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는 왜 헤어져야 했을까

제주는 ‘이혼의 섬’이었던가

by 유랑

오래전부터 나는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 했다.

반면에 그에게 있어, 제주도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시골구석일 뿐이었다. 하루나 이틀, 길게는 일주일에서 한 달까지 여행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착할 곳은 아니었다.


작년에 함께 제주도로 떠나자고 간곡하게 부탁했을 때, 그는 내키지 않아 했다.

어두운 표정으로, 일월부터는 일이 덜 바쁘니 한 달 살기나 한 번 해보자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나는 사촌언니와 일주일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오피스텔 연세를 급하게 계약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그를 열심히 설득했다.

서귀포에 얻은 오피스텔은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다가 바다도 보인다고. 교통이 편리하고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으며 한적한 귤밭이 드문드문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신축건물인 데다가 방이 세 개나 있으니 함께 지내기에 쾌적할 거라고.

그는 나의 말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덤덤하게 떠날 준비를 했다. 아마도 더 이상 나를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던 것 같다. 수도권 아파트는 비워두기로 했다. 이케아 매장에서 제주도에서 사용할 식탁과 의자, 컴퓨터 책상과 회전의자를 함께 골랐다.


제주도로 떠나던 날, 새벽에 집을 나와서 여섯 시간 동안 완도 여객터미널을 향해서 차를 몰았다.

그가 말없이 함께 와주어서 나는 얼마나 고마워했던가.

날이 저물고 여객선을 탄 후 낯선 사람들로 득실대던 선실에서도 그가 옆에 있었기에 두터운 패딩을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선잠에 들 수가 있었는데. 꿈만 같았던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보면 아련해진다. 그러면 마음 한구석에 남은 원망과 회한이 눈 녹듯 사라져 간다.

그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말없이 따라주었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제주도에 내려온 첫 일주일 동안은 살림살이를 구비하느라 바빴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구점을 돌며 침대와 소파를 고르고 당근 마켓과 다이소에서 잡동사니를 사들였다. 새로 산 침대에 연두색 커버를 씌우고 양털 이불을 올려놓고, 카키색 레자 소파에 북유럽풍 청색 쿠션을 늘어놓자 휑하던 오피스텔은 아늑해졌다.

그와 나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그 직후부터였다.

변화를 싫어하던 그는 할 일을 다 해치우고 나자 무척 피곤해했다. 만사가 귀찮다며 세팅을 마친 집에서 푹 쉬고 싶어 했다. 반면에 나는 본격적으로 제주도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진초록색 숲 속을 산책하고, 인터넷으로 보았던 근사한 음식점과 그림처럼 멋진 카페에 가보기를 바랐다.

밖으로 나가자는 나의 청에 그는 거의 화를 내다시피 짜증스럽게 거절했다.

나는 하루 종일 걷다가 돌아왔지만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왔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집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영화와 드라마를 보다가 슈퍼마켓에서 식재료를 사서 꼼꼼하게 고기를 뒤집어가며 굽고 노릇하게 구운 버섯과 브로콜리를 곁들여서 먹을 뿐이었다.

하루는 인터넷을 뒤져서 제주도 트래킹 카페에 가입했다.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매일 멋진 곳을 실컷 걷다가 들어왔다. 그는 먼지투성이에 땀범벅이 되어 들어와서 현관에 모래를 흘리거나 매일같이 세탁기를 돌리는 나에게 짜증을 냈다. 그와 나 사이의 골은 점점 깊어갔다. 그에게 새로 만난 다양하고 엉뚱한 사람들이나 놀라운 풍경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트래킹을 나가지 않는 날에는 내 방에 틀어박혀 인터넷으로 쇼핑을 했다.

새로 만난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그들이 가진 것과 비슷한 옷과 물건이 필요했다. 택배 상자가 매일 현관문 옆에 쌓였다. 등산복과 배낭, 등산화, 등산양말 등등.

