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사가 그렇게 쉬울 리 없지
집주인이 갑자기 둘로 늘어났고 보증금은 나 몰라라 했다
by
유랑
Oct 11. 2023
첫 번째 난관은 기존 집주인이었다.
내가 살던 오피스텔은 건설사 미분양분이었는데 서울에 있는 건설사 직원은 통화가 잘 안 됐다.
어렵게 전화 연결이 된 경우에도 회의 중이라며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하고 번번이 연락을 주지 않았다.
계약기간 끝나면 이사 나가겠다고 문자를 남겼더니 날벼락같은 답장이 돌아왔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이 팔렸다며 '새로운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받아가라'는 것이었다.
알려준 연락처로 전화하자 새 주인은 딴소리를 했다. 자기는 바쁘고 머리 아프고 잘 모르겠으니 이전 주인과 해결하라고 했다.
‘이래서 다들 집을 사고 마는구나.’ 짜증이 몰려왔다.
제주도에서 임대하는 집들은 전세나 월세가 드물고 대부분 일 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연세’였다.
서귀포의 오피스텔이나 생활숙박시설은 미분양분이 많았지만 집을 구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건설사가 집주인이면 어떤가, 주인이 들어와 살 테니 나가라고 할 일도 없을 테고 참견도 비교적 덜하고 자기 돈이 아니므로 연세도 악착같이 올리지 않는다던데.
지난 일 년간 냉장고 AS비용을 늦게 받았을 뿐 불편한 점은 없었는데 막판에 이런 식으로 발목을 붙잡다니!
전에 한 번 이사하려다가 포기한 집은 범섬이 딱 보이는 오션뷰 전망이 엄청난 한 달 살기 펜션이었다.
건물주는 법인이었는데 관리인 계좌에 보증금을 넣어야 했다. 관리인은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느라 돈이 급해 보였다. 한 달 살기로만 임대하던 집을 연세로 내놓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은 분이라서 아쉽고 또 아까웠
지만 패스했다.
새로 이사
하려는 집은 목조주택 이층 집과 카페 건물과 대지까지 모두 집주인 소유였고 은행 빚 하나 없이 등기가 깨끗했다.
서귀포 중산간의 작은 농가주택 치고 연세가 그리 싸지는 않았지만 매매하는 것도 아니고 일 년 살기 임대하는데 마음에 드는 데서 한번 살아보지 뭐! 호기롭게 결심했는데 일이 꼬여가는 거였다.
오두막집으로 오후 4시쯤 계약하러 가기로 했는데 한 시간 전에 못 간다고 문자를 보냈다.
난처하고 부끄러웠다.
- 저.. 살던 집이 팔려서 계약이전? 해야 한다네요. 가능한 한 빨리 해결책을 찾아볼게요. 죄송하지만 오늘은 찾아뵙지 못할 거 같아요ㅜㅜ
곧바로 도착한 집주인의 문자는 시원스러웠다.
- 아! 네. 이번 주 내로는 부탁합니다.
하지만 시장에 내놓은 물건이란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인 법, 먼저 채가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나.
마음이 급한 대로 머리를 굴리다가 오피스텔 건설사와 새 주인의 매매계약을 중개한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근처 부동산이라 가본 적 있는 곳이었다.
공인중개사는 임대 기간이 끝났으니 보증금은 새로 들어올 세입자에게 받으면 되고 문제 될 게 없다며 자기가 다 알아서 해주겠다며 큰소리쳤다.
공인중개사 입장에서는 세입자가 바뀌어야 수수료 수입이 생기는데, 내가 살던 오피스텔은 나름 인기 있는 곳이었다.
오피스텔 새 주인에게 전화해서 내가 이사를 나가야 현재 시세에 맞춰서 임대료를 올려 받을 수 있다며, 부동산에서 다 알아서 해주기로 했다고 설득을 시도했다.
건설사와 임대 계약은 자동연장 된 후였으므로 내가 안 나가겠다고 버티면 집주인이 연세를 올려 받을 수가 없으니 손해라면서.
새 주인이 한 번 알아보겠다며 부동산과 통화한 후로는 일사천리로 일이 해결되었다.
다음날 공인중개사가 집 보러 온 사람을 데리고 왔고 바로 가계약이 체결되었다.
이사 날짜는 일주일 후였다. 오두막집은 풀옵션이라 제주에 내려오면서 새로 산 침대와 소파, 식탁 등 가구를 처분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었다.
가구는 새로 들어올 세입자에게 저렴하게 넘기기로 했다.
새 물건처럼 깨끗했지만 중고로 판매하는 수고와 용달 비용을 감안한다면 그게 나았다.
골치 아픈 일들을 처리하는 동안 집주인 목수아저씨는 인터넷에 내놓은 매물을 거둬들이고 내 사정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가계약금을 일부 입금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건 필요 없다며 본 계약 때 만나자고 했다.
십 원 한 장까지도 따지고 드는 도시의 인간관계랑 사뭇 다른 게 신기하기도 했다.
인연 닿는다는 집이라는 게 그런 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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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제주 오두막집에 살고 있습니다
02
1. 오름 꼭대기에서 이사 갈 집을 골랐다
03
2. 소심한 결정장애자가 이사를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
04
3. 이사가 그렇게 쉬울 리 없지
05
4. 혼자서 이사하기
06
5-1. 난방비 폭탄을 어떻게 해결했나요?
제주 오두막집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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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심한 결정장애자가 이사를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
4. 혼자서 이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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