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친구

D-7.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으려면 누군가가 필요했다

by 유랑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

이 세상에 가족이라곤 하나도 없이 혼자 남았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가 소파에 붙박이로 있을 때는 집안의 무거운 공기가 불편해서 몸이 안 좋거나 피곤할 때도 매일 외출했지만 그가 떠난 후부터는 굳이 나갈 필요가 없었다. 조용한 거실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고 글을 써보려고 했지만 자꾸 멍해지기만 했다. 트래킹 모임에 나가서 분위기를 맞추며 걷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싫었고 머물러 있는 것도 싫었다. 무의미한 하루가 물에 녹는 휴지처럼 흐물흐물해졌다. 그럴 때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물거품처럼 사라졌으면 싶었다.




일주일째 되는 날 온갖 힘을 짜내고 용기를 내어 지인 두 명에게 연락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를 만나줄 수 있겠느냐고. 미안하지만 이혼으로 인한 충격을 수습할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달라고.


루이 언니는 조기 은퇴를 한 후에 제주도에서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제주살이를 꿈꿔왔고 자녀들은 다 컸으며 주중에는 혼자 지내고 주말에 남편이 제주도로 찾아와서 함께 골프를 치는 생활에 만족스러워했다.

우아한 목조 가구에 아름다운 프랑스 자수가 놓인 하얀 면 커튼, 사랑스러우면서도 살짝 유머스러운 표정의 누비 인형으로 장식한 실내는 주인을 꼭 닮았다. 예전에 그 집에 놀러 갔다가 뜬금없이 눈물을 흘렸을 때, 루이 언니는 나에게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것이 있어야만 산다며, 언제든 자기 집에 놀러 와서 글을 쓰라고 말했다. 그 말의 따스한 울림이 오래 남아서 먼저 연락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너무 많은 시간이니 이 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도 괜찮다는 내 말에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이 딱 좋아’라며 밝게 웃었다. 그녀의 곁에 있으면 특별한 계획 없이도 시간이 잘 갈 것 같았다.

- 앞으로가 중요한 거지.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털어놓았을 때, 단호하게 말하던 루이 언니의 단발머리 옆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매주 화요일. 주중의 평일 하루가 그렇게 해결되었다.

두 번째로 연락한 이는 사빈이었다. 자영업을 하는데 주중에는 일이 있지만 주말은 혼자서 여유롭게 지낸다고 했다. 개구쟁이처럼 맑은 눈빛에 요가와 마라톤, 수경 식물 재배를 즐기는 남자였다.

‘아무도 안 만나고 집안에만 있는 게 힘들진 않아?’

‘아니, 좋기만 한데.’

오랜만에 연락해서 뜬금없이 한 질문에 그는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당분간 주말에 시간을 내어 놀아줄 수 있냐는 내 부탁을 두말 않고 들어주었다.

‘뭘 할까? 산책? 영화? 콘서트?’

나는 자신 없이 그에게 물었다.

‘다 좋아.’

‘클라이밍? 다이빙?’

‘오케이.’

성의 없는 것 같기도 한 그의 순순한 승낙이 두렵기도 했다. 앞으로 뭘 하고 놀지는 온전히 내 몫이며 그가 혼자서 보내는 시간보다 나와 노는 게 재미있어야 관계가 지속될 테니까.

이틀 후 루이 언니를 만나러 갔던 날은 살짝 혼란스러웠다. 열두 시에서 한시 사이에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는데 열두 시에 출발한다고 카톡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바람을 맞은 건가. 외출 준비를 마친 채로 식탁 의자에 주저앉아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약속을 했으니 차로 삼십 분을 갔다가 그녀를 만나지 못할까 봐, 나와의 약속을 잊었을까 봐, 정확히 말하면 그녀에게 내가 그토록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직면해야 할까 봐 두려웠다.

잠시 후 답 카톡이 왔다. 오전에 친구와 산책을 나갔다가 식당에 들렀다며 두 시 전에는 집에 도착할 것 같다고 했다.

나와 만나기로 한 날에도 그녀가 다른 친구와 산책을 하고 점심을 먹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생소했다.

혼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한 후에 노트북과 책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루이 언니의 집은 아담한 정원이 딸린 하얀색 타운하우스였다. 붉은빛이 도는 나뭇결이 아름다운 원목 식탁에 앉아서 부엌 유리창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희고 붉은 백일홍이 만발한 잔디밭에 고양이들이 부드러운 꼬리를 세우고 한가롭게 햇볕을 쬐거나 어슬렁거리며 지나갔다.

며칠 전부터 집 근처 골프 연습장에 등록을 하고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하자 루이 언니는 자신의 골프웨어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앞장서서 침실로 들어가서 옷장을 열어 보였다. 티셔츠와 치마, 패딩을 옷걸이째 꺼내서 침대 위에 늘어놓고 나에게 입어보라고 권했다. 뜻밖의 제안에 머뭇거리자 언니는 최근에 살이 쪄서 옷이 작아졌다며 나에게는 맞을 거라며 재촉했다. 얼떨떨하게 골프 티셔츠와 치마, 패딩을 입어보았다. 언니는 나를 거울 앞에 세우고 예쁘게 잘 맞으니 재미있다고 활짝 웃으며 치마 색에 맞는 레깅스까지 선물로 주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새로 얻은 골프웨어를 입고 골프 연습장으로 출발했다. 언니는 다음번에는 스크린 골프 연습장에 가서 한 수 가르쳐 주겠다며 나를 배웅했다.

추석에는 사빈을 만났다. 그가 사는 제주시까지 가서 산책을 한 후에 영화를 보았다. 그 전에도 단둘이서 해안가를 걸은 적은 있었지만 따로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게 부담스럽지 않겠냐는 내 질문에 그는 ‘사귀자는 거 아니잖아’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빈은 오랜만에 대형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기분이 남다르다며 해맑게 웃었다. 영화관에 와본 지 십 년이 넘은 것 같다면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그가 매점에서 팝콘과 콜라를 사 들고 왔다. 세심한 사빈의 배려 덕분에 혼자서 맞는 첫 명절에 캐러멜 팝콘을 먹으면서 편안하게 코미디 액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주도에 혼자 사는 지인들은 명절이면 혼자 한라산을 오른다고 했다. 홀가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면서.

괜찮은 생각이었다. 아마 나도 다음번 명절부터는 혼자서 한라산에 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