그가 보기에 수도권 아파트를 놔두고 제주도에서 월세를 내면서 등산용 물품을 사들이는 것은 돈 낭비였다. 쓸데없이 걸어 다니는 것은 시간낭비였다. 내가 주문한 택배 상자를 그는 집에 있으면서도 현관문 안으로 들여놓지 않았다.


그는 편안하게 누워서 TV를 볼 수 있는 집을 놔두고 굳이 바람 부는 해변을 산책하고 싶어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슈퍼마켓에서 식재료를 사서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데도 굳이 식당에 가서 비싼 돈을 내고 다 먹지도 않고 남기는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개미가 꼬인 고사리를 한 뭉텅이 뜯어오고, 먹지도 않으면서 자꾸만 달래를 캐어와서 냉장고를 비좁게 만드는 나에게 짜증이 났지만 억지로 참았다.


그를 대하기가 어려워서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무리하게 트래킹에 나갔다. 그러다가 발목을 여러 번 접질리고 한 번은 다친 손에 반깁스를 한 채로 들어왔다.

지인 한 명은 제주도로 내려온 부부가 이혼하고 둘 중 한 명이 떠나는 걸 수도 없이 봤다며 '제주도는 이혼의 섬'인가 보다고 말했다. 우리도 그들 중 하나가 되었나 보았다.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집에 살면서도 말조차 걸 수 없는 그를 원망하지 않으려면 헤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아니라면, 남이라면 서운하지 않을 테니까.

일월에 제주도로 내려온 지 여섯 달 만에, 유월 마지막 날 그에게 육지로 돌아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떠나지 않으면 내가 따로 원룸을 얻어서 나가겠다고. 변화를 싫어하는 그에게 제주도로 내려오는 결정이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잘 알았다. 그에게 무척 미안했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다가 울음이 터졌다. 한번 터진 눈물은 몇 시간 동안이나 그치지 않았다. 그도 자기 인생을 걸고 나와 결혼했는데, 좋은 인연이 되어주지 못해서, 결국은 헤어지게 되어서 미안하고 또 미안했었다.

그는 이를 악물 듯 찌푸리고 있었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이틀을 보낸 후에 그에게 다시 의사를 물었다.

두 달 더 있다가 떠나겠다고 그는 말했다. 여름철은 휴양지인 제주도에서 보내는 게 낫겠다며.

지난 몇 년 동안이나 그에게 자주 서운했었다. 그가 나에게 짜증을 내고 무례하게 대했었기 때문에.

남편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고마워할 일이 수도 없이 많았을 텐데. 마찬가지로 내가 그의 아내가 아니라면 그는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나를 대했을 텐데.

먼저 그에게 이혼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매사에 신중한 그는 연말까지 각자 시간을 가진 후에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 후로 우리는 예의 바른 기숙사 동료 학생들처럼 지냈다. 얼굴을 마주치면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고 주방이나 화장실은 되도록 빨리 쓰고 치우면서 차례를 지켰다.




떠나기 전날, 그가 짐을 싸는 동안 나는 노트북을 열고 이혼 협의서를 작성했다.

이미 헤어지기로 마음을 정했으므로 사소한 것은 서로 양보할 용의가 있었다. 가벼운 말다툼이 있었지만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수도권 아파트는 매물로 내놓고 집을 판 돈은 절반씩 나누어 가지기로 했다.

새로 산 차는 그가 가져가기로 했다. 제주도에서는 아직 노후 경유차를 운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낡은 차를 내가 쓰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모처럼 횟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는 평소처럼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마셨다.

나는 다음번에 그가 제주도에 놀러 오면 더 괜찮은 식당에서 밥을 사겠다고 말했다.

그가 조금 웃었다. 나도 따라서 웃었다.

흙먼지가 자욱이 얼룩진 유리창을 통해서 피처럼 붉은 석양이 비쳐 들었다.


집으로 가기 전에 해변으로 나가서 잠시 걸었다. 야자수가 늘어선 긴 백사장을 걷는 나를 그는 평상에 그림처럼 앉아서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다.

사 년 간 남자 친구였고 이십 년간 남편이었던 그는 나름대로 괜찮은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