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여행 매너팁은 얼마가 적당할까

해외여행과 돈

by 유랑

팬데믹 이전에 필리핀여행 갔을 때는 매너팁이 일이 달러 정도면 된다고 들었다. 지금은 어디서나 백 페소, 달러로 치면 이 달러가 기본인 듯하다.




인터넷 광고에서 보홀패키지 3박 5일이 19만 원이라는 걸 처음 발견했을 때는 긴가민가했다.

무척 의심스러운 가격이었건만 수영장 바닥의 물비늘이 새파랗게 반짝이는 사진은 나도 모르게 연이어 클릭질을 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서핑에 푹 빠져서 며칠간이나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십몇만원이 라니 어떨 땐 하루에도 나가는 돈 아닌가. 유쾌한 지인 두 명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아른했다. 멋진 여행친구가 될 거 같고 시간여유도 있을 거 같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기대를 잔뜩 품고 연락을 해 본 두 사람은 일제히 시간이 안 된다고 했다. 원하는 날로 출발일을 고르라고 했으니 핑계일 확률이 높았다.

- 동행이 그렇게나 중요한가.

- 나는 여행을 가고 싶은 거 아니었나.

혼자서라도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여행사 네 곳의 보홀패키지 상품을 꼼꼼하게 비교분석했고 일반적인 3박 5일짜리 상품이 아니라 4박 6일 상품을 골랐다. 호화로운 숙소는 아니지만 혼자라도 심심하지 않게끔 객실과 수영장이 연결되어 있는 리조트로 정했다.


막상 해외여행 가보니까 예상보다 돈이 더 들기는 했다.

이삽사만구천원짜리 패키지를 결제하면서 싱글차지 이십만 원, 수영장과 연결된 룸 업그레이드 비용으로 오만 원을 더 냈다. 거기에 선입금한 옵션투어 두 개 십삼만 원, 마사지 오십 불, 가이드팁 육십 불, 제주에서 인천공항까지 비행기표 왕복 십칠만 원까지 기본비용만 총 백만 원 가까이 들었다.


떠나기 전에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고 지나고 나서도 마음에 걸린 건 매너팁이다.

나흘간 보홀에서 지출한 매너팁은 한화로 치면 육만 원 정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한국관광객이 동남아 호구냐며 비아냥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팁문화가 없는 나라에서 자라서 매너팁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제대로 주지도 못했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첫날 선셋투어에서는 나 혼자만을 위해서 현지인 가이드가 따라왔다.

맹그로브 숲 산책도 하고 대나무 다리에 나란히 앉아서 일몰도 함께 봐준 고마운 동행이었다.

매너팁 이 달러로는 너무 적은듯해서 십 달러 한 장으로 사례했더니 다음날 멀미약도 미리 챙겨주고 호핑투어 때도 스노클 착용도 도와주면서 각별하게 신경을 써 주었다.

마지막 날 데이투어 다녀왔을 때는 초콜릿힐에 실망하기도 했고 현금도 얼마 안 남아서 가이드와 운전기사 청년에게 각각 삼 달러씩을 주었다. 땡큐, 하던 현지인 청년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패키지여행 옵션으로 단체 호핑투어 갔을 때는 한국인 가이드가 일괄적으로 일인당 이 달러씩 걷어서 전달했다. 튜브를 끌어주고 내 아이폰으로 수중영상을 찍어준 소년에게 따로 삼 달러를 더 주었더니 눈에 띄게 좋아했다. 단체로 걷은 팁은 소년에게 얼마나 돌아갈지는 전혀 모른다.

자유일정 시간에 따로 찾아간 스노클링 샵에서는 가이드와 기사에게 각각 사 달러, 이 달러씩 주었다. 치아가 보이도록 환하게 미소를 지어서 나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었다.


다음번 여행은 자유여행으로 계획했으므로 인터넷 여행카페에 가입해서 다양한 정보를 알아보았다.

호텔이나 음식점 비용은 서비스비용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따로 팁을 줄 필요가 없지만 퍼스널케어를 해 주었을 경우에는 매너팁을 따로 지불하는 건 인건비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데이투어를 갈 경우, 적당한 매너팁은 현지가이드와 운전기사에게 각각 여행상품의 10%와 5% 정도라고 한다.


보홀 마지막날 데이투어 때 현지가이드에게 줬어야 할 적정 매너팁은 오 달러, 여행자가 나 혼자였으므로 십 달러를 줘도 될 뻔했는데 달랑 삼 달러만 준 거였다.

필리핀 근로자 월급이 사오십만원 정도라고 하므로 십 달러의 팁은 이십 대 청년에게 충분히 기뻤을 텐데, 한국에서는 카페 한번 가면 없어지는 돈인데, 그 기쁨을 한 번 더 줄 걸 그랬다.


나홀로 떠났던 보홀패키지여행은 이혼하고 나서 한껏 움츠러들었던 나를 일으켜 세운 계기가 되어 주었다. 팔 년 만에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휴대폰 방수팩과 굽 낮은 여름샌들을 사도록 재촉했다. 거실바닥에 기내용 캐리어를 펼쳐놓고 여러 날 고심하면서 짐을 챙기게도 만들었다.


한여름철 뜨거운 차 안에 앉아서 휴대폰 화면만 하릴없이 쳐다보다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보홀패키지여행상품 결제 버튼을 눌렀던 날이 생각난다. 그날 저녁에는 마음이 들뜨고 산만해져서 웹서핑을 하다가 현금을 캐시백 해준다는 신용카드를 몇 장이나 만들었다. 반드시 떠나기로 해놓고도 여행 당일에 도저히 못 가겠다면 신용카드 캐시백으로 패키지비용 날린 돈 충당해야지, 엉뚱한 해결책을 만들어놓고 아닌 밤중에 뿌듯해했다.




가격을 두 배로 치르고 혼자서 갔던 나홀로 해외패키지여행도 나쁘지 않았다.

낯선 호텔방에서 창너머로 수영장을 바라보다가, 혼자서 일기를 쓰는 시간도 나름 좋았다.

패키지여행 싱글차지.

달콤 쌉싸름한 독신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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