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제주에서 먹고살기 feat. 관광지라 물가가 비싸지 않나요?
트래킹 모임에 나가다 보니 등산복도 무척 간지 나게 입는 멋쟁이들이 눈에 띄었다.
제주도에도 아웃도어 매장은 브랜드별로 다 있지만 신상은 워낙 고가라서 주로 인터넷으로 해결하는데, 핏이 별로 안 좋거나 화면과 색상이 달라도 대충 입는 수밖에 없었다.
멋쟁이들과 친해지자 아웃도어 의류는 육지 아웃렛에서 겟한다는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과연 육지에 올라간 김에 프리미엄 아웃렛에 들렀더니 아디다스나 나이키 같은 스포츠 브랜드나 아웃도어 브랜드의 세련된 의류도 괜찮은 가격에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 오자 새 옷은 안 입고 편하게 입던 옷만 또 입게 되었다.
제주에 갓 내려온 분들이 내가 2년 차라고 하자 놀라면서 정착한 지 오래된 분 같다는데 나는 급속도로 현지민화 되고 있나 보았다.
제주에도 제주시청 근처 중앙로 쇼핑가에는 브랜드 의류매장이 줄이어 있지만 서귀포시에는 아웃도어 매장 외엔 기껏해야 탑텐 스토어가 고작이다.
인터넷 쇼핑으로 옷을 사더라도 도서 산간 배송료를 추가로 물어야 하는데 교환이나 반품을 하게 되면 옷값보다 반품 배송비가 더 비싸서 차라리 버리는 게 나을 때도 있었다.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니까 그냥 옷을 잘 안 사게 되었다.
요즘은 카페나 음식점에 가면 나도 관광객과 도민을 대번에 구별한다.
옷차림이 관광객은 티가 나니까.
생필품들은 주로 쿠팡이나 다이소에서 해결한다.
제주도는 쿠팡 없으면 못 산다는 말을 들었는데 과연 그랬다.
다달이 나가는 멤버십 요금이라면 끔찍이도 아깝게 생각하지만 쿠팡 와우 멤버십 요금은 기꺼이 낸다.
타 쇼핑몰은 도서산간 배송료를 추가로 물어야 하고 배송도 오래 걸리는데 반해 쿠팡 로켓배송은 이틀 이내 무료배송이고 반품도 무료이므로 감지덕지다.
쿠팡이 적자누적으로 도산할까 걱정될 정도로 고마울 지경이다. 내 최신형 아이폰도 쿠팡에서 샀다.
트래킹 다니다 보면 비옷과 에너지바, 손전등, 돗자리 등 잡동사니가 끝도 없이 필요한데 이것들은 대부분 제주도 곳곳에 위치한 대형 다이소에서 해결했다.
다이소에는 세제나 수건 등 생활용품과 과자나 즉석밥, 라면 등 식료품도 저렴하게 판매하므로 1인가구에게는 백화점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에 오피스텔 연세 계약을 한 후엔 베개부터 비치타월까지 다이소를 털어오다시피 했다.
‘오늘의 집’이나 ‘한샘몰’ 등 가구 인터넷 배송이 안 되는 건 사실 불편했다.
할 수 없이 가구매장을 이용해야 했다. 가격도 비싸고 선택의 폭도 좁았다.
그래도 제주시 서문시장 가구거리에서 침대를 사고 제주의 이케아 격인 마켓비에서 괜찮은 소파를 살 수 있었다. 모던하우스에서 커튼이나 침구도 그럭저럭 해결했다.
장 볼 때는 하나로마트에서 신선한 제주 로컬푸드 야채를 구입했다.
초당옥수수나 가시오이 등 제철 농산물 품질이 우수했고 수산물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살아있는 제주 새우가 랩핑 비닐 안에서 눈알을 움직였고 갓 잡은 한치는 몸통과 다리가 투명했다.
살아있는 뿔소라 한 마리가 단돈 천 원. 뿔소라가 과자 한 봉 지보다 저렴하다니 놀랍지 않은가.
애플망고나 황금향, 레드향 등 하우스 재배 과일은 여기서도 꽤 비싼데,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파지’를 아는 사람에게 얻어먹기도 하고 사 먹기도 했다. 하나로마트에서도 가끔 파지를 저렴하게 팔았다.
인터넷으로 과일을 살 때는 제주도 배송 무료인 우체국 쇼핑몰을 이용했다.
책 사는 걸 좋아해서 알라딘이나 예스 24 당일배송이 안 되는 게 불편했는데, 요즘에는 도서관이나 가까운 독립서점을 이용한다.
공공도서관 희망도서 바로대출 서비스를 이용하면 신간서적을 근처 서점에서 바로 가져올 수 있다. 도서관 신간 구입 겸 지역서점도 살리기 위한 제도인데 한 달에 두 권씩 신청할 수 있으므로 새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다.
제주도는 관광지라 물가가 비싸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마트 물건 가격이야 어느 지역이나 동일할 거고 화려한 관광지 음식이 아닌 도민들이 이용하는 음식점은 반찬 가짓수에 비해 더 저렴한 것 같다. 제주의 백반인 ‘정식’은 기본 밑반찬 외에도 돔베나 제육볶음 등 고기류와 고등어조림이나 튀긴 생선이 나오는데 고기와 생선 요리가 나오는 식사가 만원 안팎이면 싼 거 아닌가.
카페 음료값은 꽤 비싸지만 잡지 화보처럼 근사한 바다 전망과 세련된 카페 인테리어를 감안한다면 그만한 값어치를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한때는 스타벅스가 된장녀의 상징이었다지만 제주에서는 스타벅스가 저렴한 축에 드는 카페다. 제주 스타벅스는 대부분 매장이 아주 넓고 전망 좋고 주차도 되므로 자주 애용한다.
카공족에겐 빼놓을 수 없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에이바우트도 있다.
에이바우트는 아늑한 인테리어에 전망 좋은 대형매장도 많고 커피나 샌드위치가 아주 저렴한 데다가 밤늦게까지 영업하므로 노트북 갖고 나가서 일하거나 책 읽기에 그만이다.
한낮에는 차양이 길게 늘어진 농사용 모자를 쓰고 나가서 귤밭을 돌아다니며 개를 산책시킨다. 저녁에는 데크에 모기향을 피워놓고 책을 읽는다.
가을이 다가오는데 옷 한 벌 살까도 싶지만 쿠팡 로켓배송에 적당한 게 없다면 안 사고 말 것 같다.
대도시에 살 때는 물건이 넘쳐나기에 가격 비교가 필수였다. 인터넷 충동구매로 쟁여 놓기도 했다.
하지만 서귀포 시골에서는 물건 구경할 일이 별로 없으므로 필요할 때 필요한 걸 산다.
쓸데없는 물건을 사고 버리는데 낭비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제주에서 누리는 것에 비해 생활비가 적게 든다고 여긴다.
요즘도 일주일에 두 번은 제주의 오름과 숲과 바다에 놀러 가는데, 자동차에 기름만 채우면 실컷 놀다 올 수 있으니까.
오두막집과 비슷한 곳을 펜션이나 한 달 살기 숙소로 빌린다면 수백만 원 깨질 테고, 육지에서도 마트와 영화과 스타벅스가 차로 10분 이내에 있는 정원 딸린 집이라면 건축비나 임대료가 얼마일지 짐작도 안 가는데 여기서는 공과금과 냉난방비 모두 포함해서 한 달에 70~80만 원 정도만 주거비로 지출한다.
게다가 제주 오두막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도시 아파트와는 비할 바가 못 된다.