정도 앉아있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연히 된다고 했다. 커피번 한 개는 배낭에 넣고 주스와 빵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하면서 노트북을 펴고 쓰던 블로그를 마저 썼다.
자정 무렵 보홀 타그빌리안 공항에 도착했다. 수하물을 찾아서 공항을 나서자 각종 여행사 피켓들을 든 사람들이 보였다. 선글라스를 낀 여행사 가이드를 만나서 공항에서 리조트까지 오는데 십오 분쯤 걸렸다. 호텔 로비에 도착하자 가이드가 다음날부터의 일정을 알려주었다. 체격이 크고 알록달록한 반팔 셔츠 차림에 문신이 가득한 건장한 중년남자였다.
객실까지 트렁크를 날라 준 현지인 직원에게 팁을 건네고 방문을 닫자마자 피로와 허기가 동시에 밀려왔다. 에어서울 기내식은 하루 전 신청한 승객에게만 제공되었다. 컵라면만 구입할 수 있는데 생수 한 병 이천 원, 컵라면 작은 컵이 오천 원이었다. 옆자리 청년들이 아무것도 안 먹는데 혼자 빵이나 컵라면을 먹기도 어색해서 네 시간 반 동안 전자책을 조금 읽다가 눈을 감은 채로 앉아있었다.
리조트 객실 창가로 가서 암막커튼을 살짝 열자 어두운 수영장이 보였다. 에어컨을 켜고 캐리어를 열어서 옷과 화장품을 선반에 정리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나흘동안 머물 예정인 객실에는 싱글침대와 더블침대가 하나씩 있었다. 배낭에서 빵을 꺼내서 천천히 먹었다. 피곤했던 탓인지 이를 닦고 창가 쪽 침대로 들어자 낯선 잠자리임에도 평소보다 수월하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