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난방비 폭탄을 어떻게 해결했나요?

5. 시골 오두막집의 장점과 단점

by 유랑

단독주택은 관리하기 힘들고 냉난방도 잘 안되고 사람 살 데가 못된다는 둥 아파트에 비해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하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겁 많고 귀 엷은 데다가 매사에 효율성을 중요시하고 정보수집에 능한 내가 제주에서 처음 구한 집도 신축 오피스텔이었다.




근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아파트나 오피스텔이 좋기는 뭐가 좋을까.

잠만 잘 사람이라면 모를까, 잠자는 거 외에 가끔 밥 해 먹고 티브이나 보려면 아파트도 괜찮지만 딱 거기까지 아닌가.

닭장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기만 한다면 모를까 사람 사는 집은 실내 공간뿐 아니라 자연을 즐기는 실외 공간도 약간은 있어야 하지 않냔 말이다.


다들 아침에 일어나면 뭘 할까.

출근하는 날에야 집 나서기 바쁘겠지만 쉬는 날엔 거실에 나와서 티브이나 보면서 노닥거리지 않을까.


나는 티브이를 거의 안 보고 출퇴근도 하지 않으므로 오피스텔에 있으면 답답하고 불안했다.

제주에 와서도 어떻게든 나갈 일을 만들어서 바쁘게 돌아다녔다. 책 한 권을 읽어도 카페나 도서관에 나가서 읽었고 텅 빈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오두막집에 들어오고 나서는 온종일 집에만 있어도 여행 온 것 같았다.

아침에 눈 뜨면 거실에 나와서 마당에 햇빛이 쏟아지는 풍경을 바라보거나 잔디밭에 나와서 수평선 보면서 거닐거나 보더콜리와 놀았다.

비 오는 날에는 빗소리 들으면서 드립커피를 내려서 마셨고, 화창한 날에는 데크에 나와서 노트북으로 작업했다. 밤에는 적막함을 즐기며 책을 읽었다.

오두막집은 밤이 되면 무척 조용했고 낮에는 가끔 카페를 드나드는 손님들의 활기가 은은히 전해져 왔다.


그렇다면 오두막집엔 장점만 있는 거냐? 세상만사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단점을 콕 집어본다면 춥기는 과연 추웠다.

서귀포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오피스텔도 집합 프로판가스를 사용했는데 오두막집은 그보다 더 작은 프로판가스통을 이용하므로 가스요금이 도시가스에 비해서 오피스텔은 서너 배, 오두막집은 네댓 배나 더 비쌌다.


제주 내려와서 첫 달에 난방비가 삼십만 원이나 나와서 놀랐다. 영하 십 도인 수도권과 영상기온인 서귀포 난방비가 엇비슷했다.

그 후로는 보일러를 줄곧 틀어놓지 않고 하루 한 번만 두어 시간씩 틀어놓았다.

가스요금 십만 원대로 물샐 틈 없이 방어했다.


오두막집에서는 온종일 보일러를 틀어도 바닥만 뜨듯해질 뿐 공기가 훈훈하게 더워지지가 않았다.

그래봤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도 잘 없었으므로 집안에서는 털 실내화를 신고 침대와 의자에서는 전기방석을 깔고 버텼다.

지붕과 벽이 있는 오두막집은 그래도 칼바람 드나드는 텐트보다는 훨씬 따듯했다.


추운 날에는 샤워할 때 온수가 뜨끈뜨끈하지 않은 게 불편했는데 쿠팡에서 플라스틱 욕조를 사서 반신욕 하는 걸로 해결되었다. 수압이 약하게 온수를 틀어놓으면 펄펄 끓다시피 뜨거운 물이 나왔다

난방을 이삼일에 한 번씩만 돌리자 가스요금은 한겨울에도 십만 원 안팎으로 나왔다.


난방은 그걸로 됐고 냉방이야 중산간이라 시원한 데다가 에어컨이 있으니깐 뭐.

장마철에는 집안이 무척 습해져서 여름이 끝날 무렵 결국 드레스룸에 제습기를 들여놓았다.

가장 큰 문제는 벌레였다.

나는 벌레를 아주 끔찍하게, 극단적으로, 무서워하지는 않는 편이다.

따듯하고 습한 서귀포에는 갖가지 벌레가 많았다.

오피스텔에도 한때는 타란튤라처럼 생긴 커다란 거미가 살았다. 거미는 벌레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볼 때마다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못 본 척 내버려 두었다.


남원읍 농가주택에 사는 지인은 집안까지 지네가 들어와서 깜짝 놀라는 건 부지기수이고 빨래를 꺼내다가 드럼 세탁기 안에서 기절한 지네가 툭 떨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여태껏 지네를 본 적은 없었지만 털벌레 같은 건 곧잘 보였다.

목욕하다가 타일에 붙어있는 길쭉한 벌레를 발견하고 놀라거나 소파에 꿈틀대는 걸 목격하고 기절초풍한 적도 있었다.

벌레 입장에서 본다면 나보다 그쪽이 더 무서웠을 테다. 가볍게는 추방되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잃기까지 했으니 더는 따지지 말기로.


집수리할 일은 별로 없었다.

전등이 나가거나 습기를 먹고 삐거덕거리는 문틀은 주인아저씨가 다 해결해 주었다.

아저씨는 오두막집을 직접 지은 실력자였으므로 목공 장비를 가져와서 몇 번 뚝딱거리자 현관문이 예전처럼 문틀에 탁 달라붙어서 도어록이 경쾌한 소리를 냈고 뻑뻑하던 욕실 미닫이문도 부드럽게 움직였다.


얼굴 안 보고 관리사무소를 통해서만 대화하는 콘크리트 집합건물과 달리 시골에서는 텃세 부리는 사람들 때문에 속앓이 한다고 들었다. 소심한 나는 벌레보다 그게 더 무서웠다. 벌레는 나보다 작았고 각종 퇴치제로 대적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가 않았으니까.

하지만 주인아저씨는 성격도 무던했고 사람이 좋았다.

자기 집 인터넷과 케이블 TV를 공짜로 사용하게 해 주었고 관리비도 따로 받지 않았다.

빨래를 너는 잔디밭은 주인집 마당이므로 주인아저씨가 잔디를 다 깎았다. 마당개 밥도 주인이 챙겨주었다. 나는 데크에 나와서 책 읽으면서 강아지랑 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옆집 카페에 방문한 손님들이 널찍한 오두막집 데크에 앉아서 애교가 철철 흘러넘치는 잔디밭 마당개랑 노는 나를 울타리 너머로 보며 귀엣말을 하면서 - 아마도 나를 부러워하면서- 감탄했다.




오두막집의 단점과 장점은 과연 듣던 대로 겨울철에 춥고 여름에는 습하고 벌레가 나왔다.

나는 추위를 별로 안 탔고 벌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곰팡이가 슬어봤자 어차피 값진 물건도 없었다.

외져서 무섭고 주인 잘못 만나면 개고생 이랬는데 주인은 친절했고 밤에는 별이 총총하니 조용해서 좋았다.


정보가 쏟아지는 대도시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아는 게 병이었다.

나와 남의 취향이 우주의 끝까지 만큼이나 다른데 남 얘기만 듣고 판단하는 건 무의미하다.


서귀포 중산간 오두막집은 그러니까, 취향에 맞는다면 무척 좋은 곳이었다.

이전 05화4. 혼자서 이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