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나갔더니 바다가 보였다
아침 열 시,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카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오두막집을 둘러보고 나와서 개를 데리고 앞마당에 나와 있던 카페 여사장님과 눈인사를 했다.
동그란 금속테 안경을 쓴 야무진 인상에 삼십 대 정도로 보였다.
- 안녕하세요? 옆집 보러 왔다가 들렀어요. 개가 잘생겼네요. 무슨 종인가요?
- 음... 믹스견이요.
- (똥개라고?) 아... 이름이 뭔가요?
- 메밀.
짧고 깨끗한 베이지색 털을 가진 큼직한 개가 노르스름한 눈으로 나를 보며 컹 짖었다.
방금 전, 개조심 팻말이 달린 안쪽 집의 울타리 문을 열자 잘생긴 보더콜리가 대번에 크로스비를 물고 달려왔다.
빨강 크로스비를 잔디밭 안쪽으로 던지자 개가 그림처럼 멋진 높이뛰기를 하며 공중에서 크로스비를 낚아챘다.
다섯 번쯤 크로스비를 던져주고야 개는 꼬리를 흔들면서 길을 비켜주었다.
‘개조심’은 개가 무는 걸 조심하라는 뜻이 아니라 끝도 없이 크로스비를 물어와서 놀아달라고 조르는 것 또는 두 발로 서서 안아달라며 엉기는 걸 주의하라는 뜻인가 보았다.
오두막집의 묵직한 나무문은 열려있었다. 집 내부는 서늘했고 절간처럼 고요했다. 처마에 차양 지붕이 길쭉하게 덧대어 있었다.
데크에 나와 앉아있기 좋은 대신 햇볕이 집안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실내는 조금 어두웠다.
낮에도 전등을 켜야 하는 것과 북향인 침실의 창문이 작은 게 마음에 걸렸다.
아침 햇살에 저절로 잠이 깬 날은 그나마 기분이 나은데, 창고처럼 작고 어두운 침실에서 눈을 뜨면 정어리 통조림이 된 것처럼 답답하지 않을까?
조명이 천장에 매립한 LED 등이라서 불을 켜면 무척 밝았다. 이단 행거와 나무 선반이 사방에 둘러쳐 있는 작은 드레스룸도 있어서 수납공간이 충분한 점도 좋아 보였다.
오두막집은 살짝 엉성해 보였지만 창틀이나 빌트인 가전, 수전이 모두 깨끗하고 잘 갖춰져 있었다.
환기팬 후드와 인덕션은 독일제였고 욕실의 수도꼭지와 샤워기, 비데는 아메리칸 스탠더드 제품이었다.
식탁 의자에 앉아서 잠깐 창밖을 내다보았다.
시야에 가리는 건물이라곤 없이 하늘이 푸르렀다. 빨간 열매를 매단 먼나무, 그 외 이름 모를 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풍경이 한가로웠다.
집 밖으로 나오자 시야 끝에 반짝거리는 빛무리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하늘빛보다 조금 짙은 푸른빛 선은 무려 제주도의 남쪽 서귀포 바다 수평선이었다!
집 마당에서 바다가 보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했다.
긴가민가했던 모든 게 갑자기 좋아보였다.
'너무 외딴 거 아닌가?'는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오두막집'으로,'춥고 불편하지 않을까?'는 '목조주택이니까 괜찮아'로,‘어둡지 않을까?'는 '살짝 어두운 데서 바다를 봐야 더 멋지지!'로.
다시 한번 눈도장 찍듯 귤밭 위로 하늘과 맞닿은 부드러운 푸른빛을 자세히 보았다.
중산간이지만 지대가 높은 데다 시야가 막히는 곳이 없어서 바다는 잘 보였다.
오션뷰 카페처럼 바로 눈앞에서 출렁거리는 바다는 아니었지만 널따란 잔디 마당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아까보다 더 멋져보였다.
‘집 잘 보셨나요?’
예쁜 도자기 잔에 카페라테와 소금빵을 내오면서 카페 여주인이 물었다.
‘네... 마음에는 드는데 조금 어두운 게...’
‘어둡다고요?’
여주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돌창고를 개조한 카페 건물도 목조 천장 창으로만 햇빛이 들어와서 실내는 부분 조명으로 아늑하게 불을 밝혔다. 집이란 모름지기 햇볕이 잘 들고 자연광으로 채광을 해야 한다는 내 생각이 고정관념인지도 몰랐다.
카페 사장님과 조금 더 얘기를 나눠 봤더니, 그분도 그 집에 들어갈까 했지만 남편과 둘이 살기에는 조금 작은 편이라서 근처에 농가주택을 얻었다고 했다.
집주인 목수 아저씨는 10대 청소년 아들이랑 둘이 사는데 둘 다 무척 조용한 분들이라고.
진한 라테와 버터향이 풍기는 소금빵은 맛있었다.
치즈케이크와 롤케이크, 소금빵 등 카페에서 파는 베이커리류는 모두 직접 만든다고 했다.
손이 많이 갈 텐데 번거롭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카페 입구에는 흐드러진 동백꽃이 점점이 붉은 꽃을 떨어뜨리고, 감귤나무가 잎을 한들거렸다.
야외 벤치에 매달아 놓은 크림색 레이스가 바람에 날리고 푸르스름한 수평선이 빛을 받아서 반짝였다.
인터넷에서 본 부동산 매물 소개에는 잔디밭 마당과 넓은 데크가 있다며 나름대로 정성껏 오두막집의 장점에 대해 강조했지만 바다가 보인다는 - 무려 오션뷰라는! - 사실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었다.
제주 사람인 집주인 생각에는 바다는 하늘처럼 어디에나 있는 거고 그게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는 거지, 마당 나오면 먼바다가 보인다는 게 뭔 대수냐고 여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육지에서 굳이 제주를 찾아온 '육지 촌것'에게 무려 '집 마당에서 바다가 보인다'는 사실은 엄청나게 흥분되는 사실이었다.
제주 오션뷰 목조주택,
집 마당에서 바다가 보이는 오두막집이라니!
그건 오랫동안 묻어놨던 내 로망과 너무 완벽하게 일치하는 거 아닌가.
차 문을 열기 전에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제가 집 계약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